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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홀리데이 Feb 09. 2021

영자신문 기자가 힘들어하는 영자기사

나는 인사기사가 너무 싫다

인사 발표는 정부 기관 또 기업들의 중요한 행사이다.

이 발표는 매 분기마다 이루어지기도 하고 상반기 하반기 또는 일 년에 한 번 꼴로 이루어지기도 하는데 ... 나는 이 인사발표가 너무 싫다.

승진한 분들께는 마땅히 축하인사를 드리고 싶지만, 정말이지 이 인사를 영자기사화 하는 일은 악몽과도 같다.

인사 기사의 내용이 어려워서라기보다는 영어로 바꿔써야하는 고유명사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부처의 장관이 바뀌었다든지 기업의 CEO가 바뀌는 것은 그나마 좀 낫다. 충분히 알려진 사람인 경우가 많아 그의 약력을 찾기도 쉽고, 영문 이름을 찾는 것도 어렵지 않다. 그리고 한 사람 또는 전임자와 후임 등 몇 사람에 대해서만 쓰면 되니까.


그런데 한꺼번에 그룹 계열사 사장들이 교체되고, 주요 임원이 교체되는 등의 그룹사 인사는 때로 정말 골치가 아프다.


그룹사 인사의 경우 한 번에 10명의 사장들이 교체되는 경우도 많고 그 밑의 임원들까지 합치면 몇 십명에 대한 인사가 한꺼번에 이루어진다. 물론 이런 경우에 사장들만 이름을 쓰고, 임원들 중에서는 특이한 케이스가 있다면 몇 사람만 발췌해서 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어쨌든, 꽤 많은 인원의 이름을 영문으로 바꿔야한다.


영자기자가 정말 자주하는 질문 중 하나가 "이 분 성함이 영문으로 어떻게 돼요?"인데 개인적으로는 이 질문이 좀 민망할 때가 많다.


보통 기자실에서 기사를 쓰는 경우가 많은데, 그럼 나 뿐 아니라 타사 기자들이 여럿 모여 같은 공간에 있다. 영자기자보다는 당연 국문기자들이 많고 이 때문에 내 상황을 이해하는 사람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니 민망한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전화를 걸어 이번 인사의 방향성 등 여러가지에 대한 질문을 하는데 같은 시각 나는 일단 누구누구 이름의 영문이 무엇이냐 스펠링이 어떻게 되냐... 를 묻고 있다. 다른 질문들을 하기 전에 일단 이름을 써야하니 마감시간이 다 돼서 물어보기보단 일찌감치 물어보는 것이다.


민망해하기는 홍보팀 직원들도 마찬가지다. 영자지만을 담당하는 홍보팀 직원이 있어 이런 질문이 익숙하고, 정말 센스있게 미리 영문 이름 리스트를 공유해주는 기업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많은 경우 이들의 반응은.... 예? 영문명이요? 글쎄 한 번 찾아봐야할것같은데...


홍보팀에게도 인사 발표날은 바쁜 날이기 때문에 여러 기자들로부터 질문 세례를 받느라 정신이 없다. 그런데 그 와중에 영문명을 찾아달라고? 그것도 한 두명이 아니라 이 많은 사람들을?


가끔은 정말 귀찮은 내색을 하는 분들도 있다. "그거 그냥 대충 소리나는 대로 쓰셔도 될 것 같은데..." 하면 괜히 나도 빈정이 상한다. 한글에서도 본명이 한을인데 소리나는대로 하늘이라고 쓰면 오보이듯 이름은 고유명사이기 때문에 여권에 나온 철자대로 맞춰 쓰는 것이 원칙이다. 이 외에도 비서실에 따로 알아봐야해서 시간이 좀 걸린다, 명함에 나온 것이랑 홈페이지에 나온 것이랑 달라서 확인을 해봐야한다, 영문 이름은 없고 아예 영어이름이 있으신데 영어이름으로 써주면 안되냐 .... 등등 반응은 가지각색이다.


이름을 찾다보면 재미있을 때도 종종있다.


예를 들면 효성그룹 조석래 명예회장의 영문 스펠링은 Cho Suck-rai 인데 이름에 suck가 들어가다보니 기업 입장에서는 풀네임이 영문으로 나가는 것을 상당히 부담스러워한다. Suck라는 단어는 '빨다'라는 뜻도 있지만 '형편없다'라는 의미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효성에서는 S.R. Cho로 쓰기도한다.


SK그룹 최태원 회장의 경우 Chey Tae-won으로 쓰는데, 사실 나는 최는 Choi 인줄만 알았지 Chey라고 쓰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냥 느낌대로 썼다가는 크게 틀릴 뻔 했다.


허씨 성도 Hur, Heo, Huh .... 정말 다양하게 쓰이기 때문에 영자지 기자는 정확한 스펠링을 물어볼 수밖에 없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름을 틀리는 사례는 아직도 종종있고, 영자지들마다 같은 사람의 이름 스펠링이 다른 경우도 보인다. 누가 틀린걸까. 그건 실제로 홍보팀과 통화하고 여러 차례 이름을 확인한 사람만 알 일이다.


영자기사를 쓰다보면 자신이 자주쓰는 기업 회장들의 이름은 이렇게 줄줄이 외게 된다. 외우지 못하면 어딘가에 메모라도 해두게 된다. 쓸 때마다 기업 홍보담당자에게 물어보거나 홈페이지를 뒤지는 일이 번거롭기 때문이다. 시간도 오래걸리고. 부처 장관이나 중요 기관장들의 이름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 이름보다도 더 어려운게 한 가지 있으니... 그것은 바로 직함이다. 한글 직함을 영어로 바꾸는 일은 생각보다 매우 어려운일이다. 우리나라는 임원들이 상무, 전무로 직급이 나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명칭이 영어로 직역되는 것이 아니다보니 기업마다 제각각의 영문명칭을 쓰고 있다. Senior executivce, senior executive vice president, vice president 등 명칭들이 혼재되어 쓰이고 있다. 또 부서나 팀의 명칭이 아주 국문스러운 경우에도 영문화하기가 어렵다. 아이디어를 짜내야한다.


또 한국어로 상무, 두 글자면 될 것이 저렇게 긴 영문으로 쓰이다보니 지면도 부족하다. 이름과 직함만 썼는데도 기사가 절반이 차버린다.


그냥 우스갯소리같은 글이지만 아마 현업에서 뛰고 있는 영자기자들은 이 고충을 충분히 이해할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영자기자들은 오늘도 최대한 필요없는 이름이나 직함은 삭제하고 간단하게 기업의 인사 방향성을 설명할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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