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예원 Oct 24. 2021

제철음식을 먹는다는 것

 광명역에서는 늘 손이 무겁다. 서울살이가 이제 10년인데 그 10년 동안 엄마는 나를 결코 빈 손으로 돌려보내지 않았다. 애정과 걱정이 넘치는 엄마 덕분에 나는 사양과 거절을 미덕으로 삼는 장녀일 수밖에 없다. 엄마도 평일 내내 일하는 사람이다. 나는 나를 먹일 힘이 없어서 배달비를 5천 원씩 내고도 배달 어플을 수시로 들락거리는데 당신 본인과 아빠까지 먹이고 집안일을 돌보는 와중에 내 반찬까지 챙기게 만드는 것은 도저히. 편히 받을 수가 없다. 심지어 나는 집에서 밥 먹을 일이 없어 그 소중한 반찬을 매번 썩히는 못 된 딸이란 말이야.


 나는 내 몸을 먹이기 위해 요리라는 수고를 들이지 않는 편이다.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으니 자취생이라 그렇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아무튼 자취하는 나와 내 동생은 그렇다. 요리라는 거창한 단어를 들 것도 없다. 라면 끓이기도 귀찮아서 컵라면만 사고 과일 깎기 귀찮아서 껍질 없는 과일만 먹는다. 남을 먹이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결코 수고하지 않는다. 너무 귀찮다.


 이 문제로 여러 번 모진 말을 했다. 나는 어차피 집에서 밥 안 먹는다니까. 반찬 줘봤자 안 먹는다니까. 먹고 싶은 음식이 있으면 알아서 잘 사 먹는데도 꼭 엄마는 직접 해 먹이고 싶은 마음을 꺾지 못했다. 기어이 곰팡이 핀 반찬통을 비우게 만드는 엄마가 밉고 미안해서 몇 번을 옥신각신을 7년을 했다. 안 먹는 반찬은 줘 봤자 썩히기만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7년이 걸렸는데 이제는 기어코 과일을 들려 보낸다. 밥은 안 먹어도 과일은 잘 먹는다는 걸 아는 엄마가 노선을 바꿨다. 껍질을 깎아 바로 꺼내 먹기만 하면 되는 상태로. 참외, 오렌지, 골드 키위, 수박. 많기도 하다. 누가 깎아주지 않으면 귀찮아서 과일도 안 먹는 몹쓸 딸이라 꼭 환갑 엄마를 고생시킨다.


 양 손바닥을 묵직하게 누르는 종이가방 때문에 손바닥은 매를 맞은 것처럼 빨간 줄이 죽죽 그어졌다. 제철 과일을 먹는 게 얼마만이지. 내가 철 맞춰 먹는 과일을 딸기 밖에 없다. 씻기만 하면 되니까. 그 정도 수고는 나도 한다. 엄마가 이 소리를 들으면 고작 그 정도에 수고라는 말을 쓰지 말라고 잔소리할지 모르겠다. 그나마도 귀찮아서 사 온 딸기의 절반은 물러서 결국 버린다는 것도 모르면서. 엄마 딸의 게으름은 엄마가 상상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란 말이야.


 그러고 보니 어제 그런 대화를 나눴다. 

“요즘 감자가 제철이지.” 

“감자가 제철이야? 여름 채소인 건 알았는데 6월이었구나..”


 출근길에 햇감자 냄새를 맡았다는 말에 엄마가 그런다. 감자 철이 6월이었단 말이야? 옥수수도  복숭아도 자두도 여름이면 으레 먹었던 것들이 다 이제 철이란다. 생각해보니 스스로 음식을 해 먹지 않는 내가 제철 음식을 어떻게 알겠는가. 감자가 대충 여름에 나온다는 걸 알고 있는 것도 몸으로 익힌 결과다. 제철 음식을 부지런히 해 먹인 할머니와 엄마 덕분에.


 봄에는 쑥을 넣은 된장국에 밥을 말아먹었다. 향긋한 두릅이며 돌나물, 몇 가지나 되는 봄나물로 채워진 식탁을 받았다. 여름엔 콩국수를, 가을엔 싱싱한 석화를 먹었고, 겨울이면 동치미에 군고구마를 먹었다. 잘 먹겠습니다 버릇처럼 인사하면서도 늘 당연하게 받았던 상이다. 밥을 챙겨주신 노력에만 감사하면 될 일이라 생각했지, 철 맞춰 메뉴와 재료를 골랐을 마음과 섬세함은 다 커서도 몰랐다. 정말로. 전혀 몰랐다.


 그러니 내 식성과 계절 감각은 사실 할머니가 빚고 엄마가 쪄낸 셈이다. 그걸 양 손 가득 반찬통을 들고 서울에 돌아오기를 10년째 반복하고 이제야 안다.

작가의 이전글 접지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