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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ly Yoon Jan 30. 2022

오픈릴레이션쉽이 우리에게 낯선 이유

열린 관계에 관하여








오픈릴레이션쉽 : Open Relationship


1:1의 연인 관계 혹은 1:1 성관계를 벗어난  그 모든 것들이 오픈릴레이션쉽에 속한다.


통상적인 개념으로 오픈릴레이션쉽은 두 사람의 동의하에 다른 사람을 만나도 된다 생각하기 때문에 바람과는 별개로 구분이 된다.







몇 년 전만 해도 오픈릴레이션쉽에 대해 설명하면 사람들은 "그게 뭐야?, 그럼 왜 사귀어?" 하는 반응이 대다수였다. 오픈릴레이션쉽이라는 단어조차 모르는 사람도 많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한국 사회에서 오픈릴레이셥쉽이 거론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건 갑자기 날아드는 쪽지들 때문이었다.


그래서 네이버에 오픈릴레이션쉽을 검색해 보았다.

기재된 글은 간략한 정보들만 쓰여있을 뿐이었고, 대부분은 상간녀, 불륜과 관련되어 포스팅되어 있었다.


해외살이를 하고 있지만 여전히 한국인으로서 더 넓은 시야로 세상을 보려고 노력한다.


그런 의미에서 오픈릴레이션쉽이라는 "개념" 자체가 서양에서 받아들여지는 것과 동양에서 받아들여지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인지해야 했다.





오픈릴레이션쉽.

외국에서는 제법 오랫동안 익숙하게 자리 잡힌 문화지만 실제로 오픈릴레이션쉽을 지향하는 커플은 드물었다.


이 말은 즉, 외국인에게도 오픈릴레이션쉽은 조심스럽거나, 선뜻 제안할 수 있는 연애 방식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픈릴레이션쉽이라는 '문화적 개념'은 잘 자리 잡혀 있지만 실제로 그 문화가 일상생활 속까지 깊게 녹아 있지는 않았다.





연장자와 부모를 공손하게 모시는 인(仁)을 기반 삼아 전통과 관습을 중시하는 예(禮), 즉 인의예지(仁義禮智)가 사회규범인 동양문화권은 집단주의 성격을 가진다.


이와 반대로 사회의 발전과 이익보다 개인의 가치가 우선시되는 서양문화는 개인주의 성격을 띤다.


(이번 코로나 사태만 보아도 서양문화가 얼마나 개인의 자유를 우선시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러니 두 문화권의 사랑 개념은 분명 다르다.



예를 들어보자. 한국인에게 있어 커플이 되었다는 건 [개인+개인= 하나]가 되었다는 말과 동일하다. 사랑하는 상대는 나와 다름없고, 나는 곧 사랑하는 상대이다.


그리고 커플은 '하나'가 되기 위해 부지런히 노력한다.


'하나'가 되기 위해서 커플 옷, 커플 신발, 커플 키홀더 등등, 한 몸으로 태어나지 못한 것을 한탄이라도 하는 듯 똑같은 것을 '공유' 하려는 의지가 강하다.


이 똑같은 것을 공유하기 위해 음식도 똑같은 걸 먹으려 한다. 그러니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음식 취향쯤은 거뜬히 양보할 수 있다.


이 커플에게 중요한 건 두 사람의 행복이고, 두 사람이 서로를 사랑하여 '하나'가 되는 것이 동양문화권의 사랑이다.




서양 문화권 사람에게 있어 커플이 되었다는 건 [개인+개인= 두 사람]이다.


각 개인이 가지고 있는 즐거움을 사랑하는 사람과 '공유'하는 것이 사랑이지, 절대로 '하나'가 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지만 개인의 의사는 중요하다. 커플 옷, 커플 신발처럼 개인의 취향을 고려하지 않는 것을 권하는 일은 무례한 것이다.


그러니 사랑하는 사람과 같은 음식을 먹기 위해 음식 취향이 바뀌는 일은 절대 없다.


이 커플에게 중요한 건 개인의 행복이고, 두 사람이 각 개인의 행복을 지지하는 것이 서양문화권의 사랑이다.






나는 오픈릴레이션쉽이 이처럼 동양권과 서양권의 사랑과 연애의 문화적 차이에서 바라보는 “개념”이 조금 다르다고 생각한다.


개인의 행복이 우선시되는 서양문화에서 사랑하는 사람이 있지만 더 원활한 성생활의 자유가 행복의 지침이 될 때, 구속보다 자유로운 라이프스타일이 개인 행복의 우선순위에 올 때.


그래서 불륜, 바람이라는 말로 사랑하는 사람을 상처 주는 것이 아니라 '나의 행복을 위해서 다른 사람을 만날 권리'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상대의 자유를 이해해 줄 의무'가 상호 관계를 맺을 때 오픈릴레이션쉽이이라는 새로운 연애 형태가 나타난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했듯 외국에서도 오픈릴레이션쉽은 쉽게 접할 수 있는 연애 형태가 아니다.


다만 오픈릴레이션쉽이라는 개념이 오래전부터 다뤄져 왔기에 흑과 백의 이분법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는 데 있다.


반대로 이 개념이 아직 낯선 동양문화에서는 그저 ‘바람피우는 것을 정당화시키는 것’으로 단정 지으며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오픈릴레이션쉽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해외생활을 하며 한국인들이 오픈릴레이션쉽을 갖기 시작하고 그 관계에서 이도 저도 못하고 절절 메는 모습을 보면 안쓰럽기도 하다.


상대가 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오픈릴레이션쉽에 쉽게 동의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만약 상대가 한국인이었다면 이 관계에 쉽게 동의할 수 있었겠는가?


"우리 사귀는 사이지만 가끔 다른 사람이랑 잠자리해도 돼?"라고 묻는 상대와 사귈 확률이 과연 얼마나 있느냐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나 많은 한국사람들이 오픈릴레이셥쉽, 혹은 캐주얼 릴레이션쉽에 있다. 핑계는 꼭 "여기(해외)에선 흔하잖아요", "심심한데 그냥 뭐 데이트나 하고 그럴까 봐요."다.


그러면서도 매번 연락을 기다리고 몇 번의 데이트와 잠자리를 했음에도 딱히 여자 친구, 남자 친구의 라벨링이 붙지 않으면 볼안해 하고 초초해한다.


그것은 우리가 어렸을때부터 보고 배워온 '연애와 사랑' 에 대한 문화로 인해 하나가 되고 싶어 하는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나는 동서양 문화를 떠나서 연애와 사랑이란 개인의 기질을 잘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본인의 기질이 일대일 독점적 연애 형식을 띄는 사람들은 말한다. 오픈릴레이션쉽이라는 부질없는 관계에 시간과 정성을 쏟고 싶지 않다고.


그들은 자신의 가치와, 자신이 사랑할 사람의 가치를 안다. 나한테 올인(All-In) 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연애할 가치가 없다고 말한다.


그러니 본인이 현재 오픈릴레이션쉽, 혹은 캐주얼 릴레이션쉽에 속해 있다면 자신의 기질이 일대일 독점적 연애 형식에 적합한지 아닌지부터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의 성질을 잘 모르겠다면 본인에게 있어 '오픈릴레이션쉽이란 과연 어떤 의미인가?' 에 대한 대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오픈릴레이션쉽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오픈릴레이션쉽은 어디까지나 새로운 연애형태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기존의 연애방식을 유지하면 연애가 성립되지 않는다.


두 사람이 전에 없던, 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방식으로 연애를 해야 한다. 이런 귀찮음을 감수하고서라도 오픈릴레이션쉽이 두 사람의 연애와 사랑을 장기전으로 유지시키기에 알맞은 형태인지, 각 개인의 삶의 만족도에 얼마나 큰 기여를 줄 수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아직까지는 동서양권 전체적인 사회구조가 일부일처를 지향하도록 구성되어있기 때문에 미래를 함께할 사람과 오픈렐리이션쉽을 가지겠다면 크나큰 신중함을 지녀야 한다.


(일부일처에 따른 결혼제도는 다시 한번 정리해서 적겠지만 궁금하긴 하다. 터부시 되던 동성결혼도 합법화되었는데 다부다처가 합법화되지 말란 법도 없어 보인다.)


나는 오픈릴레이션쉽이 한국 사회에서, 동양문화에서 더 자주 거론되고 이야기되었으면 한다. 다양한 사람들이 한 번쯤 자신의 사랑과 연애에 오픈릴레이션쉽이라는 새로운 연애 방식을 대입했으면 한다.


그로인해 느낄 수 있는 감정들과 생각들, 장단점을 자유롭게 이야기했으면 한다. 호기심에 시도해 보지 않아도 사람들과의 충분한 대화만으로도 본인이 이 연애성향에 적합한지 아닌지 알 수 있는 지짐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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