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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smet Jan 31. 2021

내가 잃어버린 초심

어떤 도망이었다. 실패자로 낙인찍혀버릴까 두려워 선택했던 길. 할 수 있는 게 없어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길. 그렇게 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8년 전 어느 여름날이었다. 비가 그치고 선선해지던 여름날의 저녁, 그녀를 만났다. 이유도 없이 이별해야만 했던 그 날의 기억이 아득하게 밀려왔지만 구태여 헤어짐의 이유를 묻지는 않았다. 지나간 서로의 일들을 들추고 싶지는 않았기에. 나는 그저 나의 시작에 대해 말했을 뿐이었다. 그녀를 처음 만났던 수업, 운명처럼 옆자리에 앉았던 인연, 함께하고 싶어 시작했던 공부, 같이 하자며 약속했던 것들까지, 그 모든 시작에는 당신이 있었노라고 고백했다. 그리고 지금 선택한 유학의 길은 그녀에게 돌아가는 길이라 말했다. 내 삶의 선택에 대한 책임들을 그녀에게 지우려 했다.


솔직하지 못했다. 언제나 삶에 최선을 다했다 말했지만, 최선을 다 하지 못했다. 아니 그러지 않았다. 어렵고 힘든 순간에는 충분하다는 말로 안주했고 결과를 마주했을 땐 내 탓이 아니라 스스로를 합리화시켰다. 안일했다. 언제나 착한 아들, 멋진 형, 똑똑한 오빠이자 좋은 남자 친구이고 싶었던 나는, 두 번의 입시 실패와 첫사랑의 실패를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이 모든 것들을 온전한 나의 문제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스스로 결심했던 일들을, 처음 먹었던 마음들을 놓쳐버렸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솔직하지 못하다는 것은 그렇다. 작은 눈송이들이 굴러 점점 더 커지는 것처럼, 어느새 커다랗게 불어난 눈덩이가 날카로운 화살이 되어 돌아온다. 비겁한 변명, 거짓말, 자기 합리화 따위의 것들이 자신의 삶을 갉아먹는 순간이 찾아온다.


우리의 삶에서 일어나는 작은 문제들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일은 쉽지 않다. 처음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이어가는 것 역시 쉽지 않겠지. 나의 처음은 어땠을까. 좋은 대학에 가고 싶다는 목표와 누군가를 만나 행복해지고 싶다는 마음, 또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 주고 싶다는 마음들까지도 온전히 ‘나’를 위한 것들이었을 텐데. 그 모든 첫 마음들이 온전히 자신의 것이었을 텐데 말이다.


작은 음악 소리가 귓가를 맴돈다. 후회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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