육아에세이
둘째 그린이는 숙제 때문에 많은 일을 겪었다. 다 숙제를 안 해서 생긴 일들이다. 선생님이 뭘 하라면 곧이곧대로 따라 하는 범생이 첫째와는 너무 달라서 키우는 나도 애를 먹었다.
아이 초등학교 2학년 때 삶에 대한 열의로 가득한 담임선생님이 숙제로 '일기를 공책 한 바닥 씩' 내주셨다. 어렵고 힘들기는 하지만 이 고비만 넘기면 엄청난 성장이 있을 거라고 믿는 선생님의 기대는 옳았으나,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학생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내 딸 그린이다. 읽고 쓰는데 심각한 어려움을 보인(나중에 알고 보니 그린이는 학습장애였다) 아이의 일기 숙제를 시키느라 매일 저녁을 지옥에서 보내던 나는 결국 담임선생님을 찾아갔다. 선생님은 많은 걱정과 우려를 나타내셨지만 결국 '일기 숙제를 면해주는' 것으로 결정을 해주셨다. 감사한 일이다.
거기까지는 좋았으나 그다음 날 숙제 검사 시간에 "나는 오늘부터 숙제를 안 해도 돼."라고 큰소리(라고 쓰고 꼴값질이라고 읽는다)를 치는 바람에 담임선생님을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여하튼 그날 이후로 우리 집은 저녁이 있는 삶으로 돌아왔다.
그 뒤로 별 무리 없이 보내다가 5학년 때인가 그린이가 숙제를 잘해가지 않았다. 학기 초엔 몇 번 하는가 싶더니 검사를 하지 않는지 숙제를 무시하고 다녔다. 나도 몇 번 뭐라 하다가 그냥 놔두고 있었는데 5월 초에 선생님이 대대적인 숙제 검사를 했고, 그때 딱 걸리고 말았다. 선생님은 그린이의 숙제에 대해 장문의 편지를 알림장에 써 보내셨다. 공책 한쪽을 거의 채운 편지는 그린이가 숙제를 전혀 해오지 않고 있으니 이제부터 잘 지도해주기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선생님의 문장에서 그동안 참고 지나온 그린이에 대한 실망스러운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린이가 언제 숙제를 해오려나 계속 주시하면서 참으셨던 것 같다.
하지만 숙제를 안 해가서 선생님에게 장문의 편지를 받아온 사태에 대한 그린이의 대처법은 상상을 초월했다. 숙제를 안 한 것은 잘못한 일이지만 학기 초에 숙제를 한 적이 몇 번 있기 때문에 '전혀‘ 숙제를 안 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고 그래서 억울하다며 울었다. 참으로 어이없는 반응이었다. 이게 무슨 맥락과 상관없는 스토리텔링이란 말인가?
한 편으로는 그린이의 주장에 나름의 로직이 있기도 했고, 나라면 무조건 엎드려서 할 말이 있어도 참았을 텐데 그래도 제 할 말은 하는 모습이 귀엽기도 했다. 어른들은 ’전혀‘라는 말을 종종 ’거의‘라는 뜻으로 쓰곤 한다는 내 설명을 듣고도 그린이는 막무가내였다. 선생님께 죄송한 것은 사실이지만 숙제를 그동안 전혀 안 한 것은 아닌데 선생님이 오해하고 있으니 엄마가 답장을 쓸 때 그 말을 꼭 써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지금 이 상황에 선생님의 오해가 뭐 그리 중요할까 싶었지만 본인이 그토록 중요하다고 주장하니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아이의 주장을 전하는 답장을 썼는데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아이가 숙제를 안 하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별다른 제제를 받지 않기에 그냥 놔두었습니다. 이제부터 숙제를 잘하도록 지도하겠습니다. 하지만 숙제를 ‘전혀’ 하지 않았다는 표현에 대해 그린이가 억울해합니다. '전혀'라는 단어가 '거의'라는 뜻으로도 쓰인다고 여러 번 설명을 했지만 수긍하지 않습니다. 학기 초에 숙제를 두어 번 해 간 것을 저도 알고 있기에 이 부분에 대한 그린이의 당부를 전합니다.'
그 편지를 쓰면서도 선생님께서 이 글을 보고 얼마나 어이없어하실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자식이 숙제를 안 했다는데도 제대로 교육시킬 생각은 않고 아이 편이나 들다니. 그 부모에 그 자식이라고 생각하셨을 수도 있다. 그 뒤로 숙제에 관한 몇 번의 시행착오(우여곡절)가 있었지만 선생님의 아량으로 큰 무리 없이 학년을 마쳤다. 선생님이 많이 참아주신 덕분이다. 나도 가끔은 다루기 힘든 아이인데 선생님은 오죽하셨으랴. 가끔 아이에게 전해 듣는 학급 상황이 녹록지는 않았지만 선생님의 교육적 아량에 감탄할 때가 많았다. 학년을 마치면서 선생님이 전근을 가시는 바람에 감사하다는 인사도 못 드리고 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