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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원 Oct 24. 2021

bi-cycle

“가만히 있어도 물속에 있는 것 같은 날씨에 따릉이를 타고 왔다고?”

 땀에 푹 젖어 돌아온 내 모습에 근예는 고개를 절레절레한다. 나는 더워서 자다가 깼는데 하면서 연거푸 에어컨 온도를 내리더니 신중하게 선풍기 방향을 잡는다. 요샌 더워서 두세 번은 깨. 언니는 안 그래?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는 목소리로 자꾸 신기해한다. 그 정도인가. 나는 아직도 봄 이불을 안 넣었다. 하긴 습한 날씨를 겪을 일이 없다. 사무실에서는 담요를 두르지 않으면 앉아 있기도 어려울 정도로 하루 종일 에어컨이 돌아간다. 커피 사러 나갈 때 쬐는 여름빛에 얼었던 몸이 사르르 녹는 느낌이 들 정도로. 냉하고 건조한 사무실 공기에 나는 더 숨이 막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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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몸을 좀 움직여야겠다. 기지개를 켜다 뻐근하게 굳은 몸을 실감하고 따로 운동하러 갈 시간은 없어서 자전거로 퇴근하기로 했다. 회사 앞 따릉이 대여소에서 자전거를 하나 빼서 집까지 자전거를 몰고 걸으면 딱 90분 정도가 걸린다. 속으로 플레이리스트를 채운다. 오늘 무드엔 전진희를 들어야겠다. 차분한 마음으로 한강을 따라 달리고 싶다. 라이딩은 오랜만이니까. 라이딩이라고 하니 좀 있어 보이는 것 같다. 따릉이로 정정한다. 아무리 익숙한 길이래도 열두 시 넘는 건 무서우니까 자전거 타려면 오늘은 꼭 10시엔 퇴근해야겠다. 그러기로 작정했다. 얼른 나가고 싶어서 엉덩이가 들썩인다. 마음은 이미 한강으로 달린 지 한참이다. 대충 내일 해도 될 일을 가늠하고 급히 일어난다. 내일 봬요. 하고 후다닥 나서는 인사 뒤로 고생하셨습니다. 하는 대답이 돌아온다.


퇴근 지문을 찍고 엘리베이터를 부르는 사이 따릉이 어플을 켜고 초조하게 새로고침을 한다. 방금 길 건너에 따릉이 한 대가 들어왔다. 이 시간에 따릉이는 인기가 많아 금방 금방 나가버린다. 얼른 달려가서 잡지 않으면 오늘 따릉이 출근은 실패다. 제발 아무도 내 따릉이를 가져가지 말아 주세요. 오늘은 꼭 따릉이로 퇴근하고 싶어요. 신호등 앞에서도 발을 종종거리다 초록불이 되자마자 따릉이 앞으로 달려간다. 다행히 내 따릉이가 남았다. 얼른 바구니에 가방을 올리고, 플레이리스트를 틀고, 워치로 운동 기록을 시작하면 달릴 준비가 끝난다. 오랜만이다, 따릉이 퇴근.


자전거를 타면 오롯이 혼자다. 아무도 내 속도와 같지 않고. 누구에게도 맞출 필요 없이. 내가 사진을 찍고 싶으면 멈추고, 심장박동을 높이려면 허벅지에 힘을 주고 바를 구른다. 바람을 타는 것도, 땅을 구르는 것도, 계절 냄새를 맡고 사람 구경을 하고 멍 때리고 사색하고 내일 계획을 짜고 오늘의 조각을 맞추는 모든 것이. 오롯이 나 혼자서 가능하다. 내 템포에 맞춰서. 마스크 안으로 더운 숨이 찬다. 코 끝이나 턱선 즈음이 좀 축축한데 불쾌하지 않다. 땀이 나면 그냥 빨래 생각을 한다. 빨래가 어느 정도 쌓였더라? 집에 들어가자마자 땀에 젖은 옷을 몽땅 벗어 빨래통에 넣어버리자. 그럼 되지. 땀을 흘리지 않기 위해 애쓰는 것보다 땀 걱정 없이 움직이는 편이 행복하다.


얼굴에 시원하게 부딪혀 오는 바람에도 축축하게 물기가 서려 있다. 건조하고 밝은 모니터 앞에서 말라비틀어지다 여름밤 공기를 맞으니 물에 들어간 물고기가 된 기분이다. 습한 공기가 이렇게 반가울 수 없다. 여름답다. 정말로 여름다운 공기에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마음이 벅차 온다. 여름은 이렇지. 축축해서 부드러운 공기에 자꾸 눈물이 날 것 같다. 내리막길에선 바람이 땀을 식힌다.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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