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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엠히 Feb 23. 2017

내가 꿈꾸던 런던

런던 쇼핑: 브릭레인 마켓과 노팅힐 포토벨로 마켓



 고등학생 시절 빈티지 의류를 참 좋아라 했다. 유니크한 패턴, 흔하지 않은 단추. 그렇다고 해서 낯설지 않은 느낌을 가진 옷. 가끔 내가 가지고 있는 빈티지 의류를 보고 친구들은 할머니 옷 같다고 말하곤 했는데 그래서였을까. 여하튼 빈티지 의류는 촌스러운 듯 멋스러운 느낌을 가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엄마는 그런 나의 취향을 탐탁지 않아했다. '옷이 없어서 남이 입던걸 입냐'부터 내가 입은 옷을 보고 심하게는 '거지 같다'까지. 엄마에게 빈티지 의류란 남이 입다 버린 옷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런 엄마와 내가 함께 간 런던에 빈티지샵이 몰려있는 곳으로 유명한 곳이 있다. 바로 브릭레인 마켓. 이곳은 런던에서 가장 유명한 빈티지 마켓이며 내가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다. (빅뱅의 지디가 삐딱하게 뮤직 비디오를 촬영한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엄마를 브릭레인 마켓까지 어떻게 데려간담. 분명 빈티지 마켓이라고 말하면 가지 않는다고 할 테니 일단 쇼핑 간다고 하자. *런던의 4대 마켓 중 한 곳에 간다고 하자.


 *런던의 4대 마켓으로는 브릭레인 마켓, 포토벨로 마켓, 캠든 마켓, 버로우 마켓이 있다. 브릭레인 마켓은 빈티지 제품을, 포토벨로 마켓은 앤티크 제품을 구경하기 좋으며, 캠든 마켓에서는 런던의 젊음을 느끼기 좋고, 버로우 마켓에서는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다고 한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이 날의 하늘은 흐리다 못해 비를 흩뿌린다. 마치 브릭레인으로 엄마를 데려가며 삐질삐질 식은땀을 흘리는 나처럼. 그래도 브릭레인은 구석구석 멋스러움으로 나를 반겼다.


 



 브릭레인에 도착 후 여기저기 서서 엄마에게 사진을 찍어달라 말하는 딸이 엄마는 못마땅하다. 이런 곳이 뭐가 좋냐며.


 엄마는 브릭레인의 골목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엄마가 골목길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브릭레인의 골목이 엄마의 취향이 아니었을 뿐. 엄마가 걷기 좋아하는 골목길은 고즈넉한 분위기라고 표현하면 딱 알맞다.


 엄마가 좋아했던 골목길이 어디가 있었을까, 맞다! 엄마는 런던의 부촌을 참 좋아라 했다. 조용하고 듬성듬성 큰 집이 모여 있는 곳, 값비싼 차가 세워져 있는 부촌에 가면 엄마는 참 좋아라 했다. '이런 데는 얼마나 할까' 하면서 근처 부동산 창에 붙어있는 전단지를 보며 손가락으로 환율 계산을 하곤 했던 우리 엄마다.


 엄마는 조금 지저분한 느낌의 브릭레인의 땅 값에는 관심이 없는 듯하다. 앞만 보고 걷는다.





 브릭레인에는 브릭레인 북샵이라는 유명한 책방도 있다. 아마 우리나라에서는 이곳에서 파는 에코백이 더 유명한 듯 하지만.





 엄마는 내게서 자꾸 등을 보인다. 이곳 브릭레인은 엄마의 뒷모습을 가장 많이 본 곳으로 손에 꼽힌다. 뒷모습만으로도 '이곳을 빨리 벗어나고 싶어'라고 외치고 있는 우리 엄마. 덕분에 런던에 다시 가야 할 이유가 생겼다.


 브릭레인은 내가 하루 종일 구경해도 부족한 곳이었다고.





 다음은 앤티크 제품이 많다는 노팅힐의 포토벨로 마켓이다.


 '노팅힐의 포토벨로 마켓은 정말 브릭레인 마켓과는 다른 곳이야 엄마. 빈티지샵 아니야 절대'


 몇 번이고 포토벨로 마켓에 대해 설명하고 엄마를 안심시키고서야 포토벨로 마켓에 입성했다. 브릭레인 마켓과는 조금 다르게 포토벨로 마켓에는 노점상이 많았다. 사람도 얼마나 많던지, 그 많은 노점상을 다 메울 만큼 인산인해한 날이었다.





 10시간 넘게 비행기를 타고 영국 땅까지 밟았으면 새로운 음식을 맛봐야 할 텐데, 아는 맛이 가장 무섭다고 핫도그에 눈이 간다. 볶은 양파가 잔뜩 올라간, 한 입에 다 베어 먹을 수 없던 이 날의 핫도그는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수많은 사람들로 복잡한 포토벨로 마켓을 더 북적이게 만드는 건 거리에 나온 음악가들이었다. 청명한 하늘로 들뜬 사람들의 마음에 더 활기를 불어넣는 그들의 또 다른 청명한 소리.





 그리고 내가 한참을 서서 감상한 버스커. 저 친구의 삶은 얼마나 낭만적일까 하는 생각에 하루만 저 친구의 여자 친구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의 음악은 실로 엄청난 힘을 가진 듯하다. 그는 구멍 난 형편없는 반스를 신고 있었다. 동네 친구가 저 구멍 난 반스를 신고 나왔다면 나는 단 1초의 망설임 없이 '거지새끼냐'라고 했을 텐데. 하지만 저 버스커의 목소리는 자신이 신은 반스의 구멍에 대해 해명한다.


 난 구멍 난 내 반스가 부끄럽지 않다고. 이런 구멍 따위에 신경 쓰지 않다고. 이대로가 좋다고. 이게 내 삶이라고.

 그 모습마저 얼마나 낭만적인지, 그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나도 내 반스에 구멍을 내볼까 살짝 생각을 해본다.





 그러거나 말거나 엄마는 역시나 등을 보이며 내 발걸음을 재촉한다.


 엄마는 역시나 버스킹이 정신 사납다. 그렇다고 엄마가 음악을 싫어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응답하라 1994에서 로이킴이 다시 불러 화제가 된 '서울 이곳은'이라는 곡을 좋아하는 우리 엄마다. 엄마는 잔잔한 음악을 즐긴다.


 로이킴이 버스킹을 했다면 우리 엄마도 나와 같이 그 장면을 담으며 오래 그곳에 머무를 수 있었을까.


 아쉬움을 뒤로하고 엄마의 뒷모습을 얼른 쫓아 포토벨로 마켓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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