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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액션핏 박인후 Jun 23. 2024

떨리지 않아요

나는 지금 지구를 구하는 절체절명의 싸움을 하는 게 아니니까요

며칠 전에 내가 몸담은 '업계' 사람들 앞에서 15분 정도 회사 소개와 글로벌 게임 시장 상황, 우리 회사의 전략.. 뭐 그런 걸 발표하는 세미나 강연 자리가 있었다.


https://www.techm.kr/news/articleView.html?idxno=126319


가끔 이런 발표 요청이 오는데 나는 일단 무조건 'Ok'를 하는 편이다. 어떤 자료든 준비하고 만드는데 최소 10시간은 들어가는데 일부러 시간을 내서 자료를 준비하는 과정과 몰입의 시간이 즐겁다. 그리고 그 과정을 거치면서 나는 1mm라도 무조건 성장한다. 회사 홍보에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이다. 우리 회사가 하는 일이 비밀 첩보 업무 같은 게 아니라서 다행이다. 하하.


발표 대기자 자리에 앉아 있는데 나처럼 발표를 하는 다른 분이 '떨리지 않는지' 물었다. 운 좋게도 나는 그런 발표 자리에서 거의 안 떨리는 편이다. 그래도 조금 떨릴 수 있으니까 나는 보통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면서 떨지 않으려고 한다.


1. 내가 하는 발표는 80억 인구를 대상으로 하는 '인류 도약 프로젝트'나 '지구 정화 프로젝트' 같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그냥 내가 몸담은 시시한 산업의 일부, 돈의 흐름, 데이터 어쩌고 하는 별 거 없는 얘기다.


2. 내가 혹시 말실수를 하거나 틀린 말을 해도 어차피 듣는 사람들은 까먹을 것이다. 시간을 내줘서 내 얘기를 듣는 사람들에게는 너무 감사하지만 그것과별개로 저들의 시간도 나의 시간처럼 인류의 긴 영섭과 같은 시간속으로 지나가고 잊혀질 것이다.


3. 오늘의 발표를 위해 나는 15시간을 준비했고 이것은 내가 만든 프레임이다. 청중이 화자를 지켜보는 순간부터 화자의 프레임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하고 적어도 15분간은 나의 시간이고 내가 감독이다.


슬램덩크에 나오는 3점 슈터 해남의 '신준협'은 북산의 '정대만'과는 다르게 노력형 슛터였다. 고등학생으로 그게 가능한지 모르겠지만 하루에 500개의 3점 슛을 연습했다. 정대만이 더 폼이 나긴 하지만 둘 중에 고른다면 나는 신준협이고 싶다. 나는 기껏해야 범인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나에게 떨리지 않냐고 묻던 다른 발표자분은 나보다 발표를 더 잘했다. 전혀 떨지도 않았다. 그렇다! 그분도 사실 타노스와 싸워서 지구를 구한다거나 지구온난화를 해결하는 묘책을 발표하는 자리가 아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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