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엠히 Mar 28. 2017

유라시아 서쪽 끝에서

아득한 수평선이 있는 포르투갈 호카곶



 "이곳에서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된다”


 유라시아 대륙의 최서단인 포르투갈 호카곶. 십자가 탑에 적힌 카몽이스의 시 구절처럼 이곳은 유라시아의 최서단이지만 한때는 유럽 사람들에게 세상의 끝이라고 여겨진 곳이기도 하다.





 세상의 끝이라니, 하늘과의 경계도 분명하지 않을 정도로 넓은 저 바다는 얼마나 서운했을까. 온 힘을 다해 이 땅 앞으로 힘차게 파도치는데 말이다.





파도가 힘차게 치니, 당연히 바람도 세게 불어온다.






 어릴 적 바다를 그릴 때면 주저 없이 파란 크레파스를 들고 쭈욱 선하나를 긋고 시작했는데 실로는 그렇지가 않다. 내가 그린 바다와는 다르게 하늘과 맞닿아 있는 아득한 수평선. '단지 내가 선 이곳이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 끝일뿐, 이 세상에 끝은 없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던 광활한 바다.





 이 작은 사진 안에서도 바다가 내는 색이 다른 걸 보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빛의 색은 바다가 다 품고 있을지도 모른다.





 엄마는 무슨 생각을 할까, 그러고 보니 엄마가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먼 곳을 바라보는 모습을 별로 본 적이 없다. 내 기억 속의 엄마는 움직이지 않을 때 항상 메모지에 이것저것 써 내려가며 무엇을 골똘히 생각하거나 계산을 하고, 꾸벅꾸벅 조는 모습이 전부인데.


 그런 엄마를 볼 때면 한 번씩 '우리 엄마 치매는 안 걸리겠다' 싶다가도 '아니야, 저러다가 머리에 과부하가 걸려서 미칠지도 몰라'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런 엄마가 저렇게 평온한 모습을 보니 내 마음도 덩달아 편안해지던 날.






 호카곶이 한눈에 들어오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던 곳은 아니다. 하지만 한눈에 넣을 수도 없으며, 특별한 무언가가 없기에 더 의미 있던 곳이 이곳 호카곶이다. 


 특별한 무언가를 바쁘게 쫓아다니며 사진을 찍거나 알려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서서 어떤 생각이든 할 수 있던 곳이니까, 단지 엄마와 나는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 끝에 함께 서있었을 뿐이지만 그 사실만으로도 모든 것을 한 곳이니까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페나성에는 가족이 있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