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영자 매체와 외신은 다르다
한글로 된 신문도 잘 안 읽는 시대에 왠 영자신문?
나도 이런 생각을 했으니 나처럼 영자신문사에 다니거나 입사를 희망하고 있거나 신문으로 영어를 공부하는 이들이 아니라면 어쩌면 영어로된 신문을 구경조차 해보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
그만큼 영자신문은 독자층이 얇다. 그럼 도대체 영자신문은 왜 만드나?
사실 영자신문이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서 굳이 쓰게 된 이유는 필자 또한 이 이유를 끊임없이 되뇌어야 일 하는 데 있어 현타 (현자타임)가 오지 않기 때문이다.
열심히 취재해서 기사를 썼는데 아무도 이 글을 읽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의욕이 떨어지지 않겠나. 적어도 내가 하는 일이 이 세상의 누군가에게는 의미있다고 느껴져야 하는 일에 재미도 생기는 법이다.
일단, 영자지가 뭘 말하는지부터 짚고 가야할 것 같다. 국내 영자지는 쉽게 말하자면 한국 기업에서 발행하는 영어로 된 신문이다. 국내 대표적인 영자 신문사로는 코리아 타임즈, 코리아 헤럴드, 코리아중앙데일리 등이 있다. 혹시 영자신문이라고해서 뉴욕타임즈나 월스트리트저널 등을 떠올렸다면 이들은 외신이라고 분류되는 해외 언론사들이다. 국내에 지사를 둔 외신으로는 블룸버그, 로이터, BBC, 월스트리트저널 등이 있다. 물론 이 매체들이 모두 종이 신문을 발행하는 것은 아니지만.
영자지와 외신의 구분이 선행되어야하는 이유는 이 둘의 주 타겟층이 다르기 때문이다. 즉 존재의 이유가 다르기 때문이다.
영자지는 기본적으로 국내 기업이 발행하는 신문이기 때문에 국내 이슈를 주로 다룬다. 흔히 보는 한국어 신문의 영문판이라고 볼 수도 있다. 1면을 장식할 만한 북한 이슈, 대기업 동향 뿐 아니라 국내 부동산 시장동향, 국내에서 올 여름 유행하는 음료, 국내 스타트업이 새로 개발한 기술 등 지협적인 국내 이슈를 영문으로 기사화한다. 물론 영자지와 국문지도 분명 차이가 있지만 이 차이는 이후에 좀 더 다루도록 하겠다.
외신은 말 그대로 해외 매체다. 국내 지사에서 근무하는 인력은 특파원개념이다. 이 특파원들은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들 중 세계적으로도 중요한 이슈들을 기사화한다. 외신에 실리는 한국 뉴스는 주로 북한에 관한 이슈 또는 삼성이나 현대자동차 등 해외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 기업들의 동향이다. 그러니까 SK텔레콤에서 새로운 요금제를 내놓았다든지 포스코에서 사회공헌활동을 했다든지 하는 등의 국내 이슈에는 이들 외신들이 별로 관심이 없다. 하지만 같은 기업에 대한 이야기라도, SK텔레콤에서 세계 첫 5G 상용화를 위한 계획을 발표했다든지, 포스코가 호주에서 리튬사업을 시작했다면 외신들이 충분히 관심을 가질만하다.
이러한 차이 때문에 만약 당신이 국내 정치, 경제, 사회의 자세한 동향을 알고 싶은 외국인이라면 국내 영자지에서 좀 더 많은 정보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는 기사의 질이나 깊이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영자지와 외신의 본질적 존재 이유가 다름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일단 국내 영자지는 한국의 정치나 경제상황을 다루는 기사들을 훨씬 더 많이 또 자세히 발행한다. 다루는 기업들의 범위 또한 넓다. 스타트업부터, 중소기업, 대기업에 이르기까지 기사거리가 된다면 다양한 기업들의 이야기를 취재해 영문 기사화한다.
한 번은 내가 코트라(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kotra)에서 육성하고 지원하는 국내 강소기업들에 대한 기사를 쓴 적이 있었는데, 이것을 보고 싱가포르투자청에서 메일이 온 적이 있었다. 소개된 기업들에 대한 정보를 추가적으로 더 얻고싶다는 것이었다. 이미 잘 알려진 다국적기업이 아닌 이런 강소기업들의 경우 좋은 제품을 판매한다고 해도 해외에 소개되기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영자지가 이들의 수출길을 여는 데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영자지의 주 타겟은 주한 대사관, 한국지사에서 근무하는 외국인 CEO 및 직원들, 한국리그에 영입되어 뛰고 있는 외국인 선수들, 그 외에도 한국에서 다양한 이유로 거주 및 여행 중인 외국인과 해외 사업을 확장하고자 하는 국내 기업들이라고 할 수 있다. 한류바람으로 K-POP에 관심이 많은 해외 팬들도 주요 독자층으로 자리잡고 있다. 물론, 영어 공부를 하기 원하는 한국인 학생들도 영자지를 찾는다.
가끔 국내 기업들의 홍보 담당자들과 연락하다보면 외신은 "우리 안 좋은 일 터졌을때만 연락오고 평소에는 아무리 자료를 내도 안 써줘요"라고 한다. 당연한 일이다. 사소한 기업 이슈는 외신의 관심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 영자지와 국문지의 차이는? 일단 영자지는 외국인이 이 신문을 읽을 것을 가정하고 기사를 작성하기 때문에 국문지에서 다루는 내용들 중 외국인들도 관심을 가질만한 이슈들을 선별한다. 그리고 선별된 이슈들 중 외국인들이 이해하기에 어려움이 있을 것 같은 주제라면 공을 들여 이해하기 쉽게 풀어쓴다. 예를들어 전세제도의 경우 한국의 독특한 제도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충분히 이 제도에 대해 설명한 뒤 바뀐 정책 내용들을 간략히 덧붙이는 식이다. 영어만 좀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가끔 영자지에 난 기사가 국문지에 난 동일 기사보다 훨씬 쉽다고 느끼는 경우도 종종있는데 국문지에서 자세한 설명을 생략하고 한자로 기술하는 부분을 영자지는 아주 상세히 풀어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외신도 관심을 가질만한 세계적인 국내 이슈의 경우에는 국문지보다 훨씬 더 많은 면을 할애해 다루기도 한다. 역시 영자지의 단골 1면은 북한 또는 삼성 이슈다.
관점을 좀 더 중립적으로 바꾸는 경우도 있다. 예를들어 독도나 위안부 이슈를 바라보는 한국인의 시각과 아예 제3자인 외국인이 보는 시각이 다를 수 있으므로 국문 매체에서 다루는 것보다는 좀 더 중립적인 단어들을 사용하고자 노력한다. 이러한 시각 차이는 한국인 기자와 외국인 에디터가 상의를 거쳐 조정하는 편이다. 국내 영자지는 한국인들이 모두 다 만드는게 아니라, 한국인 기자와 외국인 에디터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영자지는 다른 신문 매체들과 마찬가지로 사양산업의 길에 올라있다. 다들 신문을 보지 않는 시대에서 살아남기위해 언론사들은 디지털 전략을 비롯해 다양한 탈출구를 찾고있다. 과연 우리 매체가 얼마나 존속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매일마다 드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오히려 얇지만 뚜렷한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다는 것이 국내 영자 매체들에게는 장기적으로 득이 되지 않을까하고 살며시 기대해본다. 한국을 알고자 하는 많은 해외의 음악 팬들, 해외 투자자들, 또는 한국 근무를 위해 파견된 많은 외국인들 ... 이들은 다양한 국내 이슈가 영어로 소개된 글들을 필요로 한다. 결국 적지만 확실한 독자층이 있다는 것은 국내 영자지가 아직 존재할 이유가 남아있다는 뜻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