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은 세상의 변화를 목도하기엔 충분히 긴 시간
2016년 11월 8일, 트럼프의 첫 당선 소식을 출장 중이던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들었다. 내 인생에서 잊지 못할 충격적인 순간이었다. 당시에는 '극우적 팝퓰리즘'을 기반으로 한 '근본 없는 망나니'가 세계 제1 대국의 대통령이 되었다는 게 놀라웠고 충격이었다. 그때 내가 알던 세계의 일부가 변하고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첫 번째 임기 4년 동안 트럼프는 내 걱정만큼 미국도, 세계도 바꾸지 못했다. 북한 김정은과의 추진했던 평화모드는 놀라웠고 한편으로 기대했지만 베트남에서의 회담이 불발되면서 내 기대는 날아갔다. 당시 나는 북한과 종전이 되고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으로서 새로운 세계가 올 거라고 생각되었다. 남한에 사는 사람 모두에게는 북한은 우간다나 칠레보다도 먼 나라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의 분단으로 북쪽에 있는 2500만 인구, 남한 만 한 면적의 국가에 대한 상상력이 삭제된 채로 살았다. 종전으로 남한과 북한의 화평 모드가 생기고 새로운 미래가 오길 바랐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두 번째로 트럼프가 당선되었다.
인생을 반 정도 산 대한민국이라는 특이한 선진국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역사적으로는 서구 민주주의의 승리를 혜택으로 알고 유럽의 근대화 역사, 그리고 미국 민주당이 추구하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인권, 평등, 다양성의 가치를 '대체적으로' 신봉하며 살았다. 그 가치들이 우리나라로 스며들기를 바랬던 것은 물론이다.
그런데 이번 미국의 대선에서 미국 민주당의 속절없는 패배를 목도하면서, 그리고 네오콘이 민주당을 지지하는 이상한 현상을 보면서 내가 알던 세계가 '완전히' 변해 버렸다는 것을 알았다.
세계인으로서, 우리는 2차 대전 전후의 미국과 서구 유럽 중심의 질서가 끝나가는 시점에 있다. 인생은 참 길다. 아직 반 밖에 안 살았는데 세계가 이렇게 변해가고 있다.
우선은 더 이상 전쟁이나 안 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