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별의 치유와 회복 8
전문가(정신과의사/심리치료사)의 도움을 받는 상담 치료는 호불호가 많이 나뉘는 것 같다. 어려운 시기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는 사람도 있고, 실상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사람도 있다.
주변에 나를 이해하고 도와주려는 사람들이 있고 나의 심리적, 육체적 상태에 큰 문제가 없다면 사별했다고 무조건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필요는 없다. 나의 가족, 친구들만으로도 내가 심리적으로 안정될 수 있고 그들과 슬픔을 나누며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그들이 바로 나의 상담사이고 치료사이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로부터 이러한 도움을 받을 수 없다거나 심리적으로 매우 불안정하고 육체적으로도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면 의사나 심리치료사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다. 특히 심한 우울증 또는 불면증이 생기거나 공황장애 증상이 있다면 필히 전문가와 상담을 하고 치료를 받는 것이 좋다. 이러한 문제는 가족이나 친구들의 도움만으로 해결하기는 매우 힘들다.
의사나 카운슬러와의 상담이 좋은 점은 적절한 조언과 치료를 받을 수 있고 비밀이 확실히 보장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가족이나 친구들에게는 말하기 힘든 내용도 터놓고 이야기를 할 수 있다. 또 좋은 상담사라면 상대방이 이야기를 편하게 할 수 있도록 대화를 이끌어 가는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나의 속마음을 드러내고 도움을 받을 수가 있다.
자칭 심리기획자인 이명수씨의 “내 마음이 지옥일 때”라는 책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내 얘기를 무조건적으로 수용하고 받아들여 주고 응원해줄 수 있는 사람, 조건 붙이지 않고요. 판단하지 않고 ‘네가 굉장히 힘들겠다, 얼마나 힘드니?’라고 이야기해주면 그다음부터 자기가 (탈출) 지도가 생기기 시작하거든요. 공감받는 게 굉장히 중요해요. 공감의 힘은 그 안에서 용수철처럼 튀어 오를 수 있는 힘 같은 걸 주거든요.” 사별자에게 섣부른 위로나 충고는 오히려 아픔이 되기도 하지만 공감받는다는 느낌은 언제나 큰 힘이 된다. 전문가와의 상담은 이러한 공감의 힘을 바탕으로 사별의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하나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고자 한다면 사별 치유에 경험이 많고 신뢰 관계가 잘 형성될 수 있는 분을 만나게 되기를 바란다. 심리치료는 상담사에 따라 효과가 크게 좌우될 수 있기 때문에 누구를 만나느냐가 아주 중요하다. 나를 이해할 수 있고 내 이야기를 잘 들어 줄 수 있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슬픔과 분노, 외로움과 좌절을 극복해 나가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아이들의 경우는 성인과 달리 좀 더 세밀한 보살핌이 필요할 수 있다. 어린아이들은 자기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거나 일부러 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부/모의 사별에 큰 슬픔이나 괴로움을 느끼지 않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수가 있다. 이런 경우 억눌렸던 슬픔과 분노가 어느 날 갑자기 사소한 일에 폭발할 수도 있고, 안 좋은 방향으로 성격이 변해갈 수도 있다. 성인의 경우와는 달리 어린 자녀의 경우에는 전문가의 상담이 필요한 것 같지 않아 보여도 일단 상담 치료를 진행해 보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전문가와의 상담이 긍정적인 면이 많기는 하지만 문제는 경제적 부담이다. 정신과 의사와의 상담은 1회 비용이 10만 원을 넘는 경우가 많고 어린 자녀들을 위한 심리 상담 치료도 적지 않은 비용이 지불된다. 다행히 정부에서는 현재 정신건강토탈케어서비스라는 이름으로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소득 수준 정도에 따라서 지원 여부가 결정되는 아쉬움이 있기는 하지만 주민센터나 구청을 통해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예전에는 많은 사람이 정신적인 문제가 있어도 정신과 치료를 받는 것을 무척 꺼려했다. 정신과 진료를 받은 것이 남에게 알려지면 사회적으로 큰 불이익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다. 단순 우울증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치료를 받고 있고 정신과 치료에 대한 사회적인 편견도 많이 사라진 상태이다.
전문가와의 상담 치료는 내가 원할 때 언제든지 시작할 수도 있고,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언제든지 그만 둘 수도 있기 때문에 지금 심리적으로 또는 육체적으로 매우 힘들다면 일단은 시작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