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무슬림 여자 대통령 본 적 있니?

영화 <오후 5시>(2003, 사미라 마흐말바프) 리뷰

by Purple Promise


img.jpg


여성들에게 주어지는 똑같은 검은 신발을 벗고, 부르카를 벗고,
훗날 여성 대통령이 되겠다 이야기하는 아프가니스탄 여성 노크레의 이야기



제목: 오후5시
원제: Panj é asr
감독, 연출: 사미라 마흐말바프 (Samira Makhmalbaf)
각본: Mohsen Makhmalbaf(novel), Samira Makhmalbaf(screenplay)
주연: Agheleh Rezaie


러닝타임: 105분
공개: 2003년
시청 가능한 플랫폼: 없음 (한국영상자료원 소장)
어워드: 칸영화제 심사위원상 등 5회의 수상과 3번의 노미네이션





1. 사미라 마흐말바프 (Samira Makhmalbaf) 감독


img.jpg


사미라 마흐말바프 감독은 19살에 영화 <사과>(1998)를 만들고 20살에 <칠판>(2000)을 만든 그야말로 천재적인 감독이다. 그의 아버지는 모호센 마흐말바프(Mohsen Makhmalbaf)는 이란의 명망 있는 영화감독으로, 이란에는 마흐말바프 영화학교도 있다. 사미라 또한 이 마흐말바프 영화학교를 수료하였다. 더불어 그의 어머니는 마르지예 메쉬키니(Marzieh Meshkini)로, <내가 여자가 된 날(The Day I Became A Woman)>(2003)을 연출했다.


사미라 마흐말바프 감독은 <사과>와 <칠판> 외에도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은 <오후 5시>(2007)와 가난한 소년의 이야기를 담은 <두 발로 걷는 말>(2008)이 있다. 그러나 그는 그 이후로 더 이상 영화를 만들지 않았다.



2. Agheleh Rezaie


img.jpg


감독 사미라 마흐말바프는 아프가니스탄 현지에서 현지인을 배우로 섭외하고자 했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 부르카를 벗은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사미라의 말에 많은 사람들이 거절 의사를 비쳤고 처음 노크레 역으로 선정됐던 배우 또한 이것을 이유로 출연을 고사했다. 아겔레는 아프가니스탄에서 교사로 일했던 아마추어 연기자였으며, 아프간을 배경으로 한 그의 두 번째 출연작 <Sag-haye velgard>을 마지막으로 영화 활동을 중단하였다.



3. 영화의 배경, 아프가니스탄


img.jpg


1996년부터 2001년까지 탈레반 집권 당시 여성은 반드시 부르카를 착용해야 했고, 자유로운 외부 이동이 불가했으며,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교육권, 의료권, 일할 권리 또한 갖지 못했다. 심지어는 외부에서 큰 소리를 내는 것, 낯선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 디자인이 있는 신발을 신는 것, 탈레반 깃발 색과 동일한 흰색 양말을 신는 것도 불가했다. 허나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아프간 여성들은 기본적인 권리를 되찾기 위한 운동을 지속하고 여성들을 교육하고자 하는 노력 또한 지속했다고 한다. 그리고 2002년, 미국의 공격으로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이 축출됐다. 영화는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이 무너진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바로 이 시점을 배경으로 한다. 탈레반이 정권을 박탈당한 2002년에 이르러 여성들은 다시 학교에 갈 수 있게 되었으며, 2004년에는 대통령 선거에 처음으로 여성 후보자가 등장했다. 탈레반 잔당들이 투표하러 가는 여성을 살해할 것이라 위협한 탓에 많은 여성들이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일부 여성은 목숨을 걸고 투표소로 향했다.



4. 동등한 인간으로 대접받을 권리


img.jpg


영화는 초반부터 여성을 지나치게 경계하고 조심하는 남성들의 모습을 지속해서 보여준다. 부르카로 얼굴을 가리지 않은 여성과 마주한 남성은 곧바로 뒤를 돌며 여성이 길을 완전히 지나갈 때까지 눈을 질끈 감는다. 그리고는 "제 죄를 용서하소서"라 이야기하며 여성의 얼굴을 마주한 것을 죄로 명명한다. 이와 같은 남성의 모습은 영화 전반에 걸쳐 종종 나타난다. 여성의 얼굴을 바라본 남성들은 하나 같이 급히 뒤돌며 "알라신이여 용서하소서."를 외치고, 마차를 태워달라고 말하는 여성들에게 "마차를 태워줄 테니 얼굴을 가려라" 말한다. 그리고는 마차에 탄 여성들이 베일을 벗고 웃으며 장난치자 왜 얼굴을 보이냐며 그들을 마차에서 내쫓는다.


이런 아프가니스탄 남성들의 태도는 그들이 여성을 동등한 인격체로 존중하지 않고 그들과 다른, 열등한 존재로 타자화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얼굴도 마주해서는 안 될 불경한 존재, 남성들보다 하위의 권리를 누리는 것이 당연한 하등한 존재로 바라보고 있음을 말이다.



5. 교육받을 권리


img.jpg


아프가니스탄 여성의 일부가 학교로 돌아갔음에도 아프가니스탄 사회는 여전히 여성의 교육에 부정적인 시선을 보낸다. 학교에 간 노크레는 왜 다른 옷을 입었냐는 교사의 물음에 "제가 교복을 입으면 아버지는 저를 학교에 보내지 않을 거예요. 아버지는 여자들은 학교에 가서는 안 된다고 말해요."라고 답하며 자신의 교육권에 대한 아버지의 반대를 이야기한다. 이후 노크레는 죽은 오빠의 아내인 레이로마에가 학교에 갈 거냐고 묻자 "갈 거야. 근데 교장 선생님이 교복을 입으라고 하셨는데 아버지가 그걸 아시면 화내실 거야. 나는 그게 싫어. 아버지는 여자들이 학교에 가거나 일하러 가는 것을 용납하지 않아. 어떡하지?"라고 답하는 등 학교에 가고 싶은 욕구, 교복을 입고 싶은 욕구가 큼에도 아버지의 제한에 의해 억압받고 있음을 드러내는 이야기를 한다. 더불어 노크레와 같은 학교에 다니는 다른 학생들도 "부모들은 여자아이로 하여금 학교에 안 가게 하거나 교복을 못 입게 해.", "아프간 여성들은 학교에서 받아 주지 않거나 집에서 보내지 않으니 교육에서 배제돼."라고 이야기하는 데서 아프간 여성들이 교육을 받는 데에는 많은 제약이 따름을 읽을 수 있다.


노크레의 경우 학교에 다니고 있기는 하지만, 스무 살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열두 살의 아이와 같은 교육을 받고 있다는 점 또한 열악한 교육의 현실을 보여준다. 더불어 영화 속에서 노크레가 받는 교육의 대부분은 "여성다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학생들은 매일 같이 위와 같은 구절을 반복해 읽으며 여성다움을 체화한다.


여자들은 숨겨진 아름다움을 드러내지 않도록 조심해서 걸어라.
남자들은 여자의 보호자. 왜냐하면 신이 남자를 월등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고집 센 여자들을 벌하고 잠자리에서 멀리해라
여자들이 남자한테 복종한다면 여자들을 억압하지 마라


그럼에도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여성들은 학교를 갈망한다. 파키스탄에서 버스를 타고 아프가니스탄으로 넘어온 한 아이는 노크레를 만나자 그에게 어느 학교에 다니는지 묻고는 나도 다니고 싶은데 그럴 수 있겠냐 묻고, 학교의 여성들은 선생님, 기술자, 의사, 대통령 등 저마다의 진심 어린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공부한다.


6. 대통령이 되겠다 말하는 여성들


img.png


어느 날 학생들을 모이게 한 교장 선생님은, 교육부에서 학생들의 장래희망을 설문하라는 고지가 내려왔다며 장래 희망을 조사하겠다고 말한다. 이후 먼저 "교사가 되고 싶은 사람?"이라고 묻자 많은 아이들이 손을 들었고, "기술자가 되고 싶은 사람?"이라는 물음에도 많은 아이들이 손을 들었다. 이어 "공무원이나 의사가 되고 싶은 사람?"을 묻자 이미 응답했던 아이들을 포함해 대부분의 아이들이 일어났다. 이는 곧 아이들의 교육, 기술, 정책, 의료서비스에 대한 열망과 그것을 내 힘으로 실현해내고 싶다는 소망을 드러낸다.


이어서 선생님은, 그렇다면 아프가니스탄의 차기 대통령이 되고 싶은 사람이 있는지 묻는다. 그러자 미나가 가장 먼저 일어나고, 그의 용기에 다른 한 명이 일어나고, 또 다른 한 명이 일어나 총 다섯 명의 아이들이 일어섰다. 선생님은 그들에게 "잘했어"라고 격려함과 동시에 여자라는 이유로 집안일만 생각해서는 안 되고, 밖으로 나와 활동을 해야 한다 말하며 그들의 용기와 야망에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아이들은 키득거리며 진지한 표정으로 일어선 그들을 비웃는다.


위와 같은 한 차례의 장래희망 조사가 이뤄진 뒤, 아이들은 다시 함께 모인 자리에서 열띤 토론을 이어간다. 주제는 여성이 대통령이 될 수 있느냐다. 여성은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매우 강경한 의견을 가진 한 아이는 "부르카를 입은 엄마가 어떻게 대통령이 돼? 사람들은 여자를 대통령으로 선택하지 않을 거야."라고 이야기한다. 그러자 앞서 손을 들었던 미나는 "하지만 여자도 대통령이 될 능력과 자격이 있어. 부르카가 영원히 우릴 막을 수는 없어. 여성사에 공부한 적 있지?"라고 답한다. 그리고 부모를 비롯한 주변의 반대는 어떡하냐는 친구의 말에는 "현명하고 용기 있는 여자는 자신이 선택해. 내가 스스로 결정해."라고 단호히 답하며 여성의 자유로운 행위는 그 누구의 간섭도 없이 스스로의 판단에 의해 이뤄져야 함을 단언한다.


"우리는 무슬림이야. 무슬림 여자들은 승진할 수 없고, 스스로 대통령이라고 주장할 수 없어. 무슬림 여자 대통령 본 적 있니?"
"남자는 대통령이 되고 여자는 왜 안 돼? 난 아버지와 형제를 잃었어. 여성이 아닌 남성이 지배하는 정부에서. 난 몇 년 동안 파키스탄에 살았는데 베나지르 부토도 여자였어. 인디라 간디가 인도의 여자 수상이었다는 거 기억하지? 간디는 여성들이 장기 통치할 수도 있다고 했어. 간디 여사는 연설도 잘하고 국민을 위해 일했어."
"우리는 다른 나라 얘기를 하는 게 아니야. 아프가니스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 그리고 베나지르 부토는 여자였지만 집권 당시 반여성 탈레반을 만들었고 이 사회를 파괴했어. 그는 탈레반 편이야."
"내가 대통령이 되면 나는 국민 모두를 웃게 할 거야. 비참한 경험을 해보지 않으면 가족을 잃은 고통을 전혀 이해할 수 없어. 난 아버지와 형제를 잃었어. 카불은 문제가 많아. 아프간 여성 문제도 심각해. 여자들은 학교에서 받아주지 않아. 집에만 있어야 하고 직업도 가질 수 없어. 아프간 여성들은 가장 많은 고통을 받고 있다고. 특히 여자들은 학교도 못 가니 교육에서 배제되지."


미나의 이와 같은 발언은 노크레의 마음에 대통령이 되고 싶다는 아주 뜨거운 열망을 만들어낸다. 이후 그는 여성도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작은 실마리, 혹은 가능성을 보기 위해 외국인을 만날 때마다 그 나라 대통령의 성별을 묻는다. 하루는 많은 사람들이 트럭을 타고 파키스탄에서 아프가니스탄으로 넘어왔다. 노크레는 그런 그들의 틈으로 들어가 "파키스탄 대통령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아세요?"라고 묻는다. 그러나 생존을 위해 아프가니스탄으로 이주한 그들에게 그것은 급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들은 생활에 바빠 정치에 관심이 없었다, 나랑은 상관 없는 일이다 말하며 노크레에게 답을 주지 못한다. 그러나 노크레는 "저는 그 사람이 여자인지 남자인지 알고 싶어요" 이야기하며 집념을 보인다.


파키스탄에서 넘어온 한 남성은 그런 노크레에게 흥미를 보인다. 그리곤 그에게 베나지르 부토가 다시 대통령직에 출마했다는 소식을 전해준다. 그러자 노크라는 어떻게 이야기하며 표를 달라고 했을지, 국민들은 어떤 생각으로 표를 줄지 궁금하다며 그의 연설을 들어보고 싶다고 말한다. 그리고 너도 출마하고 싶냐는 남자의 말에 교육을 위해 출마하고 싶다 답한다. 사미라 마흐말바프 감독은 <칠판>에 이어 <오후 5시>에서도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인 교육받을 권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후 노크레는 "여자들은 탈레반 시절 5년 동안 학교에 가지 못했어. 네가 대통령이 되면 여자들을 위해 뭘 할 거야?"라고 묻는 친구에게 "내가 대통령이 되면, 교육부 장관에게 여성들의 정체된 학습 기회를 연장하고 보충하라고 할 거야. 그래서 그들이 선생님이 되게 할 거야."라며 구체적인 바람을 이야기하기에 이른다.


어느 날 본인이 머무르고 있는 폐 궁전에 프랑스인 군인이 찾아온다. 노크레는 그를 보고 크게 미소지으며 영어로 인사를 건넨다. Hi, How are you, My name is 노크레, What is your name, I'm from Afghanistan, Where are you from 등 그간 어렵게 조금씩 익혀왔을 영어를 자신있게 뱉어본다. 과거 아프간 여성은 낯선 사람, 특히 외국인 (남성)과 대화하는 것을 금지당했던 사실을 고려하면 이러한 노크레의 '말 걸기'는 시도 그 자체로 변화이자 도전이라고 읽을 수 있다. 더불어 노크레는 마지막에 "What is president name?"이라 말하며 프랑스의 대통령 이름을 묻는다. 이어 그를 찾아온 파키스탄 남성에게 통역을 부탁하며 프랑스에서는 대통령 출마자들이 어떤 연설을 하는지, 국민들은 어떤 이유로 대통령을 뽑는지 묻는다.



7. 검은 신발을 벗고, 미소를 내려놓는 노크레


img.jpg


<오후 5시>는 노크레 부의 구두, 프랑스 군인의 군화, 노크레의 신발 등 인물들의 발과 신발을 반복해 잡으며 신발에 큰 의미를 부여한다. 안전하고 평화로운 집을 소유하기가 매우 어렵기에 늘 걷고 방랑해야 하는 카불에서 신발은 조금이라도 나은 거처를 찾기 위해 꼭 필요한 도구일 것이다. 더불어 튼튼하고 온전한 신발은 인물이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발걸음을 내딛는 데 있어서도 중요한 요소다. 그렇기에 영화는 노크레가 아프간 여성들에게 강요되는 검은색 민무늬 신발을 벗고 흰색의 하이힐로 갈아신는 장면을 여러차례 보여 준다. 노크레는 시대착오적인 교육을 받아 답답한 마음이 들 때, 조금 더 용기있는 마음가짐으로 변화를 위해 도전하고 싶을 때 부르카를 벗고 흰색의 하이힐을 신는다. 누군가는 하의에 가려져 잘 보이지도 않고, 땅에 가까워 잘 보이지도 않는 신발이 무슨 의미를 지녔느냐 말할 수도 있겠지만, 아프간 여성들은 화려한 신발을 신을 자유도, 그런 신발을 신고 본인이 원하는 곳을 갈 자유도, 새로운 길을 개척할 자유도 없었음을 고려하면 이는 더없이 대단한 도전임을 부인할 수 없다.


더불어 기존의 검은색 구두는 굽도 낮고 불필요한 장식이 없어 착용에는 큰 불편함이 없었던 데 반해, 그가 변화의 도구로 택한 흰 구두는 뾰족한 굽의 하이힐이고, 불필요한 꾸밈 장식도 있어 실질적인 착용, 발걸음에 불편함이 있다는 점에서 이는 다소 아쉬운 선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사미라 감독은 흰색 구두로 갈아 신은 노크레가 이 흰색 구두마저 벗어던지고 맨발로 흙바람을 내며 뛰는 모습을 보여 줌으로써 이와 같은 아쉬움을 지워냈다.


앞서 노크레를 만났던 파키스탄 남성은 노크레로 하여금 출마 사진을 찍는 것을 권유한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심각하게 찡그리는 사람에게 투표를 하기도 한다며 미소를 거두어 볼 것을 제안한다. 그렇게 노크레는 "저 여자가 대통령이 된다고? 정말이지 우습군"이라고 그를 비웃는 사진사 앞에서 단 1%의 미소도 남기지 않는 표정을 지으며 그와 같이 비웃는 사람에게 무표정으로 답한다.


영화가 세상에 공개된 2003년 이후, 2004년에는 실제로 여성 후보자가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고 여성들은 이동권, 교육권 등의 기초적인 권리를 일부 되찾았다. 그리고 2022년,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재집권하며 일반 여성들의 부르카 착용을 강제하고, TV에 출연하는 여성들은 반드시 얼굴을 가리게끔 강요하고 있다. 이에 남성 동료들은 본인들 또한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며 함께 저항하고, 여성들은 계속해서 서로 연대하며 인권을 되찾기 위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