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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스카 Mar 04. 2019

달에게

파랗게 멍든 시간들. 41

새벽에 갑자기 진동이 울려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목소리가 좋지 않았어. 달에게 목소리가 왜 그러냐며 물었지. 아프다고 대답했어. 그리곤 갑자기 밀려오는 서러움에 울컥했는지 엉엉 울었어. 달이 소리도 못 내고 우는 걸 들으며 괜찮다고 울어도 좋다고 했다. 참지 말고 슬프면 울라고 해 줬다. 그래서 달은 몇 초간은 하염없이 운 것 같아. 이내 머쓱해져 눈물을 뚝 그치고 헤헤 웃었으나 나지막이 더 울어도 괜찮다고 말했다. 괜히 괜찮은 척 안 웃어도 된다고 했다.

달은 왜 달이냐면 그냥 예전 첫 느낌이 달이어서 달이야. 아무튼. 달은 자기에게 와 줄 수 있냐고 하더니 결국 코 골고 잠들었어. 내 목소리가 잠이 오나. 내가 안 가고 버티며 질질 시간 끌어서 결국 지쳐 잠든 것 같더라. 괜히 귀여워.

달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지 시간이 꽤나 많이 지났다. 아주 오래오래 오래도록 참 질기다 우리. 달은 내 생각을 하면 마음이 아프다고 했어. 네 입장에 서서 네가 겪는 것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고 내게 말했어. 나는 달의 이런 깊은 마음을 좋아했던 것 같아. 나와의 대화는 대부분 늘 장난스럽지만 정말 속이 깊은 사람 같아. 연륜이란 그런 것일까. 달의 말장난만 들으면 나보다 초딩인데 말이야.

달의 위로는 남들이 해 주는 위로와 느낌이 좀 다르다. 이 사람이 건네는 말들은 내 모든 상처에 연고를 바르고 그 위에 예쁘게 밴드까지 붙여 주는 느낌이 든다고 해야 할까. 나는 달을 아주 아주 좋아해. 달에게 말했듯, 우리 엄마는 잃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몇 배로 더 신중하라고 했어. 네가 잃고 싶지 않은 만큼 신중하라고, 섣불리 행동하거나 말하고 나서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실수로 소중한 한 사람과 멀어지는 일이 없도록. 나는 그래서 달에게 언제나 비밀스럽게 신중했고 달은 이유도 모른 채 그런 내게 가끔 지치고 실망했을 거야.

그래도 이상하게 달은 내 곁을 떠나지 않고 주위를 빙빙 도는 어느 행성이었어. 끊어지지 않는 실 하나가 우리 사이에 연결된 것처럼 아무리 멀어지고 멀어져도 끊어지지 않는 느낌이라고 말하면 우리에게 좀 어울리는 말일까. 내가 힘들고 무너지는 날이면 대부분은 달의 위로가 함께였다.

이 새벽에도 망설임 없이 내 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어 주는 이 사람에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 나도 이 사람이 힘든 날 전화 걸어 주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마음처럼 행동하는 게 어려워. 잃기 싫은 것들을 잃어 보니 더 그래. 잃기 싫은 것들을 잃어야 하는 앞날을 알아서 더 그렇지. 달은 잠잠히 읊던 내 말들을 듣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더 솔직하고 싶었는데 술김에는 싫어서 참았어. 나와는 반대로 달은 참 솔직한 사람인데 내게 맞추느라 고생이 많아. 술에 취해서 자고 일어나면 기억이 나지 않으려나.

아까 전화를 하면서는 다음 주말엔 달에게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달은 답답하고 비밀 많은 나를 얌전히 기다리겠지만 말이야. 아무렴, 어쩌면 달이 나를 기다리지 않아도 내가 달을 기다리겠지만 말이야. 이제 달은 어디에 어떻게 있든 내게 너무 소중하고 큰 존재가 됐어. 갈수록 나에게 있어 달의 의미를 찾는 게 가치 있는 일이 되고 있어. 달 달 무슨 달 쟁반 같이 둥근달 어디 어디 떴나 남산 위에 떴지.



글. 김태현

그림. 윤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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