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모태신앙이다. 모태신앙의 사전적 의미는 ‘어머니의 태 안에서부터 물려받아 믿게 된 신앙’이다. 부모님께서 독실한 천주교 신자셔서 어렸을 때부터 매주 빠짐없이 성당에 갔다. 어렸을 때 본 신부님은 거룩해 보였다. 특히 미사를 집전하는 모습이 그러했다.
스테인글라스를 통해 들어온 형형색색의 빛이 신부님 머리 위로 떨어진다. 마치 무지개가 뜬 것 같다. 신부님은 검은색 수단(길이가 발목까지 내려오고 여러 개의 단추가 달린 옷) 위에 새하얀 제의(미사 집전 시 신부님이 입는 전례용 의복)를 입고 있다. 신자들이 있는 곳보다 서너 계단 위에 자리한 제대(제단)에서 두 팔을 벌린 채, 부드럽지만 굵고 또렷한 목소리로 기도문을 암송한다. 신부님의 목소리가 성당을 가득 채운다.
신부님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처음 들게 된 때였다. 그때가 초등학교 2학년이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신부님이 되겠다는 마음은 점점 옅어졌다. 신부님은 평생 독신으로 살아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부터다. 평생 혼자서 살 자신이 없었다.
현실적으로 생각했다. 공대로 진학하기 위해 이과를 선택했다. 수학, 물리, 화학 등 공대를 가기 위한 공부에 집중했다.
그러던 차, 고등학교 3학년 1학기가 갓 시작한 3월에 예비신학생 교육을 들었다.
예비신학생 교육은 신학교에 진학하기 위해선 꼭 들어야 하는 과정이다. 교육은 한 달에 한 번씩 있었다.
성당에서 진행하는 게 아니라 신학교에 직접 가서 교육을 듣는다. 신학생이 되면 어떻게 생활하고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지, 신학교에 진학하기 위해서는 어떤 부분을 준비해야 하는지 등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예비신학생 교육을 듣기로 했을 때, 신부님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다시 들었던 건 아니었다.
교육 시간 동안 묵상도 하고 기도도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당시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가 심했다. 수능만을 위한 공부에서 잠시 벗어나 심적인 위로를 받고 싶었다.
예비신학생 교육 첫날, 담당 신부님께서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이 자리에는 열렬하게 신부님이 되고 싶은 학생도 있을 거고,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한 학생도 있을 겁니다. 이 교육을 듣는다고 해서 다 신학교에 갈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내 마음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부모님이나 주변의 기대 어린 시선을 떠나서 오로지 나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발견하는 게 중요합니다. 잠시 학업에서 벗어나, 이 교육을 듣는 시간 동안만은 온전히 나 자신의 마음을 살피는 것에만 집중하면 좋겠습니다.”
사실 이 교육을 신청하고 나서도 고민이 많았다.
‘내가 이 교육을 듣는 동안 다른 학생들은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을 텐데’, ‘수학 문제 하나라도 더 풀어야 할 시간에 신부님이 되고 싶은 학생들이 꼭 듣는다는 교육을 내가 들어도 되는 걸까?’, ‘담당 신부님이 나한테 너는 신부님이 되고 싶은 마음도 없는데 여기 왜 왔느냐고 물어보면 뭐라고 해야 하지?’, ‘혹시 이 교육을 듣고 나면 무조건 신학교에 가야만 하는 건가?’ 등등. 교육을 들으러 가는 날까지도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신부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 내가 했던 모든 고민들과 부담감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딱 지금 나에게 필요했던 말을 해주셔서 마음이 편안해졌다. 마음이 편안해지니 온전한 마음으로 교육에 참여할 수 있었다.
바깥에서 바라본 신학교의 모습은 정말 따뜻한 느낌이었다.
붉은 벽돌로만 이루어진 기숙사 건물과 학과 건물, 성전(미사를 드리는 공간. 신학교에서는 미사 드리는 곳이 있는 건물도 성전이라고 불렀다)의 모습이 전체적으로 하나의 부드러운 곡선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그 앞에는 파릇파릇하고 깔끔하게 정돈된 잔디 운동장이 있다. 운동장에는 새하얀 축구 골대가 양쪽 끝에 서 있었다. 운동장 주변에는 벚꽃 나무가 빙 둘러져 있어서 벚꽃이 만개했을 때 그 모습은 장관이었다. 신학교 뒤편에는 마치 신학교 전체를 따뜻하게 안아주듯 크고 푸른 산이 있었다. 붉은색, 푸른색, 하얀색, 그리고 벚꽃의 분홍색이 매우 조화로웠다.
신학교의 이러한 분위기도 내가 열심히 교육에 참여하는 데 한몫했다.
‘이런 대학교에서 공부도 하고 산책도 하면서 생활하면 너무 좋을 것 같다’는 마음이 절로 들었다.
교육을 듣고 오면 확실히 수험 공부에 집중이 더 잘됐다. 공부와 휴식이 균형을 이루는 기분이었다.
교육을 들으면 들을수록 신부님의 삶 또한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신부님의 삶은 단순히 혼자 사는 삶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는 삶이라고 알려줬다.
담당 신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서로가 경쟁자가 아니라고 말하셨다. 지금 같이 교육을 듣는 친구들은 신학교 입학을 위해 서로 경쟁하는 라이벌이 아니라, 함께 이 길을 걸어가는 형제라고 말했다.
상대방을 누르고 올라서야 내 등급이 올라가는 입시와는 다르게 경쟁이 없는 곳. 서로를 형제처럼 여기며 끌어주고 밀어주는 곳. 예비신학생 교육을 들으며 알게 된 신학교의 삶은 그러했다. 고3 수험생이 겪는, 그리고 일반 대학을 다니는 학생들이 겪는 현실과는 정반대였다.
'일반 대학을 가면 더 많은 사람들과 경쟁해야 한다.'
'대학도 대학이지만, 그 이후 취업은 더 큰 문제다. 먹고사는 일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사회는 약육강식의 세계다. 끊임없이 자기계발을 하며 하나라도 더 많은 스펙을 쌓아야 한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더 좋은 직장에 취직할 수 있다.'
일반 대학을 가면 이러한 고민들 속에서 살아갈 것이다. 무한한 경쟁 속에서 사는 삶은 과연 행복할지 의구심이 들었다. 이런 의구심 속에서 예비신학생 교육은 나에게 또 다른 길도 있다는 걸 알려줬다.
천주교 신자로서 신부님이 되어 살아가는 삶은 그 또한 의미 있는 삶일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처음 예비신학생 교육을 신청했을 때 마음과는 달리, 신학교를 가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그 해 수능을 무사히 치르고 신학교에 합격했다.
설레고 들뜬 마음으로 신학교에 갈 준비를 했다.
남들은 잘 가지 않는 길을 간다는 게 조금은 두렵기도 했지만, 당시엔 두려움보다 설렘이 훨씬 컸다.
하지만 나는 가장 중요한 걸 간과하고 있었다.
이상적인 생각만 하느라 신학교 안에서 내가 겪게 될 현실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하지 않았다.
현실에 부딪치자 내 환상은 깨졌다.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