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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moMistakes Sep 03. 2020

1999 : Email = 2020 : Zoom

ZOOM  데쟈뷰

20세기의 마지막 해에 외국회사에서 국내 대기업으로 이직을 한 나는 몇 가지 문화충격을 경험했는데 가장 강렬했던 것은 이메일을 통한 커뮤니케이션이었다. 


이메일로 업무협조 또는 정책과 지침이 전달되었다.

동일한 내용이 팩스로도 전송이 되었다.

매일 아침 부서장은 부서원을 모아놓고 전날 팩스로 전송된(이미 이메일로 접한) 내용을 낭독했다.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곧 이 고비용 저효율 중복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메일을 공식적인 커뮤니케이션 채널로 인정(활용)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당시에 은근한, 소극적인 보이콧이 있었다고 추측한다. 그들, '이메일 저항세력'에게 빙의하면 대략 이런 얘기를 했을 것 같다. 


중요한 정보는 종이에 인쇄되어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읽고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 더군다나 중요한 부분에 밑줄도 그을 수 있다. 화면으로 봐야 하는 것은 TV 드라마 정도가 적당하다.

노안도 왔다. 14인치 모니터로  이메일을 읽는 것은 너무 자학적인 행위다.

정보 전달도 중요하지만 설득을 배제한 정보 전달이 무슨 의미인가. 대면해서 직접 얘기를 해야 안심이 된다. 그들의 눈빛과 태도를 보면서 메시지도 조절해야 제대로 된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다.

타이핑도 어려운데 그냥 전화 한 통화하면 될 것을 왜 메일을 보내서 사람을 귀찮게 만드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또는 당연하게도) 이메일과 팩스와 조회가 결합된, 신기한 고비용 저효율 하이브리드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은 빠르게 자취를 감추었다. 위에서 추정한 '저항세력'의 사정과 심정 역시 소리, 소문 없이 모두 소멸되었다.


시간은 20년이 흘렀고 이메일에 힘겹게 적응하던 선배들을 신기하게 바라보던 나는 ZOOM과 WEBEX에 힘겹게 적응하려 시행착오를 거듭하고 있다. 올해 초, 코로나 19가 지금보다는 훨씬 덜 압도적이었을 즈음, 외국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친구 S가  ZOOM을 비즈니스에 빠르게 도입하라고 진지하고 강력하게 충고를 했었지만 "내 비즈니스에는 맞지 않는 것 같아."라고 방어적으로 얘기를 했다. (ZOOM을 써보지도 않았으면서) ZOOM에서는 불가능한 '대면 워크샵'과 '대면 인터뷰'만의 장점을 얘기했다. 반대로 친구는 대면 워크샵/인터뷰에서는 절대 불가능한 언택트 워크샵/인터뷰만의 장점에 대해서 충분히 얘기를 해주었지만 내 귀에는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20년 전 이메일 저항 세력이 갑자기 소멸되었듯이 내 안의 ZOOM 저항세력 역시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아마도 코로나 19가 아니었다면 3-5년 정도 무의미하고 승산 없는 저항이 계속되었을 터이니 빠른 비즈니스 트랜지션을 가능케 한 점에 대해서만은 코로나 19에게 감사를 표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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