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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 에디터 Jul 16. 2018

연남동 사루카메 이야기

스타트업의 경쟁자는 홍대 라멘집이다


'스타트업' '플랫폼 비즈니스' '콘텐츠 마케팅'같은 키워드를 갖고 구직 활동을 하면서 에어비앤비, 넷플릭스, 배달의민족, 퍼블리, 29cm 등 모범이 될만한 좋은 사례를 많이 보았지만 나에게 직접 와닿으면서 영향을 주는 건 -아직 정식 오픈 전인- 연남동의 한 라멘가게다.


홍대입구역 3번 출구를 나와 연트럴파크를 거쳐 연남파출소를 지나다 보면 보이는 곳. 사루카메(sarukame). 사실 친한 친구가 하는 가게로 창업 히스토리를 웬만큼 알고 있다. 잘 다니던 외국계 회사 그만 두고 요식업 하겠다며 무작정 일본으로 건너 가 3년간 멘식수행, 귀국 후 곡절 끝에 연남동에 터를 잡고 현재에 이른 과정은 단순 우정을 넘어선 인사이트를 안긴다. 어느 순간엔 라멘가게 사장님이라기 보다 뛰어난 콘텐츠 창작자이자 기민한 개발자이며 불세출의 브랜드 마케터로 보이기도 한다.


시작한 지 1년도 되지 않아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사루카메를 보면서 불현듯 스타트업의 성공방정식을 도출해볼 수 있을 듯하여 몇 가지 엮어 봤다.


최근 방송에 소개된 사루카메(사진=Olive 캡처)



1. 핵심 크리에이티브 하나에 집중하라


라멘집에서 가장 중요한 것. 라멘이 맛있으면 된다. 하지만 '맛'이라는 건 굉장히 구현하기 힘든 주관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일 터, '좋은 제품' 혹은 '훌륭한 서비스'도 이와 마찬가지다. 다만 이를 객관화하기 위해 콘텐츠 창작자는 퍼블리싱 직전까지 자신의 기획을 고치고 또 고치며 개발자는 끝없이 테스트 하고 버그를 수정해 나가야만 한다. 라멘 역시 한그릇의 단순한 음식으로 보이지만 자가제면의 가수율, 육수의 블렌딩 비율, 아지타마고(맛달걀)의 익힘 정도, 차슈를 삶는 온도, 시간 등 '맛'을 위해 어느 것 하나 허투루 하지 않고 미세조정을 거듭한 '크리에이티브'다.


지난해 가게 인테리어를 끝마치고도 한참 오픈을 미루던 사루카메가 베타 테스트 개념으로 선보인 니보시(멸치육수)계 라멘은 매니아들 사이에 꽤 좋은 반응을 얻었다. -잘은 모르지만 그간 국내에 니보시계열 라멘을 하는 가게가 없었다고. 꽤 독창적인 크리에이티브를 선보였음에도 우리 사장님,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한순간 육수를 바꿔버리고 면의 성질도 변화시켜 현재의 사루라멘이 탄생했다. 오리차슈를 내는 건 순전히 본인이 좋아서.


스타트업에 비유하자면 '피벗(Pivot)'한 셈이다. 스타트업에서 보통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시 짜거나 판매 아이템을 바꾸는 것도 피벗이라고 말하곤 하는데, 원래 피벗은 '비전은 그대로 가져가되 전략을 수정하는 것'이어야 한다. 많은 스타트업이 실패하는 이유 중 하나가 그간 벼려온 크리에이티브를 버리고 새로운 환상을 팔려고 해서가 아닐까. 물론 후속 투자 유치가 중요한 만큼 '장밋빛 비전'을 보여주는 것도 중요한 과제겠지만.


'맛있는 라멘을 내야 한다'는 단순한 명제에 집중하는 이상 사루카메가 망하거나 잊혀질 일은 없을 듯하다. 가끔 예전 니보시계 라멘을 그립다는 이야기도 보이는데, 언제 팝업 스토어 한 번 열었으면.


지금은 사라진, 전설의(?) 멸치라멘


2. 일관된 브랜딩으로 고객과의 간격을 좁혀라


사루카메는 원숭이(サル)와 거북이(カメ)의 합성어로 이름만 들어선 라멘가게를 연상하기 어렵다. 인테리어 역시 일본색을 모두 없애 제 발로 들어오기 전에는 이 집이 라멘가게인지 긴가민가할 것이다. 가게 입구에 영업중임을 표시하는 노렌으로 원숭이 조각상이 걸려 있고, 가게 BGM으로 원숭이섬의 비밀 OST가 흐른다. 온전히 자신의 취향으로 꾸민 것인데, 왜 인지는 알 수 없지만 개그맨 유세윤에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원피스에서 영감받은 줄 알았는데


자신의 콘텐츠를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소비자와의 간극이 발생한다. 이를 메워주는 게 브랜딩이다. 잘 드러나지 않지만 사루카메 곳곳에 숨겨진 디테일들은 하나의 브랜드로써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통일된 컨셉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품이 많이 들고 그만큼 비용도 든다. 사루카메의 제면기와 육수를 내는 솥, 그릇 모두 일본에서 공수했고, 멘마도 일본 가게에서나 만날 수 있는 최상품을 쓴다. 그릇에 전사 작업만 별도로 하는 업체를 찾지 못해 한동안 애를 먹는 모습도 봤다. 포기하고 어느 지점에서 타협하면 편하겠지만 브랜딩 작업을 지속하지 않으면 어디까지나 '내가 좋아서 하는 가게' 이상 나아가지 못한다.


사실 국내에도 좋은 제품과 서비스, 바이브를 가진 스타트업 참 많지만, 이들이 '캐즘의 협곡'을 건너지 못하는 건 어쩌면 자신의 콘텐츠를 담는 그릇인 마케팅과 포장지인 브랜딩에 대한 고민이 부족해서는 아닐까. 특히 브랜딩이란 영업처럼 매출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것도 마케팅처럼 구매전환율을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선뜻 투자하기가 망설여지고 후순위로 밀리기 마련이다. 틀을 깨기 위해서는 잘하는 곳에선 콘텐츠와 마케팅에 얼마나 투자하고 어떻게 브랜드로 키워나가는지 살펴보고 자신에게 대입해보는 수밖에 없다.


사루카메의 브랜드 아이덴티티 역시 저절로 만들어졌다기보다 일본에서, 또 귀국 후 다년간 수행하는 과정에서 고민을 거듭한 결과물이다. 중요한 레퍼런스가 된 가게도 있는데, 오사카 현지인에게 인기 많은 진루이미나멘루이(人類みな麺類, 인류는 모두 면류다)라는 곳이다. 우리나라의 치킨가게만큼 라멘가게가 성업 중인 오사카에서 이상하고 오덕스런 가게 이름으로 꾸준히 주목 받고 정상의 위치에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가게를 하나의 브랜드로 만들고 고객들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을 지속했기 때문 아닐까.


외쿡에서 배워왔지만 동시에 '홈메이드 라멘'임을 강조하는 사루카메는 아주 잘 되더라도 딱 4호점까지만 낼 계획이라고 한다. 가게 모퉁이를 돌면 2,3,4호점 이름이 적힌 이정표가 있다. 이토록 사소하지만 치밀하게 브랜드 로드맵을 마련해 놓으니 지켜보는 입장에는 계속 흥미가 생길 수밖에 없다.


완식하면 드러나는 춤추는 원숭이.


3. 채널을 단순화하고 집중 커뮤니케이션하라


사루카메 온라인 채널은 인스타그램 하나. 아직 오픈 시간이 정해지지 않은 만큼 고객들은 가게 영업 유무나 메뉴 구성 등 기본적인 정보를 알기 위해 인스타그램에 접속한다. 하지만 이 계정을 통해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은 '온전한 대파 수급하기 힘든 헬조선' '그림을 선물받아 기분이가 좋다' '원숭이가 가격을 당해 기분이가 좋지 않다' 등 하루에도 열 두 번 오르락 내리락 하는 사장님의 은밀하고 사소한 감상이다. 여느 때는 '아니 제가 이런 것까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사장님 우리 이 정도 사이는 아니잖아요'라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나의 경우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을 금과옥조로 여겨온 바, 이러한 친밀한 커뮤니케이션에 취약하다. 요즘 스타트업 치고 소통과 수평 커뮤니케이션 강조하지 않는 곳이 없으니 낙제점에 가깝다. 하지만 내가 직간접적으로 경험했던 스타트업에서 소통이란 자신들의 속사정을 감추기 위한 도구이자 적은 인원으로 크로스펑셔널하게 일하기 위한 수단 쯤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꼭 'fit이 맞는 인성 좋은 사람' 원하더라. 야, 인성 좋은 사람들은 수평 커뮤니케이션 안 해라는 게 내가 가진 지론이다. 독선적이고 고집도 있으며 호기심이 왕성하고 개념 상실한듯 들이박다가도 어느 순간 양보할 줄 아는 아주 복잡한 인성의 소유자야말로 스타트업에 적합하지 않나.


장담컨데(?) 여기 사장님 성격 안 좋다. 개쌍마이웨이다. 그렇지만 실제 방문한다면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집중하는 일본의 독특한 접객 문화 ‘오모테나시(おもてなし)’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업에 대한 진중함도 있고 찌질하고 유쾌한 B급 감성도 있다. 그걸 그대로 자신의 채널에 표현하고 공감을 유도하는 일은 꽤나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요즘 지 얼굴 자꾸 올리는 걸 보면 연예인병 초기


쓰다 보니 라멘가게를 찾는 손님이 이런 거대한 서사를 떠올릴 필요가 있을까 싶다. 연남동에 그저 가볍게 들러 먹기 괜찮은 라멘집 하나가 있다는 사실만 기억해도 좋겠다.


현 시간, 망고플레이트 라멘 전체 1등. 실화인가요?


P.S.

한창 친구가 창업을 준비하던 때 "대박 나는 맛집 뭐 별 거 있어. 적당한 상권에 인테리어 쿨톤으로 하고 메뉴 좀 인스타그래머블하게 꾸며서 입소문 좀 타고 방송 타기 시작하면 그 다음부터 로켓마냥 쏘는 거지"라며 나름 조언아닌 조언도 해봤는데, 그는 '니가 요식업을 알어?!"하는 표정으로 "그건 가짜잖아. 오래가지 못해"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깐깐징어같은 노옴.


택 사장이 하는 토마토 츠케멘, 유자쇼유라멘을 먹는 날을 기대하며 이만 총총


제 인생 라멘, 도쿄 afuri


※ 이 글은 제 돈 주고 사 먹고 사장님 술도 사 주고 시키지도 않았는데 쓴 글입니다. 물론 라멘 주문하면 맥주 공짜로 얻어 먹습니다. 후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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