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면접을 본 회사에 생각도 못한 질문을 받게 되었다.
"본인을 몇 년 차 디자이너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으세요?"
이 질문에 나는 말문이 턱 막혔다. 몇 년 차 디자이너? 2014년도에 일찍 첫 취업을 하고 2년여간 회사를 다니고 퇴사. 그 이후 2-3년간의 공백이 있었다. 그리고 다시 회사에 들어가서 1년 6개월..그리고 프리랜서로 일한 2년. 나를 몇 년 차 디자이너라고 할 수 있을까?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그래픽 디자인 경력을 쳐주신다면 3-4년 차 디자이너라고 할 수 있을 것 같고 브랜딩 디자인 경력으로 말하면 신입이나 1년 차 경력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몇 년 차 디자이너냐는 질문에 실질적으로 일해온 시간을 경력을 말할 수 없었던 것은 무엇일까? 시간으로 쌓인 나의 연차가 아닌 실질적으로 감당 가능한 업무 실력에 대한 질문이라 생각했기에 대답이 머뭇거리며 나왔던 것 같다.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다. 나는 몇 년 차 디자이너라고 말할 수 있을까? 어떤 업무가 가능한 사람인 걸까? 지금의 나는 커리어를 변환하기 위해 새로운 직무에 지원을 하고 있기에 해당 직무에 대한 경험치가 현저히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래픽 디자인은 학부 4년, 회사경력 3년 6개월, 프리랜서 아르바이트 경험이 3년으로 거의 10년의 경험을 가졌는데 왜 실질적으로 내가 느끼는 연차는 3-4년 차였을까?
방법
내가 디자이너로서 결과물을 표현해 내는데 가지고 있는 차별화된 방법이 없었기 때문인 것 같다. 디자이너는 시각적으로 이미지를 표현해 내는 사람인데 '시각적으로 표현'해내는 것의 '나만의 방법'이 없었던 것이 자신감 저하의 원인 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사이트에서 레퍼런스를 참고하고 참고한 레퍼런스를 조합해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을 과연 연차가 높은 디자이너들만 할 수 있을 것일까? 신입 디자이너, 1-2년 차의 디자이너들도 모두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부분에서 신입, 경력, 연차가 나뉘는 것일까?
이 사람은 정말 경력을 가지고 있구나, 연차가 쌓인 디자이너구나 라는 부분은 어디서 느낄 수 있는 것일까 생각해 보면 이미지를 도출해 내는 방법, 디자인 결과물을 정리하는 방법, 다른 팀원과 소통하는 방법에 대한 방법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경험으로 본인이 하나씩 얻게 되는 기술이므로 이 부분에서 경력과 연차에 대한 자신감이 갈린다는 생각이 든다.
경험
나이가 먹고 연차가 쌓인다는 것이 결코 그냥 쌓이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한 직무나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수록 이런저런 경험을 하게 된다. 회사에서 사수와 트러블이 생겼던 일, 갑자기 하루 만에 업무를 끝내야 했던 일, 같이 일하던 팀의 팀원들이 모두 퇴사해 한 팀이 해체되는 것을 보았던 일, 회사가 사정이 어려워져 연봉을 삭감해야 했던 일, 마케터와 소통하기 위해 마케팅 용어를 공부했던 일 등 어쩌면 시간을 지불하고 얻은 이 경험들이 연차를 구분하는 요인인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겪은 경험이었을지라도 신입과 다른 점은 결국 시간을 지불하여 이런저런 경험을 해봤다는 것이 아닐까? 다만 여기서 경험을 차별화하기 위해서는 얻은 경험에서 내가 느낀 것이 있어야 한다는 것 같다. 다양한 경험들을 통해 느낀 나만의 가치관이나 생각들을 정립하는 것이 경험을 연차로 바꿀 수 있는 요소라는 생각이 든다.
실수
이 또한 경험에 포함되는 부분인 것 같다. 실수와 실패를 해봤다는 것은 해당 직무에서 경험을 많이 해봤다는 증명일 수 있다. 굵직한 실수와 실패가 많은 사람일수록 더 깊고 강렬하게 해당 직무를 경험해 봤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왜 몇 년차 디자이너라는 것에서 말문이 막혔을까 생각해 보면 생각보다 실수와 실패를 경험했던 일이 많이 없었고 그래서 만약 내가 해당 직무에서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을 때 쌓인 연차보다 처리를 잘 못하게 될까 하는 두려움을 가졌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연차가 높아지는 것에 몸을 사리게 되고 자신을 가지지 못했던 것 같다. 적극적으로 부딪히고 경험하고 실수를 해본 경험이 연차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하는 요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몇 년 차 디자이너일까? 혹은 나는 몇 년 차일까? 라는 질문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생각해 보는 것이 좋다. 이 질문으로 나의 연차를 돌아보게 되었다. 이 질문에 대답이 턱 막히는 내가 부끄럽지만 또 한편으론 솔직하게 내 실력을 가늠하는 질문이기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