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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원 Jan 19. 2021

사람은 태어난 날을 닮기 마련이라

3월 17일

 “뱀 나온다니까!” 엄마는 밤에 휘파람 부는 걸 정말 싫어한다. 웬만해서는 짜증 내지 않는 우리 엄마도 휘파람만 불면 벌컥 내 등을 때렸다. 그런가 하면 8년 된 내 애인은 밤엔 절대 손톱을 깎지 않는다. 쥐가 먹는단다.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되는 걸 알고 있어도 내 마음에 걸리는 미신이 하나둘 있을 것이다. 내게도 미신처럼 믿는 말이 있다.


사람은 태어난 날을 닮기 마련이라는 미신.


 사람은 태어난 날을 닮기 마련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을까? 주변에 몇 번이고 물었지만 들었다는 사람은 몇 보지 못했다. 미신이라기에는 나만 믿는 말인 것 같고 언제 들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별 것 아닌 말이 내게는 깊이 박혀있다. 그 말을 듣자마자 그래서 3월에 태어난 내가 이렇구나! 너무 쉽게 납득했기 때문에 내게는 미신이 되었다. 그래서 누군가의 생일을 들으면 나도 모르게 편향적인 결론을 내고 만다. 아, 저 사람은 그래서 그렇게 사랑스러웠구나. 저 사람은 그래서 그런 눈빛을 했구나. 저 사람은 그래서, 저 사람은 그래서. 내게 생일이 주는 인상은 혈액형보다 강하다.


 먼저 나는 봄에 태어났음을 밝힌다. 봄 하면 이런 단어가 떠오른다. 설렘. 벚꽃. 햇빛. 따뜻함. 사랑스러움. 따스하고 아기자기한 말들. 그런데 3월의 기억을 떠올리면 이렇다. 새 학기가 시작되는 때. 왠지 어색하고, 어설프고, 긴장감에 명치가 간질간질하다. 작년 한 해 동안 가꾼 안정감이 그립고 의욕만 앞서 실수도 한다. 아직 서늘한 공기에 대체 봄은 언제 오나 싶고 어서 꽃이 피기를 기다린다. 분명 우리가 기대하는 봄은 아닌데 시기상 봄에 속하는 때. 3월 17일, 겨울과 봄이 만나는 지점에 태어났다.


  3월 17일은 봄이라기엔 춥고, 겨울이라기엔 봄이 시작해버린 날이다. 음력으로 따지면 2월 14일이니 아직 겨울이라 불러도 무방할 것 같은데 아무튼 봄이란다. 이때쯤엔 아직 나무도 휑하다. 제주도에 가면 유채 정도는 볼 수 있으나 그곳에서도 겨울 코트를 껴입어야 한다. 겨울비처럼 찬 비가 봄비랍시고 내리고 가끔 눈도 온다. 이 애매하기 짝이 없는 초봄의 생일은 아주 곤란하다. 이미 개학하고도 2주가 지나버려 작년의 친구들과 생일을 지내자니 새로운 친구들이 맘에 걸리고, 그렇다고 새로운 친구들에게 생일을 알리자니 아직 그런 사이는 아닌 것 같고. 난감한 줄다리기를 잘해야 한다. 어떤 이유로든 누구든 서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인이 되기 전까지 생일을 이렇게 지냈다 보니 점점 생일이 불편해지더라. 다른 사람의 생일을 챙기는 일이 속도 편하고 훨씬 재밌었다.


 애매한 생일 덕에 어쩐지 나는 늘 쩜오 인생을 사는 느낌으로 살았다. 일단 3월 생인데 일곱 살에 학교에 들어간 것부터가 그랬다. 뭐든 어중간한 재능에 특기 없이 취미만 많은 것도, 난 따뜻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데 차갑다는 평을 듣는 것도, 뭔가 어설프고 뚝딱이는 것도. 다 3월 때문이다. 사람은 태어난 날을 닮기 마련이라. 그래서 나는 내 생일이 기다려지지 않았다. 생일은 내가 가진 온갖 애매함을 상기니까.


 “0.5가 아니고 1.5인 것 같은데 너는.”

 내 관점을 단번에 바꿔버린 구원과 같은 말이었다. 3천 원짜리 크림맥주를 두세 잔 마신 상태였고 열등감에 사로잡혔던 시기였다. 쩜오론을 늘어놓다 어느새 신세한탄이 돼버린 구구절절을 들은 친구가 아무렇지 않게 덧붙였다. 네가 쩜오라면 0.5가 아니고 1.5인 것 같은데. 그 말을 듣기 전까지는 눈치채지 못한 허점이 깨달음처럼 꽂혔다. 내 쩜오론엔 늘 일의 자리가 부재했다. 당연히 0.5라고 생각했는데 1.5일 수도 있다니. 어쩌면 가벼운 위로였을지도 모르는 그 말이 내 마음을 저 위로 끌어올렸다.


 7살에 학교에 들어간 덕에 위아래로 두 살 정도는 상관없이 친구를 먹었다. 늘 나이가 애매했다 보니 나이를 신경 쓰지 않았고 이십 대 후반이니, 서른이니 하는 굴레에서 자유로웠다. 특기보다 취미가 많은 덕에 기분 전환할 수 있는 일들이 산더미인 데다 즐기기만 하면 되니 부담도 없었다. 내가 차갑게 보일 수 있다는 걸 자각하고 있기 때문에 좋아하는 사람들이 오해하지 않도록 서슴 없이 애정을 표현하고 어색해하지 않는다. 뭔가 어설프고 뚝딱이기 때문에 더 열심히 했고 그런 태도는 대부분 좋은 평을 얻었다. 부족함이 아니라 가능성이었던 거다.


 3월 17일. 여기도 저기도 끼지 못하는 애매한 날인 줄 알았더니 사실 겨울도 봄도 모두 품은 날이었다. 내가 원하면 어느 쪽에든 낄 수 있는 날에 태어난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태어난 날을 닮기 마련이니까. 이번 생일이 돌아오면 서른이 되고, 앞자리가 바뀐다. 생일과도 낯가리던 내가 이번 생일엔 괜히 의미부여까지 하고 싶어 졌다. 서른이면 생일도 좋아할 수 있게 되는 걸까 하고. 이제 생일은 내 애매함을 곱씹기보다 가능성을 가늠하는 날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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