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칸방에서 세탁기를 돌리는 일
생각해보면 유독 빨래가 싫었다. 그 작은 단칸방에서 세탁기를 돌리는 일은 여간 정신 사나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세탁실이 따로 없는 공간에서 세탁기를 돌린다는 것은 내가 하던 일을 모두 중단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세탁기가 돌아가기 시작하면 물이 나오는 소리를 시작으로 물을 도로 빼는 소리까지, 그 작은 공간에서 굉음을 들으며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누가 이기나 해보자며 큰 소리로 TV를 시청하거나 음악을 듣거나 하는 노력이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이미 내 신경은 신경질적으로 돌아가는 세탁기 소리에 잔뜩 곤두서 있었으니 그를 이길리 만무했다.
굉음이 멎고 끝을 알리는, 조잡하지만 꽤나 반가운 멜로디가 들린다고 해서 사투의 끝을 의미하는 것도 결코 아니다. 건조대를 펼쳐 빨래를 널고 나면 안 그래도 비좁은 내 공간이 더 갑갑하게 느껴진다. 시원하게 창문을 열지 못함은 그 갑갑함을 더한다. 빨래가 기분 좋은 섬유유연제 향과 함께 뽀송하게 마르려면 창문을 열어야 하는데 겁이 많은 나는 그러질 못했다. '여기 여자 혼자 살아요' 광고하는 내 속옷이 혹시나 건너편의 누군가에게 보일까, 칙칙한 방을 바꿔볼까 싶어 칠했던 누가 봐도 여자가 사는 방으로 보일 분홍색 벽지가 보일까 싶어서였다.
날씨가 좋다며, 이불 빨래를 하자는 친구 말에 잠시 멈칫하다 결국 세탁기를 돌렸다. 세탁기가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지 어쨌는지 소리도 듣지 못하고 어느새 빨래가 끝이 났단다. 그렇다길래 세탁기에서 이불을 꺼내 파란 하늘 아래 근래에 잘 깎인 잔디가 깔린 마당에서 널고 있자니 그때 생각이 났다. 그냥 그때는 그랬었는데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