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공감과 블랭크의 후암동 공동 프로젝트
유난히 길었던 5월이 지나고, <후암거실>과 <공집합 후암> 공사가 마무리되었습니다. 2019년 3월, 후암동에서 첫 미팅을 시작으로 4월 한 달 동안 기획과 설계 회의를 거쳐 어느덧 오픈을 앞두고 있습니다. 상도동을 벗어나 다른 지역에서 다른 팀과 함께 진행하는 첫 공동 프로젝트로 저희에게도 쉽지 않은 도전이었지만, 도시공감 덕분에 지역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하게 된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후암동에 공집합 2호점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할 때 왜 상도동이 아닌 다른 지역에 새로운 공간을 오픈하는지, 어떻게 후암동을 선택했는지, 공집합이 다른 술집과 다른 점이 무엇인지 궁금하다는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요, 그간의 고민을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도시공감은 후암동에 후암주방과 후암서재, 후암가록 세 개의 공유공간을 운영하고 있는 건축사사무소입니다. 2014년 10월, 일반적인 건축사사무소와 다르게 협동조합의 형태로 회사를 설립하였습니다. 블랭크에서는 2014년부터 3년 동안 '마을아카데미' 프로그램을 진행했었는데요, 협동조합으로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궁금한 마음이 생겨 2016년 '마을아카데미'에 초대를 부탁드렸습니다. '지역을 변화시키는 협동조합' 이라는 주제로 성북신나와 함께 이야기 나누는 자리를 가졌고, 이때 처음으로 도시공감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당시 도시공감의 이야기를 들으며 저희가 동네에서 지향하는 가치나 방향이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발표 자료에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었는데 블랭크에서도 늘 고민하는 주제였죠.
우리 마을에 어울리는 집
우리 이웃의 삶을 담는 공간
모두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
지역에 녹아드는 건축가
도시공감이 후암동에 자리 잡게 된 이야기가 특히 흥미로웠습니다. 블랭크가 상도동에 아무런 연고 없이 자리 잡은 것처럼 도시공감 역시 비록 연고는 없지만 오래된 집과 동네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 공간을 구하고 직접 리모델링 하여 사무실부터 문을 열었습니다. 이후 동네의 집과 이야기를 기록하는 '후암가록' 프로젝트를 꾸준히 진행하며 후암동이란 동네와 천천히 관계를 맺는 이야기로 강연이 마무리되었는데요, 당시 공유부엌 '청춘플랫폼'과 공유작업실 '청춘캠프'를 운영하며 고민이 많았던 저희에게 상도동이란 동네를 다시 돌아보게 된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이후 도시공감과 블랭크는 각각 후암동과 상도동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동네를 기록하고, 공유공간을 운영하면서 동네에 대한 고민을 이어 나갔습니다. 도시공감에서는 '후암주방', '후암서재', '후암가록' 으로 이어지는 '프로젝트 후암'을 연달아 진행하며 3개의 공간을 운영하게 되었고, 블랭크는 '청춘플랫폼'과 '청춘캠프' 이후 공유 주택 '청춘파크'와 커뮤니티 바 '공집합'을 추가로 조성하여 운영에 대한 경험을 쌓았습니다. 자연스럽게 동네에서 살고 일하며 공간을 직접 운영하다 보니 동네와 커뮤니티, 그리고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이 많아졌습니다.
블랭크는 비록 상도동에 처음 자리를 잡았지만,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사는 동네는 서로 달랐습니다. 일을 하면서 상도동으로 이사를 온 동료도 있었지만, 원래 살던 동네에서 출퇴근하는 동료도 있었고, 제주, 경주 등 지방에 내려가서 정착하고 싶어 하는 동료도 있었습니다. 비록 일을 하는 곳은 상도동이지만 사는 동네까지 꼭 상도동이어야 한다는 강박을 버리니 '우리가 살고 싶은 동네'의 경계가 넓어졌습니다. 커뮤니티가 특정 동네 안에만 고립되는 것이 아니라 일상 속 관심사와 공감대를 중심으로 연결되고 확장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하지만 다양한 동네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연결된 관계가 지속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필요가 잘 맞아야 합니다. 그동안 블랭크에서 운영한 세 개의 공유공간은 입주공간으로 관계의 깊이는 높았지만, 특정 세대와 분야의 사람들이 이용하는 공간으로서 문턱이 다소 높았습니다. 반면 도시공감에서 운영하는 공유공간은 대관공간으로 다양한 세대와 분야의 사람들이 공간을 이용하지만, 입주공간만큼 관계의 깊이가 깊지는 않습니다. 입주공간과 대관공간 모두 공간 이용료를 높게 책정하지 않는 이상, 수익률이 높지 않기 때문에 운영을 지속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블랭크에서는 2018년 10월, 커뮤니티 바 {공집합} 운영을 시작으로 커뮤니티 공간으로서 소비공간의 가능성을 발견하였습니다. 대관공간과 입주공간을 중심으로 커뮤니티를 연결하면서 소비공간을 통해 관계의 범위를 확산하고, 안정적인 수익 창출이 가능하다면 다양한 동네에서 지속가능한 공유공간 모델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습니다. 저희가 단독으로 공간을 확장하기보다는 동네에서 지향하는 가치나 방향이 비슷한 그룹과 파트너십을 통해 공동의 소유구조를 실험하여 공간 운영 수익이 동네로 환원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이러한 고민을 시작으로 다양한 동네에서 각자의 색깔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그룹들을 찾아다녔습니다. 시흥 월곶에서 아이와 엄마를 위한 동네를 만들어가는 '빌드', 부여 규암에서 공예인들을 위한 동네를 만들어가는 '세간', 창신동에서 봉제 산업을 위한 동네를 만들어가는 '어반하이브리드' 등 다양한 지역 그룹들과 함께 각자의 동네에 필요한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커뮤니티 바 {공집합} 콘텐츠와 협업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도시공감과도 2016년 첫 만남 이후 기회가 되면 함께 프로젝트를 해보고 싶다란 생각을 갖고 있던 중, 후암동에 {공집합}과 같은 커뮤니티 바가 있으면 좋겠다는 말을 전해 듣고 후암동 프로젝트를 구상하게 되었습니다. 마침 도시공감에서 1년 전부터 눈여겨보았던 오래된 빈 건물이 있었는데, 단독으로 사용하기에는 부담스러워 프로젝트를 진행하지 못했던 공간이 있었습니다. 커뮤니티 극장으로 사용하면 좋을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만 갖고 있었는데, 마침 블랭크에서 <공집합 후암>을 구상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해보면 좋겠다며 함께 공간을 보러 후암동을 방문했습니다. 투박한 외관과 달리 내부의 작은 마당으로 빛이 들어오고, 빛바랜 푸른 타일이 2층의 나무 기둥과 지붕이 매력적인 가옥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래된 건물이다 보니 불법으로 중축된 부분이 많아 일반음식점으로 업종을 변경하는데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공사비도 문제였습니다. 제대로 공간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구조보강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정화조를 새롭게 설치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결국 첫 번째 건물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는 판단을 내리고,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다른 건물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부동산에서 주택을 새롭게 리모델링한 건물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시 후암동을 방문하였습니다. 1994년에 건립된 벽돌조 건물로 3층 전체가 임대 가능한 건물이었지만, 한 층 면적이 10평도 채 안 되는 작은 공간이었습니다. 공간은 크지 않지만 건물 전체를 사용할 수 있고, 무엇보다 창밖으로 어린이공원과 남산타워가 보인다는 점이 매력적이었습니다. 입지적으로도 서울역과 숙대입구역 사이에 위치하고 있고, 500m 안에 후암시장과 서울역 일대 오피스가 인접하여 직장인과 거주자 수요를 동시에 끌어들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규모나 입지, 비용 측면에서 새로운 공간을 실험해 보기 좋은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커뮤니티 바와 공유극장이 복합화된 커뮤니티 공간으로 큰 방향을 정하고, 도시공감과 공동으로 계약을 진행습니다.
그렇게 도시공감과 블랭크의 후암동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공동으로 계약을 진행하려고 보니 운영 방식에 대한 고민이 많아졌습니다. 두 개의 콘텐츠를 두 개의 회사가 하나의 건물에서 운영하려다 보니 계약 방식, 지분 구조, 자금 조달 계획, 운영 시뮬레이션 등 결정해야 하는 이슈들이 참 많았습니다. 도시공감에서 운영하려는 대관공간은 목표 매출은 낮지만 재료비나 인건비 부담이 적어 투입 대비 높은 수익률을 가져갈 수 있습니다. 반면 블랭크에 운영하려는 F&B공간은 목표 매출은 높지만 재료비와 인건비 비중 역시 높아 수익률은 상대적으로 낮습니다.
이렇게 다른 운영방식을 하나의 건물에서 어떻게 풀어내면 좋을지 고민 끝에 공간에 대한 지분은 2:1로, 운영의 비중은 1:2로 설정하여 결과적으로 1:1의 사업 구조를 실험해보기로 결정했습니다. 공간을 공동으로 조성하고 관리하는 대신, 매출 비중이 높은 F&B의 수익을 배분하여 공유공간의 수익률을 보전해주는 방식을 통해 새로운 형태의 동네공간 운영모델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렇게 발생된 수익의 20%는 동네기금으로 적립하여 후암동에 공유공간을 늘려 나가는 씨앗자금으로 활용할 예정입니다. 동네에서 공간을 이용하며 만들어진 부가가치가 다시 동네로 환원되는 것이죠.
이러한 운영 모델을 기준으로 1층과 2층은 블랭크에서 식사가 가능한 커뮤니티 다이닝-바 <공집합>을, 3층은 도시공감에서 홈씨어터 장비가 구비되어 있는 공유극장 <후암거실>을 계획하였습니다. 점심과 저녁에 맛있는 식사와 함께 여유를 즐기고,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잠시 들러 가볍게 술 한잔하고, 가끔은 늦은 밤 집에서 혼자 나와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고, 때로는 동네 사람이 주인이 되어 이웃을 만나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을 상상하며 기획과 설계를 진행하였습니다.
<공집합 상도>의 경우 커뮤니티 바 중심으로 운영하다 보니 보통 9시 이후에 저녁식사를 마친 손님들이 방문하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비어있는 시간이 많았고, 회전률이 낮아 수익률이 높지 않은 편입니다. <공집합 후암>에서는 오피스가 밀집된 동네의 특성을 고려하여 점심과 저녁 메뉴를 강화하고, 호스트나잇 프로그램을 강화하여 더 많은 이웃이 참여하는 공간으로 운영하기로 하였습니다. 이를 위해 10년 이상 요리 경력을 가지고 있는 강성영 셰프님과 함께 공집합의 주류와 잘 어울리는 메뉴를 개발하여 런치와 디너 타임을 추가하였고, 1일 바 매니져가 되어 이웃을 만날 수 있는 '후암동 호스트'를 공개 모집할 예정입니다. 3층의 <후암거실>은 예약을 통한 대관공간으로 운영되며, 4K 영상 관람이 가능한 홈씨어터 장비가 구비되어 있습니다. 물론 1-2층의 전 메뉴 주문이 가능하겠죠 :)
<공집합 후암>은 블랭크가 상도동이 아닌 다른 동네에서 직접 운영하는 첫 번째 생활공간입니다. 최근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SNS의 발달로 일회성으로 소비되는 공간이 많아지면서 과연 '커뮤니티 공간'은 지속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많았습니다. 블랭크에서도 {공집합}을 커뮤니티를 지향하는 공간이라 설명하지만, 사실 외형적으로는 사진 찍기 좋은, 맛있는 술과 음식을 판매하는 상업공간 중 하나일 뿐입니다. 이런 공간이 많아질수록 동네 분위기가 달라지고, 젠트리피케이션을 걱정하는 우려의 시선도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공간의 소비 주기가 갈수록 짧아지고 있는 요즘, 건축과 기획이라는 업에 대한 고민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저 좋은 공간만 만들면 충분하던 시대가 저물고, 공간과 사람을 연결하는 일이 더 중요해지는 시대가 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난 5년 동안 다양한 공간을 조성하고 운영하면서 공간을 만드는 일도 중요하지만, 공간을 꾸준하게 가꾸며 이야기를 이어가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도시공감과 블랭크는 그동안 건축사사무소라는 본질을 놓치지 않고 동네 건축가로서, 그리고 기획자로서 역할을 고민하며 공간을 운영해 왔습니다.
커뮤니티 공간을 직접 조성하고 운영하는 가장 큰 목적은 '장사'라는 본질을 놓치지 않으면서, 공간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동네에 대한 공동의 감정을 불러일으켜 '우리가 살고 있는 동네'를 다시 돌아보게 되는 아주 사소한 계기를 만드는 것입니다. 공유공간 역시 집 안에만 갇혀있는 일상생활을 집 밖으로 나오게 만들어 동네를 조금은 다르게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줍니다. 멀게만 느껴졌던 동네가 이러한 공간을 중심으로 좀 더 가까워진다면 동네에 대한 애착이 더 커질 수 있지 않을까요? 동네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고 함께 작당할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지면 동네 곳곳에 매력적인 공간들이 더 많아질 것입니다.
우리는 동네에 살며 일하는 건축가이자 기획자이자 운영자로서 후암거실과 공집합에서 만들어지는 이야기의 끈을 놓지 않고 동네와 공간과 사람을 촘촘히 연결하겠습니다. 후암동에서 새롭게 시작될 도시공감과 블랭크의 이야기에 많은 관심 부탁드리겠습니다 :)
*도시공감의 더 자세한 이야기는 아는동네 <사적인 후암> 를 확인해주세요 :)
위치 서울특별시 용산구 후암동 134-1
준공연도 2019년 6월
기획 도시공감 X 블랭크
공간디자인 이기훈, 이준형 (후암거실) 강현구, 문승규 (공집합)
시공파트너 디자인 하울
브랜딩파트너 씨클레프 스튜디오 원대한 c-clef@naver.com
글 문승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