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막 글. 3
글을 읽고 흑연으로 흑심을 표시하는 일. 무심코 지나치던 곳에 멈춰서 시간을 낭비하는 일. 변해가는 계절의 특성을 감상하는 일. 서두르는 걸음만큼 거리를 좁혀가는 일. 뜬 눈으로 지새우는 새벽을 만끽하는 일. 곳곳에 묻어둔 기억을 꺼내 떠올리는 일. 문득 하늘을 보고서 인공위성의 빛을 보고 별이라고 착각하는 일.
이로써 우리는 삶의 굴레에서 낭만을 빼놓을 수 없게 되었고 손에 쥔 펜대를 휘갈기는 일처럼 낭만을 부릴 수 있게 되었다. 사랑의 유무를 따지고 들지 않아도 항상 낭만과의 면밀한 관계성을 유지할 수 있고 언제든 속도를 늦춰 낭만과 속삭이는 듯한 동행을 할 수 있다.
글. 김태현
그림. 윤종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