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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ly Yoon Apr 26. 2024

외로운 욕망



“공허하죠.”


한 차례 뒤엉킨 후였다. 반듯했던 시트는 구김이 졌고 베개는 침대 발치에 떨어져 있었다. 땀으로 화장은 지워진지 오래. 단정했던 남자의 머리카락도 온전치는  않았다.


남자는 말간이 침대를 보며 말했다. 두 눈동자에 담긴 공허함이 혀 끝을 지나 ‘공허’하고 발음 되는 순간. 남자는 자신의 음성이 떨렸다는 걸 알았을까.


마치, 그 공허를 토하지 못하고 꾸역꾸역 삼켜 먹듯이.


“켈리 씨도 잘 알지 않아요?”


확인을 바라는 질문. 공감을 원하는 위로. 당신도 나와 같잖아요. 우린 비슷해. 도피성 외로움에서 파생된 욕망. 쾌락에서 얻게 되는 해방감. 살을 섞어도 결코 채워지지 않는 갈증의 섹스를 남자는 잘 알고 있었다.



“육체적인 관계는 오래 못가죠. 어차피 다 일회성이잖아요.”


“나 일회성이에요?”


아차, 하는 얼굴을 만든 남자에게  괜찮다고 웃어주었다.


“어느 시점엔 우리도 끝이 나겠죠.”


“그러니까, 그때까지 잘 즐겨봐요.”



섹스는 언제나 팀 플레이다. 내가 원하는 것. 그가 원하는 것. 우리가 새롭게 창조하고 탐구해 나갈 영역. 끝없이 고민하고 시도하고 서로의 욕망을 채워주는 행위를 나는 사랑한다.


 그 또한 다르지 않았다. 애초의 우리의 목적은 하나였다. 좋은 섹스를 위해 전날부터 식단관리를 하고, 점심 이후로는 종일 굶었다는 내 말에 남자는 웃었다.


“난 어제부터 과일이랑 아이스티 엄청 마셨어요. 맛있었어요?”


말끝마다 야한 농담을 던지는 남자는 나 만큼이나 진심이었다. 처음부터 알아보았다. 골라 보라며 장난감을 보여줄 때, 내가 몇 가지 고르면 다 해봐야지 뭘 골라요,하고 선택권을 주지 않을 때. 내가 해보고 싶은 것을 물어올 때, 가보지 못한 곳에 나를 데려갈 때. '그건 내가 해줄 수 있겠다.' '다른건 괜찮아도 그건 안돼요.' 넘지말아야 할 선이 있고 자신만의 신념이 있을 때.



무엇보다 남자의 담백함이 좋았다. 침대에서 허세를 부리지 않는 남자는 귀하다. 이런 남자는 알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경험이 얼마나 많던, 새로운 여자와의 잠자리는 결국 처음부터 다시 배워나가야 하는 것임을.


“섹스를 오랜만에 느긋하게 해봐요.”


“내 몸 잘 가지고 노는 남자를 오랜만에 만나봐요.”


“잘한다는 거죠?”


그런 뻔한 질문을. 이 남자도 별 수 없나, 대답에 뜸을 들이자 남자는 애교 섞인 표정을 지었다.


“내가 제일 잘 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분위기를 한순간에 풀어내는 남자가 귀여워 웃고 말았다.


문신과 상처가 많은 몸을 손끝으로 훑어보았다. 곳곳에 볼록 올라온 상흔. 화상자국 같은 흉터. 크고 작은 문신의 의미. 남자가 살아온 세월을 들으며 서로의 체온을 나누고, 거울에 비친 나체의 몸을, 쾌락에 번질거리는 눈동자를 보았다.


그 순간 우리 둘 다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 관계가 지나간 자리에 남아 있을 황폐함을 떠올렸다. 쾌락이 사라진 자리는 시커먼 블랙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잠깐의 연민도, 위로를 주었던 체온도, 웃음을 선사한 다정함도, 격동적이었던 정사도 아무것도 남지 않고 빨려들어가 사라질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또 다시 서로의 몸을 확인한다. 무언가라도 남기기 위해서. 무언가가 있음을. 우리가 있음을. 잠시 서로를 위로해 주었음을. 희열의 각인을 새기는 손을 마주 잡는다.



자, 느긋하게 탐색을 마쳤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놀아볼까요? 신호탄이 쏘아지고 거대한 무게감이 나를 덮쳐온다. 나는 남자가 보여주는 세상에서, 그가 알려주는 모든 세포의 감각을 거스르지 못한채 떨고 만다.


거울 속에서 그의 등을 보았다. 문신으로 가득한 까만 등이 역동적으로 흔들렸다. 이 남자, 무서운데 야하네. 그 사실을 말해주려 먼 거울에서 가까운 그의 얼굴로 시선을 옮겼다.


그는 허, 하고 어이가 없다는 듯 웃고 있었다.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남자의 표정이, 정신나갈듯 흘레붙는 몸짓보다 야했다.


남자의 웃음을 보며 같이 웃었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 지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도달해야할 그곳에 온전히 달려가면 된다. 멈추지 말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오로지 감각에만 집중해서.


다음날이 되면 정사의 여운이 가시지 않아 서로 힘들어 했다. 우리는 서로에게 꽤나 위험한 인자였다. 연쇄반응을 일으키는 화학 물질처럼, 불이 붙으면 매순간 폭발적으로 터졌다. 그랬기에 나는 그가 나와의 게임을 오래 즐기길 바랐다. 몸은 가깝게 마음은 멀게. 불안정한 이 관계속에서 하나의 목적 의식을 가진 채, 이 여정을 함께하길 바랐다.


내가 가보고 싶었던 무아의 끝으로.

그가 내 손을 잡고 가주길 원했다.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만나더라도 조심해요. 그 선을 넘는 순간, 다시는 평범한 섹스는 못할지도 몰라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더 큰 쾌락을 좇는 나를 멈춰 세운 그에게  공허함이 아닌 다른 것이 보였다. 나는 남자에게 일말의 감정이 생기지 않기를 바랐다. 우리에겐 욕망만이 존재하길. 그리하여 끝을 볼때도 후회 없길.


그러나 몇 차례 보고 말았다. 남자가 무의식적으로 내 몸짓을 따라하고 있음을. 내 눈을 마주 할 때면 미소를 숨기지 못함을. 공복인 나를 배려하는 태도에서, 내 육체의 고통을 염려하는 말투에서 그의 마음이 흔들리고 있음을.


무엇보다 그를 통해 목적만을 달성하려는 나의 이기심을 남자는 경계했다.


그는 쾌락의 일정 지점을 넘지 않으려 했다. 한번 넘어서면 다음은 더 한 자극을 찾게 될 것이기에, 적당한 선에서 놀길 원했다. 나는 남자를 존중해야 했다.  몸은 섞어도 동침은 하지 않는다는 나의 규칙을 남자도 존중해 주었다.


애정에 목마른 그를 두고 차갑게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것이 그를 더 공허하게 만들었을까. 아니면 나의 쾌락에 이용만 당하는 스스로가 허무했을까.


멀어지고 가까워지고. 일과를 궁금해 하다가도 무심하게 하루를 보내며 묘한 기싸움이 있었다. 남자는 나를 멀리하려 했다.


누군가로부터 멀어진다는 것은 관계의 척도가 되기도 한다. 관계의 깊이는 때론 멀어져 보면 안다. 상대에게 나는 어떤 존재인가. 남자는 내게 어떤 의미인가.


그는 확인하고 싶었던 걸까. 그가 멀어지면 내가 쫓아 갈거라고? 그가 없으면 안 될 것처럼 속삭이던 베갯머리송사를 확인하려?


남자가 한 걸음 물러났다.

나는 두 걸음 물러섰다.


다음날이 되고, 그 다음날이 되고. 우리는 서로에게서 멀어졌다. 둘 다 자존심을 내려놓지 않았다. 남자는 나 만큼이나 고집이 쎘다. 거절의 상처가 두려워 다가오지 않았고, 나 또한 연애의 시작과 끝이 보여 조용히 쓰린 속을 달랬다.


우리는 이렇게 멀어질 인연이었나보다.







카톡에서 남자를 지우지 않았다. 봄날의 벚꽃을 보고, 잎이 떨어지는 것을 본다. 한바탕 비가 쏟아지는 잿빛 하늘을 보며 그와 주고 받은 마지막 메세지를 본다.

그도 외로워 하고 있을까.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누군가와 함께일까.


당신은 또 그 허망한 눈으로 구겨진 침대를 보고 있을까.


언젠가 그 공허함이 극에 달했을 때.

농밀했던 우리의 몸짓이 그리워질 때.

그때 당신이 나를 다시 찾아주기를, 그때까지 나는 묵묵히 기다려본다.


기다림은 내게 익숙하고

인내는 내가 가진 최고의 자질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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