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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명 른 Aug 15. 2024

오늘, 그의 이름을 기억하며

<별 헤는 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 윤동주 유고시집>>, 윤동주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憧憬)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 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佩), 경(鏡), 옥(玉),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들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슬이 멀 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위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      



골몰히 네이버 지도를 쳐다본다. 어제 차가 견인되었으니 운전할 수는 없고 어린 아이 둘이 최대한 덜 힘들게 외갓집을 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중이었다. 1분만 걸어도 땀이 등줄기를 타고 내려가는 날이다. 특별히 챙긴 짐도 없는데 갈아입을 옷만 이미 세 짐이라 갈아탈 역까지 택시를 타기로 했다. 목요일은 늘 새벽 일찍 출근을 하는데 이번 목요일은 모처럼 쉬는 날이라 오래간만에 친정 나들이를 나섰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택시를 탄 지 몇 분 지나지 않아 아이들이 갑자기 애국가를 열창하기 시작한다. 내심 택시 기사님 눈치가 보여 조용히 가자는 말을 몇 번 했지만 목소리는 더욱 커진다. 4절까지 열창을 하고야 잠잠해진다. 누나의 열창을 집중하며 듣던 둘째가 애국가 열창을 이어 받는다. 왜 이리 애국가를 부를까 생각했더니 아이들이 나보다 낫다. 공휴일인 목요일은 광복절이었다. 광복절이 다가오니 어린이집에서 애국가를 가르친 모양이다. 

모처럼 친정에서 계획도 없이 늦잠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잠결에 뜬 눈으로 진지하게 광복절 행사를 시청하는 부모님 곁에 앉아 동참한다. 벌써 79회. 아직 79회인가. 거창한 듯 지루한 행사 방송을 귀로 흘리며 오늘의 문장을 찾기 시작한다. 

사는 내내 겨울과 밤만이 계속되던 비극의 시대. 서러움과 막막함으로 겨울을 살아간 젊은이의 짧은 생. 그의 시를 본다. 오늘은 그의 시를 기억하고 싶었다. 봄을 기다리며 어두운 밤에 불을 켠다. 여전한 암흑과 서러운 추위. 그의 시가 먹먹한 이유는 언젠간 봄이 올 테지만 그가 맞이할 봄은 무덤 안이라는 여전한 어둠과 서러운 예견, 그리고 실현 때문이기도 했다. 자랑처럼 무성한 풀이 자란 오늘. 한여름의 강렬한 햇빛을 받으며 냉혹한 어둠 속의 그를 기억한다. 그의 이름이 오래오래 기억되기를 희망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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