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우리 인생
나는 얕고 다양하게 덕질을 하기 좋아하는데 예전부터 철학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공룡이나 태평양 전쟁에는 관심이 많아서 책도 많이 봤지만 동양철학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서양 철학은 조금 관심이 있었지만 관련 책도 거의 보지 않았고 관련해서 나무 위키를 뒤진다거나 하진 않았다. 니체가 했던 말 몇 개를 멋지다고 생각한 게 전부니까 서양 미술에 대해서 아는 거라곤 피카소의 그림 몇 개 정도인 수준이었다.
나이가 좀 들어서 30대 후반쯤에 장 폴 사라트르와 실존주의 철학에 대해서 조금 알게 되었고 내 생각과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 태도가 실존주의와 아주 유사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좀 더 세분화하자면 사르트르식 '무신론적 실존주의'와 비슷하게 생각하면서 아마 청소년기 때부터 살았던거 같다.
그리고 든 생각은 '역시 내가 했던 고민은 앞서 간 철학자들이 다 똑같이 했던 것이구나'였다. 마치 뉴턴이 만유인력의 법칙으로 왜 내가 초등학교 때 메고 다니던 책가방이 무거운지 이유를 미리 찾아둔 것과 비슷했던 것이다.
뉴턴 땡큐!
내가 어렸을 때부터 했던 삶의 많은 고민들이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철학으로 설명이 되고 방향성도 제시된다.
1. 어렸을 때부터 나 포함 모든 인간은 왜 자기 의지로 태어날 수 없었는지 답답했다.
->인간포함 모든 생물은 피투(彼投)된 존재다. 즉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세상과 부모에 의해서 남들로부터 무기력하게 던져진 존재다.
2. 삶의 모든 순간은 선택인데 많은 선택이 불안했다.
->선택은 자유에서 나오지만 자유는 한편으로 저주다. 특히 어른이 되고나서부터는 모든 선택에서 오는 책임은 자기가 져야 하기 때문이다.
3. 자신의 자유의지로 선택을 했다면 그 선택이 옳다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피투 당한 인생이지만 기투(企投), 즉 스스로 선택하면서 매 순간 그 선택이 옳다고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 그래야 삶이 행복하고 재밌고 즐겁다.
아마도 중학교 때부터 나는 '나중에 어른이 되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야겠다'라고 생각했던 거 같다. 반은 맞고 틀렸다. '내가 하는 일은 나 스스로 선택한 일이고 그 선택에 만족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말하는 게 반 정도 맞다.
내가 중학교 때부터 했던 그런 생각도 '장 폴 사르트르'같은 사상가들이 80년 전인 1945년 정도에 혁명적이고 파격적인 고민과 길고 긴 사유로 만든 것이다. 2차 대전이 끝나고 한 달이 지난 1945년 10월 29일, 사르트르가 처음으로 실존주의의 사조와 회칙을 대중 앞에 연설로 발표한 날, 유럽인들은 훗날 흑인들이 마틴 루터 킹의 연설에 열광하듯, 미국인들이 테일러 스위프트의 콘서트에 열광하듯 환호했고 열광했다. 바야흐로 새 시대의 철학이 시작된 것이다.
'삶에는 아무 의미도 목적도 없어. 그러니까 니 꼴리는 대로 자유롭게 살아. 그 선택에는 책임과 기회비용이 따르지만, 결국 그 선택과 행동이 너에게 의미를 부여할 거야.'
사르트르 땡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