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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 끝 햇살 Aug 20. 2020

공부가 그리 재미없는 건 아니더라고

육아 에세이

초등학교 때에도 중학교 때에도 고등학교 때에도 공부라곤 전혀 하지 않던 그린이가 고3 때 친구 따라 대학을 가보겠다고 공부를 시작했다. 인문계 고등학교에 가면 다른 아이들 등급을 받쳐주는 일만 하게 될 것이라면서 특성화고에 진학했으나 거기서도 밑에서 등급을 받쳐주는 건 마찬가지였다. 성적이 엇비슷한 아이들이 모였으니 그래도 공부를 조금만 하면 좋은 성적이 나오지 않을까? 하고 기대했지만 어림 반푼 어치도 없었다. 받아오는 성적표를 보면 늘 웃음만 나왔다. 그러던 아이가 고3이 되어서 대학에 가고 싶다면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특성화고라 학교에서 수능 과목을 배우지 않아 주로 인강으로 공부했다. 아파트 단지 내 독서실을 끊어서 늦은 밤에야 돌아오곤 했다. 공부하는 아이도 그걸 바라보는 나도 그런 광경이 처음이라 낯설고 놀라웠다.

고3 수능이 거의 코 앞에 도달한 어느 날, 그린이와 저녁을 먹으러 동네 음식점에 갔다. 좋아하는 메뉴를 파는 음식점이 문을 닫아 어쩔 수 없이 차선으로 선택한 도가니탕에서 무심하게 파를 건지던 그린이에게 내가 물었다.


"그린아"

"응"

"요즘 들어 난생처음 공부라는 걸 해보잖아."

"응. 그렇지.”

"난생처음 공부를 하면서 느끼는 거랄까, 얻게 된 교훈 같은 게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

"음... 공부가 그리 재미없는 건 아니라는 거?"

"와.. 놀라운 일이네"


아이는 그 해에 대학에 가지 못하고 재수를 해서 대학에 갔다. 뒤늦게 공부를 시작한 아이치곤 꽤 좋은 성적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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