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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원 Jul 15. 2021

접지력

 침대에서 일어나기 전부터 몸이 무거운 날이 이어진다. 이번달 들어 매일 그랬지만 오늘은 특히 그랬다. 주말에 제대로 쉬지 못하기도 했고, 사흘째 비가 이어졌다. 요샌 날마다 아침 계획을 엎고 잠이나 더 자고 싶다. 운동이든 책이든 글이든 뭐든 생각대로 실천한 것이 없다. 피티 수업은 약속이니까 나간다. 그나마도 절반은 날렸다.


 오늘도 운동을 취소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었는데 이번달엔 날린 수업이 더 많아서 빠지질 못했다. 금전감각 모자란 나도 돈 아깝다 생각 들 정도로 안 가기도 했고, 아침마다 선생님한테 오늘 못 가요 하기도 창피할 지경이라. 꾸역꾸역 짐을 챙기고 분재에 물을 주고 나섰다. 지난주에 복근 운동 찔끔한 여파가 아직까지다. 걸을 때도 당긴다. 몇 달 새 크런치 자세도 못 잡는 몸이 됐다. 좀만 성실하면 금방 회복할텐데 성실하기가 너무 귀찮다


 불편한 곳 없으세요? 인사 같은 질문에 허리가 뻐근해요 했더니 내 몸을 한번 죽 훑고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끄덕인 고개가 무슨 의미였던 걸까. 오늘따라 선생님이 복근 쓰는 운동을 시킨다. 오늘은 근육 찢어지는 느낌도 짜증나고 애쓰기도 싫어서 자꾸 몸에 힘이 풀린다. 선생님도 그걸 느꼈는지 훨씬 간단한 동작을 시킨다. 좀 죄송해진다. 선생님한테 짜증을 내려고 했던 건 아니고요.. 머쓱한 마음에 잠깐 마음을 잡았다가 찌릿한 느낌에 다시 맥이 풀린다. 그렇게 운동을 시키려는 선생님과 하기 싫은 나 사이의 타협점 같은 동작이 30분 동안 더 이어진다.


 딱 두 개만 더, 마지막. 어르는 목소리에 겨우 동작을 마치고 매트 위에 선다. 정적이고 가열찬 동작을 마친 몸이 충분히 데워지고 기름칠한 것처럼 풀려있다. 방금까지 절대 못 견딜 것처럼 아팠는데 신기하게 온 몸이 시원하다. 뿌듯한 표정으로 눈을 맞춰오는 선생님을 마법사라도 된 양 우러러본다. 시원하죠? 네, 시원해요. 그 한마디를 들으려고 수업한 사람처럼 웃고는 다음 시간에 봬요 하고 수업을 마무리한다. 락커룸으로 돌아가는 10초가 항상 뭐에 홀린 사람 같다. 하고 나면 이렇게 좋은데 말이지. 이쯤 되면 내가 잠에 속는 건지, 운동에 속는 건지 모르겠다.

 

 필라테스를 하면서 내 몸의 중심을 찾아가는 상상을 한다. 지구와 내핵과 내 중심이 이어져 내 몸이 반듯하게 땅과 연결되는 상상. 내 발바닥의 접지력이 좋아지는 상상을 한다. 


 바른 자세로 서는 법을 알고 있다면 정말로 부럽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나는 전방경사 때문에 조금만 긴장을 풀면 배를 내민채 허리를 꺾고 몸의 하중을 무릎에 싣는다. 무릎 나가고 아랫배 나오기 딱 좋은 자세다. 이런 자세를 두고 어떤 의사는 내 몸을 지탱할 힘도 없어서 골반과 무릎에 기대 서있는 것이라는 노골적인 평을 했다. 필라테스 선생님에 의하면 발의 아치가 조금 완만해서 그렇다고 한다. 서는 폼이 그래서 허리가 자주 뻐근하고 걷는 폼도 어딘가 뒤뚱거리고 통통 튄다. 버스에서도 유난히 잘 휘청이고, 곧잘 발을 헛딛는다. 발목을 접지를 뻔한 적도 많다. 이럴 때마다 나는 지구에 대한 접지력이 약하다는 생각을 한다. 이 행성에 발붙이기 버거워하는 것이 걸음에서부터 티가 나는 거라고.


 락커룸을 걸어 나오며 한결 시원해진 허리와 무릎에 가벼운 고양감을 느낀다. 겨우 한 시간을 들여 훨씬 지구에 알맞은 몸을 가지게 된 기분을 만끽한다. 이제 막 지구에 편입한 사람처럼 신이 난다. 발바닥이 지구에 잘 붙어 있는 느낌. 오늘은 더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나와, 이 행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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