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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홀리데이 Feb 09. 2021

조금 대충 살아도 괜찮아

편두통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내 주변에 편두통을 앓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나름대로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생각이 정말 많은 사람들이라는 것.

그만큼 작은 일에도 많은 정성을 쏟는 사람들이라는 것.


물론 편두통 없는 사람들이 생각없이 산다는 이야긴 결코 아니다. 단지 편두통을 달고 사는 나같은 사람들은 작은 일 하나에도 심각하게 몰두하고 매사에 진지하다. 그러다 보면 스트레스가 쌓이고 몸은 자동으로 반응한다.


결혼 후 남편이 나에게 아주 진지하게 '너 참 불쌍하다'하고 이야기했다. 어떻게 매일매일 그렇게 많은 생각을 하며 사냐는 거다.


사실 나는 내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구나 하는 것을 의식도 잘 하지 못한다. 그냥 어느새 머리가 굴러가고 있고, 한계점에 도달하면 전조 증상이 나타나고, 시간 내에 약을 먹지 못하면 악몽같은 편두통에 기약없이 시달리다가 어느 순간 다시 아무일 없던 것처럼 회복된다.


생각은 일어나는 순간부터 시작되는데 지금 육아휴직중인 나의 경우 아침에 남편이 잠깐 한 시간 정도 아기를 봐줄 때 잠을 잘지, 샤워를 할지, 무엇을 먹을지 아니면 아기 보는 것을 좀 도와줄지 누워서 고민하는 게 일이다.


'샤워는 하고 싶은데, 아가가 자꾸 엄마를 부르는 것 같고, 그럼 샤워하다가 중간에 나오기 어려우니까 바로 밥을 좀 먹어야 하나.... 근데 지금 못 씻으면 남편 출근하고 나면 또 머리 못 감을텐데...' 하다보면 결국 어느것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어영부영 시간이 흐른다. 내 머릿속으로는 동선과 계획을 다 짰는데 정작 몸이 마음대로 안움직인다.


아가가 잠깐 한 시간동안 낮잠을 자는 시간에도 마찬가지다.


'빨래가 시간이 걸리니까, 빨래를 먼저 돌려놓고... 아니다 이따 밥먹으려면  쌀을 먼저 불려놓고 빨래하러 가자... 근데 어머 설거지를 먼저 해야 불릴 수 있겠네 그럼 그냥 빨래를 일단 돌려놓고... 아차차 화장실부터 가야겠다...'


이렇게 심각하게 머리 안굴리고 그냥 배아프니까 화장실 가야겠네. 빨래 돌려볼까. 쌀도 씻어야지 하고 단순하게 생각하면 좋을텐데. 어떻게 움직이는 것이 가장 효율적일지 고민하다가 결국에는 앉아서 괜히 과자를 먹으며 머리를 식히고 있다.


그나마 지금은 휴직중이라 고민의 양상이 단순한 편이지만, 이제 복직하고 나면 매사에 더 예민해질게 뻔히 보인다. 하루 업무 처리하기도 바쁜데 주변 관계 신경쓰고 집안일과 아이까지 신경쓰려면 아마 나는 약을 넉넉히 챙겨다녀야 할 것 같다.


한참 열심히 하루를 살고 난 후 결국 편두통이 오면 만사가 귀찮고 조금이라도 복잡한 일은 생각조차 하기 싫어지는데, 난 뭣하러 작은 일 하나에 이렇게 신경쓰며 살고 있는걸까. 그냥 순간순간 내가 원하는 것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며 살면 안되는걸까.


예전에 거래처 대리님과 식사하면서 편두통에 대한 대화를 한 적이있다. 편두통을 앓는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꽤 많아서 생각지 못하게 이야기꽃을 피우게 되는 경우가 종종있다. 그 분은 남자 대리님이었는데, 돌아가시기전에 아버지가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좀 대충 살아도 된다고. 너무 열심히 살지 않아도 된다고.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오래 생각했다고 한다. 부모는 자식을 꿰뚫어보니까. 그가 받는 스트레스와 부담감, 그로 인해 생기는 고통을 익히 아셨을 것이다.


사실 우리 엄마도 나한테 자주 하는 말이다. 당신도 평생 편두통을 앓아온 터라 딸에게 물려준 것이 미안해서 입이 닳도록 나에게 조언한다. 너무 신경쓰지 마라, 대충 살아라, 밥은 천천히 먹어라, 무리하지 말아라.


말처럼 된다면 이미 편두통을 졸업했을수도.  


그녀만큼이나 나는 원래가 예민하고 나의 몸은 모든 주변의 자극에 이미 반응하고 있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연습중이다. 완벽주의적 성향을 내려놓고 좀 대충살기로.


내 개인적인 생각인데, 완벽주의라고해서 그 사람이 정말 완벽한 것은 아니다. 그냥 스스로에 대한 기준만 높을 뿐. 그러니 도달을 못하는 내 자신을 보면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


오늘 저녁에도 나는 아기방에 안쓰는 장난감들을 말끔히 닦아 비닐로 포장해두고, 옷장에 처박혀있는 겨울 옷들을 꺼내고 여름옷들은 정리해 넣어둘 작정이었다.


그런데 막상 저녁이 되니 나는 너무 지쳐서 그냥 쉬고 싶을 뿐이었다. 그럼 그냥 쉬면 되는데 난 또 걱정을 하고 앉아있다.


'오늘 안하면 언제하지? 내일은 시부모님을 만나뵈러 갈 것 같고, 다시 월요일이 되면 그 날 저녁엔 더 피곤할 것 같은데. 이미 많이 추워져서 겨울 옷은 빨리 꺼내놓긴 해야하는데...' 등의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이런 생각의 호수에 빠져있으니 남편이 다가와 묻는다.


"왜 멍때리고 있어?"


삶에는 적당한 쉼이 필요하다. 편두통은 물론 유전적인 요인도 강하게 작용하지만, 마음이 평안하고 몸이 건강하면 좀 더 쉽게 피할 수 있다. 내일도 나는 좀 더 대충살기를 시도할 것이다. 아이와 놀아줄 때도 아이의 모든 움직임과 옹알이에 반응해야한다는 강박관념을 내려놓을 것이고, 겨울옷 좀 늦게 꺼내놔도 얼어죽지 않으니 옷 정리를 하루 더 미뤄볼 것이며, 아기가 잘 때는 나도 그냥 쉬어도 된다는 생각으로 하루를 보내볼 작정이다. 꼭 해야하는 일은 누군가는 하게 되어있고, 조금 비효율적으로 움직인다고해서 큰 일은 나지 않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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