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
작년 이맘때쯤의 나는 일구던 밭을 정리했다.
말라비틀어진 뿌리를 캐어내고 여름 동안 몸과 마음이 지쳐있어 가을 작물을 수확하지 못한 채로 밭을 마감했다. 쓰고 있던 물조리개는 태풍이 온 동안 어디론가 날아갔고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호미는 장마철 흙더미에 뒤덮여 모습을 감추었다. 산지 얼마 되지 않은 물조리개는 아까운 마음이 들었지만 호미는 집에도 여려 개 있는터라 별 아쉬운 마음 없이 그 밭을 떠났다.
코로나와 함께 찾아온 겨울 동안 집안을 지키며 한 일은 놀랍게도 일자리를 찾는 것이었다. 십삼 년 동안 가정주부로 살아왔고 아직도 김장철에는 배추를 주문하지 않고서 못 배기겠는 나는 무슨 용기에서였는지 사회로 나갈 준비를 했다. 어쩌면 축복인지도 모를 나의 직장은 늦은 나이에도 운 좋게 바로 구해졌고 다행히 조금의 실패만 맛보고 사회로 나갈 수 있었다. 집과 사회를 구분 짓는다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여기던 나였는데 확실히 그것에는 집안과 밖의 경계보다 더 깊은 무엇이 있었다.
일 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사람들이 밀물처럼 들어왔다 빠져나갔다. 작은 만남만 유지해오는 나로서는 정신없는 시간이었다. 직장 안에는 새로 입사했다가 퇴사하는 사람들의 반복이었고 심지어 같이 일해오던 사람들도 하나둘씩 사라져 갔다. 처음 입사하면서 마음을 열었던 사람들의 이름은 이제 기억도 나지 않는다. 노동력을 제공하고 돈을 받는 사전적 의미로만 생각했던 직장이라는 곳은 보이지 않는 끈이 존재했고 나는 잡아도 본 적 없는 동아줄 때문에 개인 면담을 해야 했다. 일을 한다는 것은 자존감이 올라가는 동시에 자존감을 버려야 하는 것이기도 했다.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나의 일터는 어젯밤 구워 먹은 알밤처럼 겉은 통통하게 살이 올라선 벌레가 먹어 들어가고 있었다.
새로 업데이트된 사직서를 고이 가지고 다니면서도, 진실을 재촉하는 따가운 상사의 눈빛을 잊지 못하면서도 안간힘을 쓰며 나아가고 있는 건 어쩌면 십몇 년 전 포기해버린 이 일에 대한 미련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때의 나는 결혼과 출산이라는 도피처가 있었고 얼른 그곳을 빠져나왔다. 잃어버린 농기구 따위는 집어치우고 황급히 접어버린 밭처럼 그만두어버리면 모든 게 멈출 줄 알았는데 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나는 마음 한구석에 찝찝한 마음을 접어두고 살아야 했다. 그건 이 직업에 대한 애착이나 일에 대한 열정 같은 마음과는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그저 내 젊은 날의 인내심에 대한 아쉬움이랄까. 무어라 정의 내릴 수 없는 미련이었다. 어쩌면 다른 사람들도 별거 아닌 미련 때문에 혹은 소소한 동기로 인해서 무언가를 놓지 않고 살아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사는 데에는 거창한 이유가 없는 것처럼 말이다.
쉬는 날에는 하루 종일 잠을 자고 아이들은 시켜먹는 음식에 익숙해져 벌어오는 돈의 절반 이상은 식비로 사라지면서도 나는 오늘도 무엇을 위한 일인지도 모른 채 출근을 한다. 글을 쓰며 살고 싶었던 생활들을 잠시 접어두고 지내는 시간 속에는 어떤 다른 의미가 작게 숨어있는지도 모르겠어서. 생활비를 번다는 명목 속에서 나름 찾지 못했던 또 다른 자신을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하면서 말이다. 그건 현재의 나로서는 알 수 없는 것들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명암이 뚜렷해질 것이고 그런대로 괜찮았던 시절이라고 되돌아보게 될 것이다. 모든 지나온 것들에게는 그 나름의 작은 의미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