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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 것인가, 《사기》에서 찾은 인간 본연의 통찰

『사기 열전』사마천 지음, 김원중 옮김, 민음사(2015)

by 하늘바다




사마천의 《사기》는 상고시대에서 사마천이 살던 한 무제 때까지의 중국사를 다루는데, 중국만이 아니라 주변 이민족의 역사도 포함되어 있다. 《사기》는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책으로, 중국 역사서뿐만 아니라 한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 역사서에 큰 영향을 미쳤다. 여기서 김부식의 《삼국사기》가 떠오른다면, 맞다. 본기(왕조의 역사)와 열전(인물의 역사)으로 구성되어 있는 《삼국사기》의 기본 구성도 바로 《사기》의 영향 때문이다. 삼국이라는 글자 뒤에 ‘사기’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 또한 마찬가지다.


《사기》처럼 방대한 역사를 담고 있는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는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사기》에서 인물의 전기와 그 인물에 관한 비평을 담고 있는 ‘열전’ 편을 먼저 읽어보기로 했다. 김원중 교수의 『사기 열전』은 《사기》 원전에서 ‘열전’ 편만을 떼어내어 편역한 책이다. 이 책이 원전이 아닌 완역본인 만큼 번역에 대한 비평까지 해야 제대로 된 서평이 되겠으나, 본 서평을 쓰는 이의 역량 부족으로 내가 감명 깊게 읽은 이야기를 몇 가지 소개하고 거기에 내 감상만 간단히 덧붙이고자 한다.


가장 먼저 내 눈에 들어온 내용은 관중과 포숙아의 우정을 다룬 이야기였다. 내용을 요약해서 전달하자면 대략 다음과 같다.


관중이 가난하게 살 때 포숙아와 장사를 한 적이 있었다. 장사를 해서 얻은 수식을 나눌 때마다 관중은 늘 많은 몫을 가져갔으나, 포숙은 관중을 탐욕스럽다고 말하지 않았다. 관중이 가난함을 알았기 때문이다. 또 한 번은 관중이 포숙아를 대신해서 일을 하다가, 큰 잘못을 해서 포숙아를 곤란하게 했으나 이 때도 포숙아는 관중을 어리석다고 탓하지 않았다. 관중이 벼슬에서 세 번이나 쫓겨났을 때도 포숙아는 관중을 업신여기지 않았다. 관중이 때를 잘못 만났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전쟁터에서 관중이 세 번이나 달아났을 때에도 포숙아는 관중을 비난하지 않았다. 관중에게 노모(老母)가 있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관중은 말했다. “나를 낳아준 이는 부모지만, 나를 알아준 이는 포숙아다.” 이를 일러 ‘관포지교(管鮑之交: 관중과 포숙아의 사귐)’라 한다.


관포지교의 고사는 여기서 끝나지만, 관중과 포숙아의 이야기는 더 이어진다. 어느 날, 관중은 자신이 모시던 주군인 공자 규가 임금 자리를 놓고 다툰 싸움에서 패배하는 바람에 포로가 되었다. 본래라면 죽었을 목숨이었으나, 규를 대신해서 왕위에 오른 환공을 모시던 포숙아는 환공에게 관중을 재상으로 추천하고 자신은 그 아래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훗날 관중이 병에 걸려 죽게 되었을 때, 관중은 포숙아를 추천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포숙아는 관중을 원망하지 않았다. 관중이 사적인 인연에 얽매여 공적인 일을 그르치지 않는 공명정대한 사람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세상에 이런 친구 관계가 또 있을까. 나는 이 구절을 읽다가 문득 채현국 선생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다음 구절은 경남도민일보 김주완 기자가 채현국 선생을 인터뷰하고 쓴 책 『풍운아 채현국』에 나오는 채현국 선생의 말이다.


“막 오늘 부도나는 것처럼 되어 가더라고. 그래서 그 자리에서 바로 전화를 했어요. 친구한테 우리 아버지 부도난단다. 돈 좀 꿔다오. 그랬더니 친구가 막 웃어. 너는 이 자슥아. 둘 중에 하나만 말해야지. 돈 좀 달라고 하든지, 부도난다는 말은 안 하든지. 부도가 나면 이 새끼야. 돈 꿔달란 말은 안 해야지. 그래서 내가 너한테는 사실대로 말하지. 너를 어떻게 속이노 했지. 막 웃으면서 오라고 해 마침. 그래가지고 그날로 조금 모자라지만 난데없이 막았어요.”
- 김주완 기록, 『풍운아 채현국』, 피플파워, 75쪽.



이런 이야기를 들어보면, 《사기》 속 관포지교의 이야기가 단지 옛날이라 가능했던 일만은 아닌듯하다. 『사기 열전』을 읽기 전부터 알던 이야기지만 책에서 다시 보니 새롭다. 나도 내 친구에게 그런 친구가 되어주고 싶다. 그들의 우정이 부럽다. 하지만 《사기》에 이처럼 훈훈한 이야기만 있는 건 아니다. 《사기》 백이열전에 실린 다음 대목을 읽어보자.



[제자] 일흔 명 중에서 공자는 안연만이 학문을 좋아한다고 [노나라 제후에게] 추천하였으나 안연은 [밥그릇이] 자주 텅 비었고 술지게미와 쌀겨 같은 거친 음식조차 배불리 먹지 못하고 끝내 젊은 나이에 죽고 말았다. 하늘이 착한 사람에게 보답으로 베풀어 준다면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도척은 날마다 죄 없는 사람을 죽이고 그들의 고기를 잘게 썰어 [육포로] 먹었다. 잔인한 짓을 하며 수천 명의 무리를 모아 제멋대로 천하를 돌아다녔지만 끝내 하늘에서 내려 준 자신의 수명을 다 누리고 죽었다. 이는 어떠한 덕을 따르는 것인가? (중략) 만일 [이것이] 하늘의 도라면 옳은가? 그른가?
- 사마천 지음, 김원중 옮김, 『사기 열전 1』 , 민음사, 76쪽.




권선징악보다는 정의가 패배하고 불의가 승리하는 현실에 대한 고민은, 사마천이 살던 2천 년 전에도 지금과 다르지 않았나 보다. 《사기》에 나오는 도척처럼 사람을 마구 죽이고도 제대로 처벌받지 않고 여전히 떵떵거리며 사는 사람이라면, 머리에 떠오르는 사람 한 명 있지 않나. 누군지 다 알듯하니 굳이 여기서 밝히진 않을 테다. 반면, 평생을 헌신하며 살면서도 보답은커녕 어렵게 사는 사람들도 많다. ‘친일을 하면 3대가 흥하고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이 괜히 나왔을까.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부당하게 이득을 보며 살다 가면 성공한 삶일까.


예전에 읽은 김규항의 칼럼에서, 김규항은 예수의 말을 인용하며 사람에겐 두 가지 목숨이 있다고 했다. 하나는 육체의 죽음이요, 다른 하나는 영혼의 죽음이다. 영혼이 죽은 사람은 살아있어도 실은 죽은 것이고, 그 반대라면 죽었으나 죽지 않은 것이다. 유관순·전태일 열사가 전자였다면, 이완용과 도척은 후자였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사기 열전』에는 비록 지금과 생활환경은 많이 다르지만, 그 내면은 지금의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다양한 인간 군상이 살아 숨 쉬고 있다. 이러한 열전을 구성하는 데 있어 사마천은 인간 사회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대립과 갈등, 욕망과 베풂 등의 기로에 선 인간을 제시하고 그런 갈등이 인간이 사는 모습임을 강조한다. 《사기》의 저자 사마천이 우리에게 묻는다.


넌 어떻게 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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