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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스카 Mar 05. 2019

달에게 part.2

파랗게 멍든 시간들. 42

달은, 잔병치례가 많아서인지 이번 환절기도 아파. 어쩌면 레이스를 하는 것 같은 기분이야. 달도 나도 둘 다 환절기만 되면 지독한 감기를 달고 살잖아. 그저 누가 먼저 아프냐의 차이인 거지. 다행인 점 하나 생각해본다면 그건 달이나 나나 둘 다 동시에 아프질 않아서, 그래서 적어도 한쪽이 아프면 한쪽이 챙겨주는 상황들이 생긴다는 거.

그렇지만 달도 나도 저번 사계절은 지독히도 잔인했었어. 두 사람 모두 상처 받았고 아파했고 울고, 또 울고. 이번에 다시 돌아올 계절 속에서 우리 운 횟수보다 더 많이 웃자. 그래야 해. 우리는 웃어야 해. 우리는 행복해야 해. 우리는 행복해야 할 필요가 있어. 그래야 할 필요를 느껴.

밤은 달과 나를 위한 시간이야. 푸르스름하게 밝은 빛이 새어 들어오기 전, 가장 아픔을 숨어서 꺼내 보일 수 있는 시간. 그 시간들이 지나 파랗게 멍든 새벽이 온다면 그제야 붓기를 가라 앉힐 차가움이 우릴 감싸는 거겠지.

예민함의 끝에 있는 요즘이라서 그런지 달을 보고 싶은 밤이 많아. 달에게 안겨서 울고 있는 나를 상상할 때가 참 많아. 작은 상처에도, 기억에도 누군가 툭 건드리면 펑하고 터져버릴 것만 같은 기분들인걸. 요즘은. 왜인지 모르겠지만 달과 같이 있다면, 그땐 그렇게 있어도 괜찮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들곤 해. 우린, 서로의 바닥까지도 알고 있잖아.

우리 차가운 공기가 가시는 봄이 오면 종로를 가자. 그 선선하고도 따스한 햇살을 맞으며 길을 걷자. 낙원상가에 가서 잘 치지 못하는 피아노 앞에 앉아 둘이 손가락 나누며 피아노 행진곡을 연주해보는 건 어때? 벚꽃잎이 흩날렸으면 좋겠어. 내 머리 위로 떨어진다면 더욱. 그걸 떼어주는 달의 손길을 다시금 느끼고 싶어.

날이 많이 풀렸어. 겨우내 잠이 들어있던 개구리가 눈을 뜨는 계절이 곧 찾아온단 얘기인 거야. 달의 목소리가 귀에 쏙쏙 들어오는 술자리가 필요해. 지금 보고싶다에 가서 우리 어서 쿠폰을 찍자. 만 오천 원짜리 안주를 시키고 둘이 그렇게 좋아 마시던 심술을 한번 쭉쭉 들이켜보자. 유쾌한 육회는 어때? 가서 육회 한 점에 청하 한잔. 청하 먹고 싶다 했잖아.

살짝 얼큰하게 취한 우리 둘이 카페에 가서 민트 초코 라떼를 시켜 마시자. 술이 살짜큼 깰 때 도림천을 다시 걷자. 졸졸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벤치에 앉아 하늘을 보자. 서울의 밤은 흐릿하지만 달은 항상 빛나고 있잖아.

많이 보고 싶어. 자꾸 보고 싶고. 아프면 내가 그냥 아파버리고 싶어. 회사일은 뭐, 그냥 연차 내지 뭐. 그래도 달과 있을 때만큼 편해지는 때가 없어. 밤이 어두울 때 달은 더욱 빛나 줬어. 그래. 그래서 더 생각나. 사실 나 요즘 많이 어두운 것 같아. 얼른 얼굴을 마주하고 속에 쌓인 것들을 먼지 털듯이 털자. 그전에 우리 먼저 전시회부터 가자. 이번 주말은 달이 아팠으니까, 감기 이겨낸 보상으로 제일 재밌는 하루를 보내자.



글. 김태현

그림. 윤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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