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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jin Park Oct 09. 2019

10월, 은근하고 강렬하게 아끼는 약간의 의무감

시간을 쌓아보고 싶을 때 <탐묘인간>

처음으로 고양이와 함께 살게 된 8년 전, 저는 서른을 갓 넘겼고 연애가 끝난 지 오래되었으며, 하던 일을 의심하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2년마다 싼 월세방을 찾아 전전하는 삶에 지쳐있었죠. 고양이를 들이기로 한 건 단순히 개보다 독립적이라는 점 때문이었습니다. 내 삶도 온전히 책임지지 못하면서 집안에 외로운 존재를 더 늘리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집착하지 않을 자신도 있었고요.


그러나 고양이란 생물은, 예상보다 더 놀라웠습니다. 고양이가 있음으로써 저에게 전전하던 방은 비로소 집이 되었습니다. 무심한 표정이어서 더 귀여운 얼굴, 문을 열면 쪼르르 달려나오는 발걸음, 초여름 정도의 온기와 봄 잔디 같은 촉감,처럼 예쁜 특성들 때문이기도 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고양이가 저에게 지운 약간의 의무, 친하지만 다른 존재들 사이 약간의 긴장감이었습니다. 돌아보니 그렇습니다. 매일 하루치의 피로를 내려놓고 무너지고 말았던, 아무렇게나 흐트러져도 좋았던 적막을 고양이가 슬쩍 깨뜨려 놓았던 것입니다. 


기꺼이 상대의 존재를 지고 가려는 의지.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것이 일상의 곳곳을 향하면 살림의 기초가 된다는 것을, 저는 고양이와 함께 살면서 알았습니다. 멀리 떠나갔다가도 망설임 없이 돌아오게 하는 마음. 그리움인지 애틋함인지 모를 그 은근하고 강렬하게 아끼는 마음이 저를 무너지지 않게 하는 한결 같은 힘이 된다는 것도요. 

그 후로 한 해 한 해, 많은 변화들이 있었지만, 옷에 묻은 모래를 털 듯, 그 시간들을 탈탈 털어보면 결국 남는 것은 그런 깨달음이었습니다. 고양이와 꾸려온 집의 경험은 나에겐 무엇이 중요한지, 어떨 때 나는 기꺼워지는지, 이럴 때 나는 무엇을 선택하는지, 나라는 사람은 누구인지를 차곡차곡 개켜가는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축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설령 고양이가 아니더라도, 집착은 아니되 은근하고 강렬하게 아끼는 마음을 갖게 하는 무언가를 매개로 오래 이런 과정을 밟아보는 것은 누구에게나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보기도 하고요.


이 책을 고른 것은,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입니다. 고양이의 미덕을 칭송하기 위해서이고, 제 삶에서 가장 잘한 일은 그때 더 고민하지 않고 덜컥, 저희 첫째를 들인 것이라고 자랑하고 싶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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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매거진에서 소개하는 책은 서울 은평구 대조동에 위치한 동네 카페 '다-용도실'@da_yongdosil 내 공유 서가 '멈포드의 서재'@mumford_salon 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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