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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스카 Mar 19. 2019

내가 날 모르는 것처럼

파랗게 멍든 시간들. 44

오래도록 기다리던 백예린의 앨범이 나왔다. 그리고 사운드 클라우드에서 수백 번은 돌려 들었던 그 노래. ‘내가 날 모르는 것처럼’이 나왔다. 내 감정이 검은 물속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을 때 휩쓸리지 않도록 차분히 가라앉혀준, 고마운 곡. 가끔 그 날들이 떠올라서 자그맣게 훌적이며 슬픔을 흘려보내곤 한다. 그래도 괜찮은진 아직 잘 모르겠다. 내가 날 모르는 것처럼.

얼마 전 엄마와 전화를 하면서 그간 살아오며 느꼈던 것들을 이야기했다. “난 한 번도 행복한 적 없어. 미안해 엄마. 사실 행복한 게 뭔지 잘 모르겠어. 즐겁고 재미있던 적은 있어도 이게 행복인지는 잘 모르겠어.” 이 말에 엄마가 적잖이 놀랐고 나를 위로하려 말들을 꺼냈었다. 뭐가 행복한지 알게 되면 알려달라고 했다. 근데 있잖아. 내가 행복하다 느껴도 그건 결국 내 행복이지 엄마의 행복은 아니잖아.

엄마, 엄마 있잖아. 엄마 아들은 아직 모르는 게 너무 많아. 사랑이라 여기는 것들도 순간의 빛으로 불타고 나면 후에 남는 건 애써 숨이 끊기지 않게 붉은 온기를 내뿜는 불씨와 잿더미들만 남는걸. 이게 과연 무슨 소용일까. 그럼에도 여전히 사랑을 믿는 나는 바보 같다고 느낄 수밖에.

원체 감정이 예민하고 소란한 사람이라, 작은 충격에도 크게 덜컹거린다. 스물여섯이 되도록 흘린 눈물은 몇 양동이가 나올지 셀 순 없지만, 그렇다고 이 눈물샘은 마를 생각을 안 한다. 멍청할 정도로 항상성이 강한 신체부위인 거 같다. 이제 그만 울고 싶은데, 답답하면 울기라도 해야 감정이 시원하더라. 사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다.

이런 나의 속을 가장 잘 아는 사람. J앞에서는 거짓말을 못한다. 너무 오래 안 탓인지, 내 표정만 봐도 내 기분과 감정을 모조리 맞춰버리는걸. 물론 나도. 때로는 서로가 안쓰러워서 꼭 안고 꺽꺽 울어버린 밤도 있다. 그럼에도 나는 비밀스러울 것도 없지만 비밀스럽길 바라고 신중해져서, 주변 모두가 답답해했어.

이런 내가 지금 J에 관한 이야길 늘어놓는 이유는 백예린이 그렇게 만들었다고 하자. 이런 변명이라도 필요해. 괜히 요즘, 바쁘고 얼굴도 못 보고 사는 요즘, 서로가 바빠서 주말마저도 시간 내기 버거운 요즘에 J의 얼굴이 제일 먼저 떠올랐어. 길게 빠진 눈꼬리와 장난기 차오르면 내가 어찌 말릴 수 조차 없는 그 눈빛.

보고 싶어 요즘. 자꾸 보고 싶어. 내가 날 모르지만, 나보다 나를 잘 아는 사람. 너무 오랜 시간 이렇게 지내온 우리. 일이 정리되면 자주 보러 갈게. 나와. 우리 못다 한 그 술잔을 다시 채우자. 온전한 이해는 없다 믿는 나에게 있어서 당신의 이해만큼은 온전한 이해라고 부담 없이 자부할 수 있어.

오늘은 그런 말이 필요한 밤인 거 같아. 울컥 차오르는 이름 세 글자는 뒤로 하고서, 다시 떠오른 달이야.



글. 김태현

그림. 윤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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