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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스카 Feb 18. 2019

결국엔

파랗게 멍든 시간들. 40

세월 앞에서 우린 속절없고, 삶은 그 누구에게도 관대하지 않다. 다만 내 아픔을 들여다봐주는 사람이 있다면 우린 꽤 짙고 어두운 슬픔을 견딜 수 있다. 모두가 널 외면해도 나는 무조건 네 편이 되어줄게 하면서 내 마음의 울타리가 되어주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렇다면 견딜 수 있는 사랑, 빌어먹을 사랑 하나는 건질 수 있지 않을까.

숱하게 빌어보고, 배반하고, 바닥 없이 지겹도록 증오했으나 여전히 사랑을 믿는다.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중 공진솔을 생각하느라 애쓰던 이건의 집 앞에 그녀가 찾아옴으로써 사랑이 전부 같다고 나지막하게 말하던 부분이 문득 스쳐 지나간다. 누구나 사랑받았고, 주었고, 그만큼의 상처를 받았고. 그럼에도 인간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다시금 반복하고. 어느 사람이든 간에 사랑받기를 원한다. 그리고 상처 받기를 꺼린다. 경험을 하고 느낄수록 더욱 늘어간다. 설렘이 두려워져 간다. 그런데도 사랑을 믿게 된다.

솔직히 이제는 이것저것 계산하고 고민하는 마음들을 그만하고 싶다. 실은 인연이라는 막연함에, 내 상처마저도 다 덮어질 사랑이 올까 하는 희망에 기대어 소중한 젊은 날을 가만히 흘려보내는 것은 아닐까. 같이 있으면 포근하고 떨어져 있어도 마음 졸이지 않는 것, 중요한 것은 그 태도와 믿음이 아닐는지. 최선을 다해서 사랑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다면 무엇보다 기쁠 것 같다.

과거 언젠가 누군가로 인해 담겨있던 그 방에서는, 아니 그러니까 그 공기에서는 고요에 고요가 더해져 정적이 되었다. 풋내기의 격정이 회오리처럼 몰아치다 끝난 아침까지 소리 없는 그 말들은 목구멍에서 다시 삼켜낸다. 그 사람과 다르게 난 마음속에 누군가를 담아두는데 절대 그걸 티 내지 않으려 한다. 잘 알고 있다. 내가 가장 매력적일 때는 나를 잘 모를 때라는 걸. 그래서 궁금한 것들도 하고 싶은 말들도 다 집어삼켜버리게. 내가 뱉은 말들이 나를 드러내지 않도록. 우리는 얇다 못해 썩어버린 동아줄이니까.

그때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어쩌면 서로에게 했던 말이다. 이제 그만 그 방에서 나와. 혼자만의 세계에서 나와. 그 좁고 어둡고 추운 방에서 나오렴. 세상은 더 따뜻하고 너를 낫게 해 줄 테니까. 하지만 누구에게나 각자의 방은 있다는 걸 알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하나의 방인 줄 알았는데, 각자의 방이었다. 들어가 문을 걸어두고 얼마나 머무느냐의 문제일 뿐 누구나 거기에 가서 머무는 거니까. 그렇겠지. 그리고 누가 손을 건넸든 어쨌든 그 요청에 응답하며 스스로 걸어 나와야만, 그래야만 나아질 수 있다. 이제 그만 그 방에서 나와. 방 한 칸 허락하지 않는 사람에게 웃어 보여야 하는 걸까 아니면 등을 지고 떠나야 하는 걸까. 가끔 우리는 우리를 옭아매는 우리로부터 도망쳐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결국엔 그마저도 사랑이었다.




글. 김태현

그림. 윤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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