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카봉의 필요성에 대하여
약 40분 정도 기차를 타고 리스본을 벗어나면 신트라에 도착하는데, 그곳에서 다시 10분 정도 버스를 타고 산길을 오르면 동화 속에서 볼 법하다는 페나성을 만날 수 있다.
1840년 포르투갈 왕가의 여름 별장으로 쓰였다는 이 성은 아름답다기보다는 독특한 자태로 푸른 하늘과 함께 정말 동화 속에 나올법한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다.
왠지 다채롭다는 표현보다 알록달록하다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리는 페나성은 색뿐만 아니라 낭만주의, 고딕, 무어 양식 등 여러 가지 건축 양식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첫인상도 굉장히 강렬하고 그간 봐왔던 성들보다는 낯선 느낌이 들었던 페나성.
성의 어느 곳을 들어가도 페나성의 알록달록한 색감이 화면에 잡힌다. 처음에는 조금 촌스럽다고 생각될 정도로 강렬했던 색감에 적응이 됐는지, 온통 하얀 벽으로 칠해진 내부에 들어갔을 때 오히려 더 어색한 기분이다.
페나성은 신트라 산 정상에 위치하고 있는 만큼 전망이 시원하게 트여있다. 성은 왜 항상 높은 곳에 지어졌는지, 오르기 힘들게. 내려다보는 걸 좋아해서 그런가, 그래도 꽤 오래간다고 느껴졌던 버스를 타고 구불구불한 길을 올라온 보람이 있구나.
여행을 꽤 다니다 보니 여행지에 맞게 옷을 입는 취미 비슷한 게 생겼다. 아무래도 여행지에 맞는 옷을 입어야 그 여행지에 어울리는 사진을 남길 수 있으니까. 역시 리스본 여행에 맞춰 장만한 노란 원피스, 덕분에 노란 벽에서 찍은 이 사진이 페나성에서 남긴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이 됐다.
왕가의 여름 별장으로 쓰여서일까, 그들이 이 곳을 별장으로 쓸 수밖에 없었던 매력이 있어서일까.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페나성에서 찍은 사진을 열어보니 내 카메라에 담긴 사진들도 대부분 가족의 모습이었다.
그중에 이 사진, 여행 다닐 때 셀카봉을 들고 다니지 않은 나는 이 사진을 보면 마음이 참 그렇다. 어느 날 엄마가 친구분들과 다녀온 여행사진을 본 적이 있는데 엄마의 손에는 내가 '카메라 있는데 뭘 저런 걸 들어, 저거 들고 다니는 거 웃겨'라고 말하던 셀카봉이 들려있었다. 그리고 친구분들과 아주 환하게 웃고 있던 엄마의 얼굴.
'셀카봉 챙길까?' 하는 엄마에게 단호하게 '아니'라고 대답하던 나는 확실히 엄마에게 건조한 딸이다. 딸이라고 하면 엄마한테 아양을 떤다거나 재잘재잘 떠들어대는 맛이 있어야 하는데 내가 볼 때 나는 그런 재미가 부족한 딸이다. 확실히 장난스럽고 귀여운 딸이 아니다. 그래서인지 엄마와 셀카봉을 들고 다니면서 사진을 찍을 기분도 낼 줄 모른다. 아니, 내가 핸드폰보다 더 멋지게 카메라로 담아줄 텐데 셀카봉까지야.
그런데 이제 보니 엄마와 다녀온 여행 사진에 엄마의 멋진 사진은 많지만 나와 함께 웃으며 찍은 사진은 볼 수가 없다. 내가 잘못한 걸까, '엄마 저기 서봐' 하고 사진을 툭 찍는 나보다, '엄마 여기 봐봐' 하고 셀카봉으로 함께 웃으며 사진을 남기는 그런 딸이 맞는 걸까. 그냥, 딸과 함께 셀카봉으로 사진을 찍는 저 사진을 보고 한동안 마음이 복잡했다.
내게 이렇게 복잡한 마음을 선사할 만큼 페나성은 정말 가족들의 여름 별장 같은 그런 매력이 있는 곳이었나 보다. 성만큼이나 예쁜 모습을 한 가족들이 가장 많았던 페나성이었기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