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hillip Aug 16. 2020

귀가

만 넉 달, 무민(瞀悶)의 상태



막연하나 진한 두려움,

길을 나서며 느낀 감정은

다름 아닌 두려움이었다.


원래 걷던 길을 따라 걷는다면

최소 한 시간-


비가 오면 어쩌나,

우산을 들고 걷긴 싫은데-


엄마한테 연락이 오면 어쩌지

아버진 내일 새벽 출근이신데-


잠귀 밝은 부모님이

샤워를 하는 동안

물소리에 깨시면

바로 거실로 나와

이내 역정을 내시겠지-


사고가 미련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동안

감정은 이내 교착 상태로 빠져들었다.




폭우로 온 나라가 겹 재난 맞이한 지난주,


월 마감 이후 다시 재택근무를 시작한 나와

코로나로 인하여 한 달에 반절만 출근하시는 아버지는


잔뜩 신경을 곤두세우곤

최소한의 거리를 유지한 채

한 지붕 아래 머물러야 했다.


방 안의 습도는 83퍼센트,

기온은 정확히 모르겠다.


선풍기 한대에 의지한 채

어설피 단절된 공간에서

풍속을 올리면 올릴수록

덥고 습한 공기가 순환하는

켜켜이 짐짝들이 쌓여있는


그 작은 공간에서,


귀를 꼭 틀어막고

하루에도 몇 번씩

이곳을 뛰쳐나갈까

고민하였던

기억들을

조우한다.




이 나이 먹도록 큰 소리에

적잖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근처의 누군가가 언성을 높임은

더더욱 편히 받아들이지 못한다.


요 며칠간 어릴 때부터 익숙히,

습관적으로 뇌간을 울리던 소리는

꽤 자주 감정의 트리거를 당기곤 하였다.


문을 열면 들려오는 소리

색깔이 입혀진 단어들과

이어지는 육성으로 터져 나오는

이성 잃은 쌍욕 섞인 목소리


비이성적인 것들 만큼이나

감정적인 언행들이 싫었다.


정작 저들은 스트레스를 느끼지 않는다.


본인들이 맹신하는 개인 매체를 켜 두고

날조된 정보를 진실로 만드는데 동조한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보기에

정작 저들은 스트레스를 느끼지 않는다.




Tranquilizer를 입에 넣지 않으면

Tranquillo를 노래하지 못한다.


어릴 적 적어둔 쑥스런 시구가

공교롭게 현재의 삶을 그대로 투영한다.


속내에 담아둔 독설을

속사포처럼 면전에 퍼 부울까

자신의 이면을 봉인해 두고자


나는 실제로 몇 달째 정신과를 찾고

안정제와 수면제를 처방받아 복용 중이다.


그렇게 하루에 세 번,


교감신경을 마비시키거나

중추신경의 감각을 억제하여

자신을 청맹과니로 만든다.




발걸음을 계속 옮겼다.

시간에 대한 감각이 무뎌졌다.

방향에 대한 감각 또한 잃은 지 오래다.


다행히 비는 몇 방울 흩날리다 말았다.


이정표를 바라보니 우측으로 돌아

큰길로 접어들어 그대로 직진하면

집으로 향하게 된다.


그렇게,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끈적이는 발걸음으로

질척이는 지면을 딛는다.


도착하면 바로 씻고

디아제팜을 한알,

운이 좋으면 졸피뎀도-


아니, 모종의 기대는 접고

현실을 최대한 말랑말랑한

방법으로 도피할 수 있다는


무망(無望)한 기대감들로

그렇게 난 또 집으로 향한다.


작가의 이전글 마닐라 일기 (3)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