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3일 월요일
하버드 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한 첼리스트 장한나씨는 이렇게 말했다.
"세계의 어떤 문제와 논점에도 종합적 위치에서 자신만의 조감도를 가질 수 있게 됩니다. 세계를 이끌어 나가는 리더로서 판단력을 갖춘 가운데 개개인의 삶, 나아가 인류의 삶을 풍요롭게 영위할 수 있도록 영향력을 행사하는 종합적 지식인을 배출하고자 미국의 명문 대학교들은 끊임없이 노력을 기울입니다."
위의 글은《150년 하버드 글쓰기 비법》에서 인용한 말이다. 이 책의 저자인 송숙희 글쓰기 코치는 글쓰기 교육 현장에서 수강생들에게 '내 글을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전달하는 기술'을 중점적으로 전수한다. 사람마다 글을 쓰는 이유와 목표는 제각각 다르다. 하버드 대학교가 내건 글쓰기 수업의 목표는 '논리적 사고력 향상'이다.《150년 하버드 글쓰기 비법》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하버드는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글쓰기를 가르칩니다. 논리적으로 글을 쓰는 능력은 단순히 학습 효과를 뛰어넘어 능동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를 지닌 사회인으로서의 덕목을 실현합니다. 생각을 탄생시키는 논리적 글쓰기 능력은 학문의 내용에 국한되지 않고 사회 전 분야에서 꼭 필요한 과제입니다."(p.34)
쓰기와 생각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글쓰기에는 생각이 필요하다. 생각은 책을 읽으며 간접적으로 경험하거나 직접 몸으로 체험한 것들이 쌓이면서 만들어진다. 생각이 쌓이면 표출하고 싶다. 나의 생각은 이러하다고 알리고 싶다. 알리고 싶은 생각을 말로써 전달하거나 글을 써서 드러낸다. 말은 상대방이 앞에 있어야 잘 전달된다. 글은 굳이 상대방과 마주하지 않더라도 전달될 수 있다. 그리고 말보다 더 널리 전달될 수 있다. 글의 힘이다. 나는 말하는 것도 좋아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글쓰는 것도 좋아한다.
하루에 나의 행동 반경은 정해져 있다. 집과 회사 그리고 헬스장이 전부다. 헬스장에서는 혼자 운동하고 오기 때문에 누군가와 대화할 일이 전무하다. 그래서 집과 회사에서 대화하는 게 전부다. 회사에서는 업무적인 얘기만 주로 나누기 때문에 내 생각을 알리는 일은 업무에 국한된다. 집에서 아이들과 대화를 할 때는 당연히 아이들이 원하는 주제에 맞춰져있다. 학교와 유치원에서 친구들과 놀면서 재미있었던 일이나 속상했던 일, 점심에 뭘 먹었는지에 대한 이야기, 내일은 친구들과 무엇을 하며 놀 것인지에 대한 계획을 주로 말해 준다. '말해 준다'고 표현한 것은 대부분 내가 듣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재잘거림에 호응한다. 아이들이 조금 더 크면 지금보다 더 많은 대화를 나누길 희망하며(아빠를 피하지 않고 대화를 거부하지 않기를 무엇보다 희망하며) 아이들이 나에게 말하고 싶어하는 열망에 열심히 응하고 들어 준다. 들어 주는 것도 즐겁지만 나도 말하고 싶을 때는 아내에게 간다. 아내와 대화하는 게 가장 즐겁고 재미있다. 연애할 때는 6시간 동안 카페에서 대화만 한 적도 있다. 대화하느라 커피가 식으면 한 번에 털어 마시고 새롭게 따뜻한 커피를 주문했다. 그러나 다시 대화에 빠져서 또다시 식은 커피를 마시곤 했다. 지금은 아이들을 재우고 난 이후에만 길게 대화를 할 수 있다. 아이들을 챙기고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에 시간을 많이 쏟기도 하지만, 아내와 대화를 하고 있으면 어느새 아이들이 와서 재잘거린다. 그러면 자연스레 아이들이 중심이 되어 대화가 오고 간다. 못다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고 하지만, 아이들을 재우고 나면 평일에는 보통 우리도 같이 잠들어 버린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면 메모를 한다. 주로 핸드폰에 있는 메모 어플을 켜서 쓰거나 아내와 카톡하는 방에 남긴다. 답변을 원해서가 아니라 잊어버릴까봐 남긴다. 나중에 아내의 얼굴을 보면 아까 하지 못했던 말이 떠오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그렇지 못할 때도 있기 때문에 생각나는 걸 메모한다. 메모를 하다가 이건 좀 더 길고 자세하게 말하고 싶으면 글을 쓴다. 아내에게 말하고 싶은 주제였는데 어느새 글을 쓰고 있다. 아내와 대화하면서 쓰고 싶은 주제가 생각나기도 한다. 그러면 메모를 했다가 다음날 새벽에 출근해서 일하기 전 글로 묶어준다. 묶어준 글을 마무리하면 브런치에 발행한다. 발행하지 못한 글은 '작가의 서랍'에 넣어두고 나중에 다시 마무리한다. 쓰다보면 말할 때와 또 다른 재미를 느낀다. 말할 때 떠오르지 않았던 생각이 쓰다보면 떠오르는 경우가 많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게 글이 주는 즐거움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글쓰는 게 재미있다. 쓰다가 막힐 때면 답답하다가도 탁 풀리는 순간에 희열을 느낀다.
지금 하고 싶은 말을 글로 쓰지만 이전에 썼던 글을 다시 읽으며 새롭게 떠오르는 생각을 쓰기도 한다. 썼던 글을 나중에 다시 읽어보면 '나는 이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 '그때는 내가 여기에 집중하고 있었네.' , '지금 생각해보니 그건 내가 잘못 생각했어.' 등 여러 가지를 느낀다. 마치 앨범에 있는 옛날 사진을 들여다보는 것 같다. 그 느낌을 토대로 새로운 글을 쓴다. 글이 글을 낳는다.
지금 이 글도 어제(11월3일) 발행하려고 썼지만 예상치 못하게 일이 바빴고 퇴근 후에는 아이들 챙기느라 여유가 없어서 오늘(11월4일)에서야 마무리한다. 할로윈에 있었던 일도 쓰려고 메모했는데 오늘은 쓰기 힘들 것 같다. 이 글 마무리하고 얼른 빨래 접고 아이들 양치하는 걸 도와줘야겠다. 그리고 모든 걸 다하고 조금이라도 시간이 되면 몇 줄이라도 써놔야겠다. 그 몇 줄이 내일을 위한 밑거름이 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