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3천 년 전 사람들도 다르지 않았구나

『시경을 읽다』, 『시경강설』

by 하늘바다


요즘 나는 일주일마다 동양고전 두 권을 읽고 그 책들을 다룬 두 편의 서평을 쓰는 무모한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말이 서평이지 사실상 독서감상문 내지 독후감을 쓰고 있으나 그조차도 만만하지 않다. 그러다 보니 숙독을 해야 할 동양고전은 주마간산(走馬看山)이 되기 일쑤다. 그러나 이미 시작해서 끝은 봐야 하니, 기호지세(騎虎之勢)의 마음으로 내달릴 뿐이다. (내 나이 젊으니 고전 완역본을 숙독하는 일이야 언제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안이한 마음도 있다.) 그런 기세로 이번에는 동양의 3대 경전 중 하나라는 《시경》에 도전했다.


《시경》의 존재를 처음 인지한 것은 오래전 읽은 고 신영복 선생의 『강의 (나의 동양고전 독법)』 덕분이었다. 저자는 그 책에서 《시경》의 내용을 소개하면서, 《시경》이 동양고전의 입문서에 해당할 정도로 중요한 고전이라고 했다. 그 이후로 《시경》 전체를 내가 직접 읽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시경을 읽다』 저자 양자오는 중화권의 대표적인 인문학자다. 타이완 대학교에서 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하버드대학교에서 역사학을 공부했다. 최근에는 일반 대중을 상대로 동양고전과 중국 지성사 강좌를 진행해 온 참여형 인문학자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약력을 지닌 저자는 《시경》을 소개하기에 앞서 중국 문자와 중국어의 특수한 관계에 대해 설명한다. 중국의 문자는 언어를 기록하기 위해 발명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주나라 사람의 손에서 문자는 초월적 세계의 정보를 기록하고 보조하던 것에서 인간 세상의 현세적 정보를 기록하고 보존하는 것으로 그 기능이 전환되었습니다. (31쪽)


이렇듯 상나라(은나라) 때에는 신성한 내용을 기록하던 중국의 문자는 상나라를 무너뜨리고 들어선 주나라에 이르러 인간 세상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보존하는 것으로 그 역할이 바뀌었다. 그러나 그 역할의 변화에도 문자의 신성한 특징은 그대로 남아서 문자가 언어보다 높은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당나라 때 발명된 ‘백화문’이 20세기에 상용될 때까지 문자가 거의 변화하지 않았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2천 년 전의 사마천과 2천 년 뒤의 량치차오가 입말로는 소통할 수 없으나, 문자로는 거의 불편 없이 소통할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그러한 특성으로 현대 중국인들은 누구나 직접 2천여 년 전의 중국 고전을 번역 없이 읽고 이해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시경》은 이러한 중국 문자의 배경 속에서 탄생한 책으로, 중국 문자가 가장 일찍 소리와 결합한 사례라고 지은이는 설명한다.


《시경》의 시대 배경을 살펴보면, 상나라(은나라)를 무너뜨리고 중원 대륙에 새롭게 등장한 나라가 바로 주나라다. 주나라는 연맹체 국가에 가까웠던 상나라를 무너뜨리고 ‘봉건제’라는 새로운 통치 체제를 세웠다. 이를 위해 어떤 종친이나 공신을 지정해 특정한 땅과 백성들을 하사하고, 그 땅을 대대손손 소유하고 관리하도록 했다. 군사력으로 정복한 영토지만, 나라를 안정시키 위해서는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당시 지배계급은 새로운 체제를 확립하기 위해 각 봉국 백성들의 삶과 문화를 파악하고 이해해야 했다. 그래서 민정(民情)을 살피는 수단으로 서민들 사이에 불리던 민가를 채집해 문자로 기록하고, 이를 귀족 교육의 교재로 삼았다.

이 때문에 후대 사람들은 《시경》에서 성현의 교훈을 끌어내려고 애써 경전의 지위를 얻게 되었으나, 본래는 민중들의 자연스러운 노래였다. 여기에 덧붙여 저자 양자오는 말한다. 후대에 덧씌워진 포장을 벗기고 최대한 《시경》을 그것이 탄생한 시대적 환경에 되돌려 놓고 읽어야 한다고.


《시경》은 크게 국풍, 아, 대아, 송 이렇게 네 가지로 분류되어 있고, 그 안에서 좀 더 상세하게 나뉜다. 바로 앞의 단락에서 《시경》이 민중의 정서와 생활이 담긴 노래라고 이야기했지만, 《시경》 전체를 보면 ‘국풍’ 외에 궁중에서 연주된 105편의 의식곡(儀式曲: 의례를 위한 노래)과 40편의 무용곡(舞踊曲: 춤을 추기 위한 노래) 또한 실려있다. 하지만 국풍 외의 노래는 유가적인 교훈이 담긴 노래들이 많아 나에겐 별로 흥미가 당기지 않았다. 국풍 편에 담긴 시가 중 한 대목을 여기에 잠깐 소개한다.


풀벌레가 웁니다. 메뚜기도 뛰놉니다.
우리 님이 아니 오니 상한 속이 아픕니다.
한번 만나 보았으면 보기라도 했으면
이 내 마음 놓일 텐데

이기동 역해 『시경강설』, 성균관대학교출판부(2004), 62쪽


《시경》 국풍 주남 편에 실린 노래 ‘풀벌레(草蟲)’의 세 개 연 중 첫 번째 연이다. 『시경강설』에는 이 노래에 대한 해설이 실려있으나 굳이 읽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현대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비유나 상징이 존재하지 않아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듯하다. 풀벌레와 메뚜기 울음소리가 들리는 계절에도 오지 않는 님을 그리워하는 내용이다.


국풍 편에 실린 모든 노래들을 읽어보진 않았으나, 내가 읽어본 시가들은 번역문만으로 충분히 공감이 가능하거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할 때는 해설을 읽고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내용들이 많았다. 특히나 남녀 간의 사랑을 다룬 노래를 봤을 때는, 시대 배경과 생활 모습만 다르지 3천 년 전에 살았던 사람들의 연애 감정도 오늘날과 다른 점이 없었다. 그들이나 우리나 똑같은 사람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일까.


중국의 옛날 역사책인 《한서》에 따르면, “옛날에는 시를 채집하는 관리(채시관)가 있었다. 천자는 그것으로 풍속을 보고 득실을 살펴 스스로 바르게 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다. 엄격한 신분제 시대였던 수천 년 전의 지배층조차 민심을 파악하려 애썼는데 (물론 그 목적은 신분제에 기초한 지배체제 유지였을 테지만), 하물며 민주 사회라는 오늘날에는 더 말해 무엇할까. 첨단 기술로 그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쉽고 다양하게 민심을 접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닌가. 적지 않은 몰지각한 위정자들이 새겨들어야 할 구절이다.






keyword
이전 04화더 큰 처세를 배우고 싶다면 읽어야 할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