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를 처음 만난 날부터
그것은 내가 아버지로써 '네가 태어난 이유, 네가 인생의 의미'을 찾을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지 못하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이다. 아마도 이 글은 네가 20대가 되거나 혹은 진로를 정해야할 10대 때에 읽게 될지도 모르지만, 네가 가정을 이루고 아버지가 되었을 때에도 읽을 지도 모르겠구나. '네가 태어난 이유, 살아가야할 이유'는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깨닫게 될지 누구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란다. 질문이 부쩍 많아진 너에게, 내 생각을 말할 때면, 조심스러울 때가 있다. '내 생각이 틀릴수도 있겠구나, 네게 고정관념을 심어주는 건 아닐까, 네가 스스로 생각하고 고민하고 결정해야할 주제에 대해 내가 미리 답을 말해주는 것은 아닐까.' 그러다 문득 짧게라도 살면서 만나게 될 주제와 고민에 대해 글을 써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단다. 나의 말이 정답은 아닐지라도 여행의 가이드북 정도는 되면 좋겠어. 어느 곳으로 가야할지는 너의 선택이란다. 다만 여행을 마칠 때쯤 네가 행복하길 바란다.
내겐 이 질문이 지금까지 크게 세 번 있었던 것 같다. 첫번째는 지금 네 나이때쯤이다. 일곱 여덟살이 뭘 생각하겠냐고 할 수 있겠지만, 내가 그렇지 않았듯 대다수 어른들도 이 질문을 아주 어렸을 때부터 한단다. 그리고 지금 너를 지켜보니 네게도 그런 기미가 보이는 것 같구나. 멍하니 창밖을 바라 볼때나, "아빠 죽으면 어떻게 돼?, 나는 어디에서 왔어?"라고 물을 때는 말이다. 미안해. 나도 모르는 부분이 많아. 아빠도 여전히 알아가고 있는 중이란다. 다만 이건 확실히 말해줄 수 있어. 아빠는 너를 무척 기다렸단다. 그리고 기도했어. 나와 엄마를 통해 네 영혼이 몸을 받아올 때 부디 네가 건강하기를, 네가 살아가며, 생명을 받아온 은혜를 알고 살아가는 사람이 되길, 하늘하느님과 땅하느님과 선조님들의 긴 여정에 함께 동참하는 역사속에 당당히 서 있는 존재가 되길.. 나는 네가 우리에게 오기 이전부터, 그리고 네가 왔음을 직감하는 순간에 늘 기도했다고 말이야. 어쩌면 나의 두려움은 여기에서 출발한 것이 아닐까? 그렇게 몸을 받아난 너에게, 나는 어떻게 하면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있을까하는 고민에서 말이야.
삶의 이유
다시 그 질문이 고개를 든 것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였어. 그 때는 어느 학교에 가는냐가 마치 인생의 목적을 찾는 일이라고 생각했나봐. 학교와 전공을 정하고 나면 남은 평생은 낮은 골에 모여 흘러가는 냇물처럼 물길대로만 가는 것인줄 알았지. 치열한 고민을 하지 못했어. 방황도 하지 못했어. 나의 질문에 답해줄 사람도 찾지 못했단다. 그저 혼자 생각하고 보이지 않은 그 누군가를 향해 기도했단다. 내가 나의 길을 갈 수 있게 안내해달라고. 하지만 이 질문은 금방 잊어버렸단다. 20대의 우정과 사랑은 다른 것을 돌아보지 못하게 만드는 힘이 있더구나. 하루 하루가 마치 인생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즐길것을 찾았고, 사랑과 공부도 그렇게 하루가 마지막인듯 몰두했었어. 어리석은 시기였고, 후회되는 시기다. 그런데 다시 돌아간다해도 그때보다 더 잘할런지는 자신이 없구나. 몸이 젊다는 건 여러모로 불편한 점이 많단다. 날뛰는 마음의 고삐를 잡아 메는 것은 그저 인내하는 것으로, 나의 행동을 살펴보는 것으로만은 안된단다. 그것은 철학의 문제이고 깨달음의 문제거든. 젊음은 방황하는 것이라서 선배와 스승님이 반드시 필요하단다. 그런데 그 때에 나는 그런 스승님을 만나지 못했었구나. 다만 책을 즐겨 읽으며 그나마 달아나는 고삐를 잡고만 있었다고나 해야할 것 같다.
성인이나 철인들, 지혜로운 분들도 아침에 일어나 밥먹고, 일하고, 잠을 자고 사랑을 하고 논쟁을 하고 삶의 과정은 크게 다르지 않단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들을 다르게 할까? 아들, 앞으로 나와 함께 생각해보자. 다행히 세번째로, 인생의 의미를 찾고 싶은 갈망이 내 삶의 전부를 채웠을 때에, 내가 원했던 삶과 내가 찾았던 길을 위해. 용기를 낼 수있었다. 남이 보았을 때 성공의 길, 남이 보았을 때 좋아보이는 길이 아니라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갈 수 있는 것은 축복인 것 같다. 더구나 이 길에서 너의 어머니를 만나고, 너희들을 만나게 되었으니. 이 모든 과정이 내겐 축복이고 선물이란다.
아들아, 어쩌면 이 글들이 잔소리로 들릴지도 모르겠네. 대신 평소에 잔소리를 줄이도록 할께. 네가 커서 이 글을 읽을 때쯤, 좋은 사람이, 좋은 아버지가 되기위해 노력하고 있으면 고맙겠구나. 나도 계속 노력할께. 사랑한다.
2019.01.22 둘째 생일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