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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박하며화려한 Aug 06. 2022

한 달 쉬고 오겠습니다

한 달간의 무급휴가

 사직서를 여름에 내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겨울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나를 초라하게 만드는 계절이고, 문득 자신감이 없어지거나 우울감에 빠져들게 한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다가 찬바람이 휙 스쳐 지나가 몸을 오소소 떨었을 때나 잎이 다 져버린 마른 나뭇가지를 바라볼 때 등 때때로 사소하게 지나가는 부분에서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으니 이렇게 활기 가득하고 해가 늦게까지 쨍쨍 비춰오는 계절에 사직서를 낸 것은 나를 돌아보기에도 가벼운 마음을 가지게 할 것이 분명했다.

 퇴사 사유에는 육아 문제라 적었다. 이른 결혼으로 아이들은 손 가지 않을 만큼 자랐으나 직장을 가진 이후로 집안꼴이 엉망이 되어버린 건 사실이었으니까. 십삼 년 동안 집안 살림을 하면서 깔끔하게  관리한 것들은 고작 삼 년 되어가는 직장생활로 가족 또는 양쪽 부모님 기억에서 가볍게 사라지게 만들었고 친정엄마나 시아버지께서  집에 간혹 들르실 때마다  혀를 끌끌 차게 해 주었다. 얼마 전 가지볶음을 해주겠다 하였더니 남편은 만들 줄 아냐는 황당한 질문을 해왔다. 흔히 먹던 반찬을 잊을 만큼 기억의 힘은 가볍다.

 열심히 해봤자 잊히는 게 살림에 대한 노력이라면 퇴사 후 나는 얼마큼 집에서 쉬게 될까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또 몸이 근질거려서 취업자리를 알아보진 않을까. 힘들어도 해내던 내 모습이 자꾸 떠오르지는 않을까. 어쩌면 다시 직장을 구할지라도 당분간은 계획 없이 지내보고 싶다는 생각은 아이들이 방학을 시작하면서 더욱 강해졌다. 막내는 엄마가 마냥 집에 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공공연히 해오기도 했었고 남편은 나의 낫지 않는 자잘한 질병들이 삼 교대의 고됨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확신했기에 집안 사정이 퇴사의 이유에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나 단지 그냥 쉬고 싶었다.

 사직서를 내기 전 퇴사 이유를 말했을 때 상사는 사직 절차를 통보하는 것 외에 아무 이야기도 없었다. 직장은 일할 사람이 적어 각 병동마다 힘들게 돌아가고 있었는데 말이다. 사실 관두겠다 마음먹고 회유당하는 것을 거절하는 것도 곤란한 일이다. 어쩌면 저런 심플한 반응으로 나오는 것이 고마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상사는 퇴사를 이미 마음먹은 사원의 마음을 돌려놓아봤자라고 판단했으리라. 어떤 조건을 내걸어도 의미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관둘 직장으로 마음을 접어놓고 보니 마지막 한주를 일할 때는 더욱 길게 느껴졌다. 조심하던 과장님들한테 보고하는 것도 쉬워졌다. 솔직히 말해 난 겁이 없어졌다. 어차피 안 볼 사람들이니까. 일이 끝나면 같은 듀티 사람들의 일이 남아있어도 먼저 쏜살같이 퇴근했고 나 자신을 먼저 챙기는 날들을 보냈다. 나를 알아줄 사람은 정작 나였다는 이치를 깨닫고 나니 마음이 기지개를 펴듯 시원해졌다.

 자유를 찾기 3일 전 데이 근무를 하던 나에게 상사는 지나가듯 말했다. 데이 고정 업무를 하는 건 어떠냐고. 6시 출근, 3시 넘어 퇴근하면 아이들 생활패턴과도 맞지 않겠냐고. 그럼 남편도 반대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보라 했다. 할 말이 없었다. 퇴사 사유는 모두 아이들과 남편 때문이었으니까.  몇 달 쉬려는 마음도 있었다고 고백했더니 상사는 한 달 쉬고 데이 고정 근무로 돌아오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사직서는 부장님께 수리되었지만 힘들어서 그랬다고 설명해주겠다고. 퇴사를 마음먹은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올봄에 직장을 떠나려다 사람들을 생각하면 이만한 곳도 없어 좀 더 참아보기로 했었다. 그리고 두 번째로 퇴사를 마음먹은 지금은 사직서 수리까지 완료되었지만 다시 생각해볼 이유가 생겼다. 간호사에게 고정 시간 근무란 흔한 자리는 아니다. 게다가 한 달 쉬어도 좋다는 허락까지 받았다.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게 바로 한 달간의 무급휴가를 쓰게 된 이유다. 그렇다. 좀 더 근무해보기로 결정했다. 한 달 쉬고 나면 마음도 생각도 정리될 거라고 생각한다. 혼자만의 여행, 아이들과 같이 갈 곳, 집안에 치우고 정리해야 될 부분들  여러 계획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머릿속에 달려들었다.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았지만 작은 것부터 하루하루 실행에 옮겼고 아직 휴가 5일 차에 머물러있다. 콜벨 지옥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먼저 돌볼 환자부터 대처하던 시간들에  멈춤 버튼을 누르니 내가 좋아하던 것들이 서서히 떠오른다. 210일이나 작가님의 글을 보지 못했다는 브런치 알림에 이렇게 답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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