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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박하며화려한 Jan 05. 2022

휴일

 작가님의 글을 못 본 지가 일 년이 넘었다고 브런치의 알림이 들어왔다.

 벌써 일 년이라고? 시간이 빠른 줄은 알았지만 정말 기억보다 앞서가서 깜짝 놀라기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동안 글을 쓰지 못했던 이유에는 나의 게으름이 가장 크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쓰려고 앉았을 때 드는 생각이 분노와 또 분노와 또 분노, 그리고 약간의 자괴감 등의 감정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달라졌다. 전보다 풍족해진 소비습관도 달라졌고. 일을 해도 주부이던 나와 직장인의 나는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사람은 환경에 따라 변하는 것이 맞는가 보다. 사고 싶은 것도 많아졌고 이 정도는 쓰고 살아도 된다라는 자신만의 쪼잔함의 기준도 달라졌다. 일을 막 시작했을 때는 하루 종일 뛰어다니다 녹초가 되어 집에 오면 쓰러져 자기 일쑤였고 지금은 마음이 녹초가 되어 유튜브를 보거나 쇼핑몰을 들락거리며 휴식시간을 보내곤 한다. 그러다가 문득 예전의 나를 기억나게 하는 순간들을 만나게 되면 브런치 창을 열었다가 닫았다가, 서랍에 끄적였다가 다시 넣어둔다. 그 이유는 기억의 대부분은 직장에서 보낸 시간들인데 글을 쓰려고 앉으면 사람에게 치였던 감정들이 한꺼번에 밀려오고 결국 마음이 피곤해진 나는 창을 닫고 무언가 소비할 것을 찾아 헤매면서 마음의 안식을 보내려 하는 순환을 반복하는 것이었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나와 같지는 않을 것이다. 몇 년째 가끔 얼굴을 보고 있는 동네 친구는 처음 만났을 때도 워킹맘이었고 지금은 다시 워킹맘이 되었다. 항상 비슷한 옷을 입으며 화장이라는 건 하는 법이 없는 그 친구는 집에서 친정김치로만 밥을 먹어도 맛있으면 행복한 사람이고 아이와 도서관을 가거나 걸어서 마트에 가서 한두 가지 찬거리를 사 오는 것이 즐거운 시간인 사람이다. 간혹 좋은 식당에 가고 예쁜 카페에서 수다를 떠는 것도 물론 좋아한다. 하지만 백지처럼 항상 같은 모습을 유지하는 소박함이 있는 친구다.

사실 나는 그 친구가 부럽다. 자극 없이 살면서 작은 것에 행복한 그녀가. 집에서 뜨개질을 하며 시간을 보내던 시절도 기다리던 취업이 되어서 직장을 다니는 지금도 같은 모습의 그녀가. 감사할 줄 아는 삶의 모습이란 바로 그런 것일 텐데.

 삼분의 일도 채 읽지 못한 책들이 여기저기 쌓여있고 유튜브 영상을 태블릿으로 틀어놓고도 또 핸드폰을 쥐고 인터넷 서핑을 하며 드는 생각은 일한다는 핑계로 자신의 시간을 돌보지 못한다는 반성이었다. 내 삶에 집중하지 못하는 이유는 직장에서 에너지를 다 쏟기 때문이고 사람들에게 치여서 힘들다는 핑계를 대기 때문이다. 나의 가능성을 직장 안에서 평가받기를 원했고 열심히 보다는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 발버둥 쳤기 때문이다. 쉬는 날이 없다면서 엄마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고 전화가 오면 짜증을 냈다. 아이들의 학교에서 알림이 뜨면 읽고 넘기기 일쑤다. 시간이 없어서. 시간이 없다는 것은 내가 오로지 직장에서의 시간에만 의미를 두었기 때문일 것이다.

 얼마 전에 북페어에 다녀왔다. 쉬는 날이 맞는 직장 동료와 함께. 동행한 그 선생님은 판매하고 있는 책들보다는 굿즈에 관심을 두었고 다음 북페어 때는 함께 참여하고 싶다고 했다. 삼 교대를 하면서 그게 가능할 거라 믿냐고 했지만 어떤 것이든 가능하지 못할 이유는 또 무언가 싶다. 병원 안에서 뛰어다니고 있을 시간보다 온전한 나로 사는 인생이 더 길 수도 있는 것을. 국제보건기구에서는 이번에 중년의 기준을 60으로 바꾸었다 한다. 100세 인생 안에서 우리는 몇 번이고 모습을 달리하며 살 수 있다. 오늘은 간호사였지만 내일은 작가가 될 수도 있고. 지금은 집에서 기다려주는 엄마였지만 다음날은 일하러 간 엄마가 될 수도 있고. 모습이 달라지면서도 내가 나일 수 있으려면 좋아하는 것이 있고 그것을 하는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할 것이다.

 먼지가 쌓여있는 책상을 오랜만에 정리를 한다. 읽다만 책들을 마저 펼친다. 올여름 날파리를 기특하게 잡아준 싱크대 위 트랩을 이제는 제거한다. 낡은 옷들을 버리고 아이들 방의 쌓여있는 교과서들을 치운다. 졸업을 하는 큰아이와 함께 식사를 하러 나선다. 이번엔 내가 먼저 엄마에게 전화를 한다. 이렇게 이틀간 휴일이 흘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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