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에 반한 왕비에게 선물한 마을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오비두스는 성곽으로 둘러싸인 작지만 아름다운 마을이다. 이 작은 마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는, 1228년 포르투갈의 디니스 왕이 첫눈에 반한 이사벨 왕비에게 선물했다는 이야기에서 짐작할 수 있다.
'첫눈에 반할 만큼 아름다운 왕비에게 선물한 마을이라면, 그 마을은 또 얼마나 아름다울까'
리스본에서 버스를 타고 한 시간 남짓을 달리면 리스본의 시내와는 사뭇 다른 풍경을 가진 오비두스에 도착할 수 있다. 내게 오비두스의 첫인상은 포카리 스웨트 촬영지, 혹은 신혼여행지로 잘 알려져 있는 그리스 산토리니를 떠올리게 했다.
마치 동화 속에 나올법한 아기자기한 모습을 하고 있는 오비두스의 골목길. 흰 벽은 심심하지 않게 노란색, 파란색으로 띠를 두르고 있는가 하면 화려하지 않은 앙증맞은 화분들이 구석구석 놓여있어 오비두스만의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다.
서정적인 느낌의 오비두스의 골목과는 다르게 재미있는 벽도 있다. 이 푸른 벽이 더 매력적인 이유는 낙서가 모두 벽 색과 같은 푸른색으로 차있기 때문. 비슷한 계열의 푸른색이 아닌 정말 단 하나의 푸른색, 어떻게 이 많은 사람들은 이 벽에 하나같이 똑같은 푸른색으로 자신의 이름을 남겼을까.
파란색 물감이 없는 나는 아쉬움에 자리를 뜨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데, 옆에 있던 한 커플이 푸른 벽에 손가락을 꾹꾹 문지르기 시작했다.
'저거였구나!'
정말 재미있는 벽이 아닐 수 없다. 벽에 이미 칠해진 페인트를 손에 꾹꾹 문대어 이름을 적다니, 그렇게 나도 오비두스의 골목길 한편에 내 이름의 한 부분을 남길 수 있었다.
아기자기한 화분만 있는지 알았는데 조금 더 깊숙이 들어가니 화려한 꽃나무를 가진 집도 보였다. 저 붉은 꽃까지 보니 정말 산토리니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유럽여행을 할 때 유독 남의 집의 현관문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을 좋아라 했다. 아파트에 사는 우리는 이미 만들어진, 재미없게 밋밋한 문을 가졌기 때문일까. 굳이 우리 집 현관문 옆에 큰 액자를 하나 걸어둔 엄마의 마음을 이제 알 것 같다.
오비두스의 아기자기한 골목길을 다 구경하고 성곽에 오르기로 했다. 우리가 오비두스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많은 관광객이 다녀간 후의 늦은 시간이었지만, 복작복작한 분위기보다 차분히 성곽을 걸을 수 있는 시간대였다.
성곽에 오르니 골목길 안에 들어간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그리스 산토리니와 닮았다는 첫인상은 온데간데없이 오비두스만의 색으로 가득 차 있던 풍경. 예스러운 성곽과 붉은 지붕이 '산토리니와 닮았다'는 내 생각에 항의라도 하듯 앞다투며 내 눈에 가득 들어왔다.
아슬아슬 좁게 나있는 성곽에 앉아 마을을 내려다보면 마치 이 성의 주인이 된듯한 착각에 빠진다. 마을과 푸른 들판까지 한눈에 볼 수 있을뿐더러, 이 곳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까지도 엿볼 수 있으니 정말 왕비의 마을이 맞구나.
저 높이서 내리쬐던 해가 마침내 내게 시선을 맞춰주니 오비두스의 모습이 더 따뜻하게 물들었다. 왕비의 마을이라고는 알려졌지만 왕비가 정말 이곳을 사랑했을지는 알 수 없는 노릇. 하지만 성곽에 앉아 따뜻한 볕을 받으며 앉아 있으니 왕비라고 어찌 이곳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적 영화나 TV를 보며 한 번씩 해봤을 '왕비로 산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라는 생각. 이곳 오비두스의 성곽에 올라 여유롭게 하루를 보낸다면, 어린 시절 궁금했던 그 기분을 만끽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