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이 디테일을 '취사선택'하는 이유
앞선 글에서 설명했듯 언론인이라면 업무 환경상 디테일에 극도로 디테일에 집착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실제 기사나 방송 등 '언론인이 만든 콘텐츠'를 보면 그 디테일이 전부 반영돼 있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언론계에 존재하는 '시공간의 제약' 때문인데요.
일단 제가 신문기자 출신인 만큼 지면기사를 중심으로 말씀드리자면요. 지면신문을 기준으로 했을 때 이른바 ‘톱’이라 부르는 큰 기사가 원고지 7~10매, 달리 말하자면 약 1400~2000자 분량입니다. 베를리너판인 중앙일보는 그보다 20~30% 줄어들고요. 다음가는 사이즈인 ‘박스’나 ‘사이드’는 베를리너 아닌 일반판 기준으로 4~5매. 가장 작은 ‘미니’는 마찬가지로 일반판 기준 2~3매 정도입니다. 방송 기사는 기본적으로 1분 30초 가량이며, 길어봤자 약 1분 50초에서 2분 내로 끊습니다. 짧으면 1분 10초 정도로 마무리하는 경우도 있고요. 설령 방송 PD라 해도 당연히 자신의 콘텐츠를 송출 가능한 여유 시간은 정해져 있기 마련이고, 편집 또한 그에 맞춰 분량을 조절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듯 콘텐츠가 있더라도 그것을 노출할 공간 혹은 시간에는 명백한 제한이 있습니다. 신문 지면을 무한정 늘리거나 방송 시간을 무한대로 연장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그것은 곧 콘텐츠마다 모든 디테일을 수록할 수는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죠. 이러한 상황에서 언론인은 어떠한 움직임을 보이게 될까요. 정보를 최대한 많이 끌어 모은 다음 중요도에 따라 분류를 하고, 그중 가치가 떨어지는 것부터 우선 쳐내는 작업을 자연스레 진행하게 됩니다. 그것이 기자건 PD건 자연스레 행하는 ‘취재’와 ‘편집’의 과정인 것입니다.
이것을 이해하면 논술과 작문 실전에서도 어떻게 글을 써야 할지 감이 잡힐 것입니다. 논제와 관련된 것을 최대한 많이 끌어 모으는 ‘취재’를 하고서 빠르게 중요도를 구분해 취사선택하는 훈련이 돼 있어야 합니다. 물론 언론사 시험장에서는 그 모든 일련의 과정이 머릿속 활동으로 한정되겠지만요. 그렇게 모은 정보를 바탕으로 문장을 구성하고 또 배열하는 테크닉 또한 중요합니다만. 아무래도 길어질 내용인 만큼 이와 관련한 수업은 다음 기회에 보다 상세히 진행하겠습니다.
아무튼 일반인 내지 언론 지망생과 현직 언론인의 사고 및 작문 방식에 상당한 격차가 존재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앞서 설명했던 바가 있습니다. ‘저학력자’ 입장에서도 ‘왜’가 나오지 않도록 써야 한다는 이유였죠. 더불어 ‘취사선택’, 즉 ‘편집’ 과정에서도 일반인 혹은 언론 지망생과 현업 언론인은 행동 양상이 꽤 다른 편입니다. 글을 쓰는 때에 ‘내가 전하고 싶은 정보’를 고르는 것을 우선하는 사람과, ‘상대, 정확히는 불특정 대중 다수가 듣고 싶은 정보’를 먼저 선택하는 습관이 든 사람의 차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그렇기에 여러분은 ‘주장’과 ‘전달’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언론인이 아닌 사람은 아무래도 애써 모은 정보를 쳐내는 때에 ‘내 맘에 드는 것’,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더 끌어안기 마련입니다만. 언론인을 지망한다면 그 과정에서 의식적으로 '객관화 필터'를 세차게 돌려줘야 합니다.
하지만 현직 언론인이 쓰는 기사는 별로 객관적이지 않은 것 같은데요? 이런 생각이 문득 들 수 있는데요. 여러분 말이 맞습니다. 대다수는 객관적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각 언론사 입장에선 ‘불특정 대중 다수’라는 것이 결국엔 ‘자기 언론 구독자 혹은 시청자’라는 점을 생각하면 의외로 쉽게 이해될 문제이기도 합니다. 즉, 조선일보 기자는 조선일보 독자 다수가 원하는 쪽으로, 한겨레 기자는 한겨레 독자 다수가 원하는 쪽으로 기울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입니다.
다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언론인이 된 이후 이야기입니다. 언론인을 채용하는 이른바 언론고시 단계에선, 언론사를 막론하고 일단은 냉정히 객관적인 팩트를 올바르게 취사선택해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을 업계 동료 및 후배로서 선호하기 마련입니다. 이른바 '인재상'의 문제인데요. 이것은 바로 다음 글에서 자세히 말씀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