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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명 른 Nov 01. 2024

9살의 핼로윈

혼자 설 수 있을 때까지 인간은 성장한다 

흥분하면서 집에 들어온 아이가 기대에 가득 찼다.

“엄마 오늘 나 핼러윈 파티 가도 돼? 우리 동 앞 놀이터에서 밤9시에 한다고 친구 엄마가 와도 된대.”

“그 친구 엄마가 누군데?”

일을 하던 손을 놓고 아이를 바라본다. 핼러윈 파티. 계획되지 않은 일.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이의 감기도 아직 낫지 않았다. 가지 말라고 하기에는 아이의 기대가 크다. 

“안전한 지 봐야 하니까 잠깐 같이 둘러봐 그러면”

말을 해 놓고도 미리 들은 소식이 없으니 찜찜하다. 아이들끼리 사소하게 노는 모임은 아닌 것만 같다. 덩달아 둘째까지 난리다. 내가 너무 건조하게 사나 싶게 아이들은 기대에 부풀었다. 활동적인 엄마가 아니라서 일이 바쁜 엄마라서 미안한 감정에 애꿎은 핼러윈을 탓한다.     


밤 9시가 다 되어간다. 

아이들은 각자 캐릭터를 정해 한껏 꾸미기 시작했다. 영 느낌이 좋지 않다. 이 감정은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전해졌다. 내 눈초리까지 핼러윈이다.     

역시나 집 앞 놀이터는 조명까지 준비한 그야말로 핼러윈 파티였다. 한 무리의 부모들이 모여 있었다. 낯설다. 거부감부터 들었다. 아이가 새로 사귄 친구라길래 초대해 준 엄마에게 인사라도 할 요량으로 나선 자리였다. 하지만 30명이 넘는 낯선 무리를 보니 주춤주춤 발걸음이 뒤로 물러난다. 아이는 이미 친구를 만나 신이 났다. 둘째 아이도 누나와 놀겠다고 하는 걸 분위기를 먼저 보라고 타일렀다. ‘네가 끼어들 분위기가 아니라고.’ 나름 코난이라며 평소 입지도 않는 체크남방을 걸친 둘째는 실망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본다. 그런 아이가 딱해 근처 무인문구점에 들르기로 했다. 그때였다.


“그런데 쟤는 왜 왔어?” 한 아이의 철없는 소리가 귀에 꽂힌다. 알고 보니 어느 반 부모들이 만든 ‘극성스러운’ 파티였다. 다른 반인 우리 아이가 왔으니 서로 어색하다. 그래도 아이는 낯선 즐거움에 대한 호기심인지 조금만 놀고 싶다고 했다. 20분을 허락하고 둘째와 자리를 빠져 나왔다. 좋아하는 팽이를 쥐어주니 아이는 여간 신난 게 아니다. 핼로윈 따위는 금방 잊혀졌다. 다행이다. 첫째가 걱정되는 마음에 다시 놀이터 근처로 올라왔다. 역시나 친구들을 따라다니다 아이도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근처를 서성인다. 둘째에게 누나를 데려오라고 했지만 금방 또 친구를 따라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올라가자.” 

둘째를 잡고 집으로 올라왔다. 아이는 아빠에게 새로 산 팽이를 자랑한다. 핼러윈 파티는 팽이에 묻혔다. 그 사이 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린다. 20분도 되지 않았는데 첫째가 올라왔다.


“왜 이렇게 빨리 왔어?”

첫째는 어색한 듯 변명처럼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아니, 가 보니까 다른 반 모임이더라고. 친구들하고 다 같이 놀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모르는 친구들이 너무 많았어.”

“엄마도 그런 분위기 같아서 가자고 한 거였어. 그래도 준비까지 했는데 다녀와야 네가 아쉬움이 없을 것 같아서 두고 온 거야.”     

아이는 내게 억지를 부린 게 민망한 눈빛이다.

사실 알고 있었다. 낯선 자리에 서서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것 같은 그 어색함을. 하지만 항상 내가 곁에 있을 수는 없으니 그런 자리에서 느끼는 불편함은 내가 대신 채워줄 수 있는 일만은 아니다. 스스로 겪어 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것들이 세상에는 너무 많다. 부모가 지켜야 하는 영역과 아이가 스스로 선택해야 하는 영역이 있듯. 환영받지 못한 자리, 스스로 돌아올 줄 아는 용기 역시  아이가 배울 수 있는 순간다. 부모로서 물러서야 아이가 성장한다고 믿는다. 야속하겠지만. 부모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순 없으니 아이에게 남겨진 선택과 경험의 영역은 아이만이 스스로 채워 나가야 한다. 오늘의 경험이 언젠가 아이가 자신만의 자리와 어울리는 법을 배워가는 작은 조각이 되어 주길 바랄 뿐이다.


감기약을 챙겨 먹이니 아이는 곧 잠에 빠졌다. 아이를 재우기 위해 끈 불이었지만 나도 아침이 되어서야 눈이 떠졌다. 11월 1일이다. 다시 시작하기에 좋은 날이다. 비록 이제 막 시작한 챌린지를 간밤에 든 잠으로 놓쳤지만. 차라리 후련하다. 지난 경험은 새롭게 시작할 오늘의 자양분이 된다. 그러니 이또한 내게 자양분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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