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루 끝 햇살 Aug 13. 2020

효자와 불효자 사이

육아 에세이

옛날 옛날 어느 마을에 불효자가 살았습니다. 불효 막심한 놈이라고 마을 사람들에게 매일 두들겨 맞던 불효자가 어느 날 너무 화가 나서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웃마을에 아주 극진한 효자가 산다는 소문이 떠올랐습니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그러는 거야. 도대체 효자가 어떻게 하는지 가서 구경이라도 하자."

그러고는 이웃마을에 가서 효자가 하는 일을 지켜보았습니다.

효자는 부모님이 식사하기 전에 음식이 뜨거운지 딱딱한지 미리 먹어보고, 부모님이 잠자리에 들기 전에 이부자리를 데워놓느라 미리 이부자리에 들어가서 누워있었습니다. 뭐 이 정도는 껌이네. 하고 집으로 돌아온 불효자는 이웃마을 효자가 하던 대로 똑같이 부모님을 섬기다가 "하다 하다 이젠 별 짓을 다한다."는 동네 사람들에게 맞아 죽었다는 이야기입니다.


효자도 부모를 잘 만나야

이 이야기를 전해주시던 아버지는 "효자도 부모를 잘 만나야 성립되는 이야기"라고 해석해주셨습니다. 원 고전의 뜻과는 조금 다른 해석이지만, 아버지는 살면서 부모 잘못 만나 불효자로 낙인찍힌 사람들을 많이 봤다고 하셨습니다. 나도 부모에게 마음을 많이 쓰면서도 불효자로 오해받으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많이 봤습니다. 부모님을 위해 애쓰는 마음이 엿보이는데도 정작 부모들은 불효막심한 자녀로 인식하고 있는 경우입니다.

이런 부모에게는 공부를 못 해도 불효, 늦게 일어나도 불효, 자기 주장이 강해도 불효, 독립을 원해도 불효가 되더군요.

부모와 진심을 주고받지 못하는 건 좀 으스스 합니다.

그래서 나도 부모에게 마음 쓰는 자녀의 진심을 잘 알아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효와 불효 사이

요즘은 다 나았지만 전엔 가끔 허리가 아팠습니다. 언젠가 언니네 집을 방문했다가 오는 길에 택시를 탔습니다. 내가 앞자리에 타고 두 딸이 뒤에 탔는데 허리가 아파서 택시 앞 문을 끌어당겨 닫을 수가 없었습니다. 뒷자리에 탄 아이에게 앞문을 닫아달라고 했더니 내가 엄마 비서냐며 신발도 신겨주고(가끔 롱부츠를 신거나 벗을 때에도 아이들 도움을 받았습니다) 차문도 닫아줘야 하는 거냐고 코미디 풍으로 투덜댔습니다. 그러면서 택시에서 내려 앞문을 닫아주고는 다시 차에 탔습니다. 택시기사 아저씨는 앞자리 창가에 손주들 사진을 여러 장 진열해 놓으신 점잖고 인자하게 생기신 분이셨습니다.

그린이가 투덜대는 말이 듣기 싫으셨는지

 “엄마 아프신데 문을 안 닫아주면 효녀가 아니지.”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닫아 주었으니 효녀지요.”라고 말했습니다. 기사 아저씨는

 “군소리 안 하고 닫아주어야 효녀지.”라고 말하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군소리를 해도 부탁을 들어주었으니 제게는 효녀예요.”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믿습니다. 투덜거려도 혹은 안 해준다고 버티더라도 내 부탁을 들어주기만 하면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왜냐하면 부탁이니까요.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 석사논문 쓸 동안 방치된 아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