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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smet Dec 29. 2020

그녀를 기억하기 위해 쓰는 글

2020년 7월의 어느 날, 어머니와 함께 여름휴가를 떠날 무렵이었다. 목적지는 어머니의 고교 시절 추억이 있는 경상남도 마산. 불효한 아들은 스물여덟이 되어서야 우리 엄마가 아닌 한 사람으로서의 '영옥'의 삶이 궁금해졌다. 스무여덟 해를 받기만 하고 살아오다, 이제는 돌려드려야 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머릿속을 스쳤다. 그러나 나는 엄마가 우리 엄마라는 사실 외에는 딱히 잘 알고 있는 것이 없었다.


1남 3녀로 구성된 한 가정의 셋째로 태어났다는 것, 서른 무렵 나를 나으셨다는 것, 운전을 좋아하신다는 것, 코스모스를 좋아한다는 것. 그게 내가 어머니에 대해 떠올릴 수 있는 모든 것이었다. 그녀가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인지, 그녀가 좋아하는 색은 어떤 색인지, 그녀가 좋아하는 노래는 어떤 곡인지, 그런 사소한 것들조차도 떠올리기 힘들었다.


쇼핑을 갈 때면 언제나 내 셔츠, 내 바지, 내 신발, 내 재킷을 먼저 고르는 그녀였다. 엄마의 삶 속에 나는 언제나 1순위였다. 퇴근 후 현관을 열고 들어가면, 몸이 아프신 날에도 일하느라 고생한 아들이 좋아하는 알탕이니, 돼지갈비니, 호박전이니 하는 요리들로 진수성찬을 차려 놓으셨다. 아프다는 말 한마디에도 언제나처럼 그 먼 길을 한걸음에 달려와 보살펴 주신 나의 어머니.


엄마의 삶은 어땠을까. 어떤 곳에서 태어나고, 어떤 학교를 다녔을까. 또 어떤 친구를 만나고 어떤 사랑을 했을까. 어떤 인생을 살아왔을까 그리고 어떤 꿈을 꾸었을까. 그러나 그녀의 이야기긴 담긴 것들은 하나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녀의 20대 시절 일어난 화재로 엄마의 어린 시절 모습이 담긴 앨범들은 다 타버리고, 엄마의 이야기가 담긴 소소한 일기와 메모장들도 다 사라져 버렸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당연해지는 것들이 있다. 내가 그녀의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받는 사랑과, 그녀가 배 아파 낳은 자식이라는 이유만으로 받는 관심이 그러하다. 처음 나를 낳고 품에 안은 그 순간부터, 하루하루 자라나는 모습들까지. 책가방 메고 처음 초등학교를 가던 그 날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그 순간까지도, 엄마는 나의 이야기들을 두 눈 속에 다 담고 있겠지.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기는 쉬워도 자식이 부모를 그만큼 사랑하기는 어렵다는 말이 있다. 그들의 내리사랑을 우리의 치사랑이 따라갈 수 없겠지. 좋아하는 연예인의 과거사는 알아도, 좋아하는 친구의 사연들은 기억해도, 좋아하는 사람의 취향은 파악해도 엄마의 이야기는  알지 못하니까. 곁에 있는 게 당연해 잘 알려고 하지 않으니까.


시간이 지나 그녀의 이야기는 어느 곳에 적혀 있을까. 우리 엄마가 아닌 한 사람 '영옥'으로서의 삶은 누가 기억해줄까. 그런 그녀를 이야기는 내가 기억해야겠다. 글로써 그녀를 기억하고 남겨야겠다. 먼 훗날 돌아보며 후회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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