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 에디터 Jan 23. 2019

자신을 실제 상품에 비유한다면 무엇에 비유할 것인가?

그리고 대답이 없었다


저는 1기 신도시에 지어진 전용 59제곱미터 구축 아파트입니다. 삼십여 년간 서민들의 주거 안정과 수도권 집중화를 막기 위해 헌신해왔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점차 매력과 상품 가치를 잃어버린 채 어느덧 소비자로부터 외면받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다주택자의 갭 투자 상품으로 인식되지도 못하고, 무주택자에게는 새 아파트 청약에 따른 소형주택 특례기준도 적용받지 못하는 계륵과도 같은 몸이랄까요.

하지만 저에게도 자존심이 있습니다. 무릇 아파트란 정치인들이 만든 가상세계에선 언제나 욕먹고 패배하지만 서민들의 현실세계에서는 자아실현의 매개이자 중산층으로 나아가는 황금열쇠일 테니. 박완규 작가의 소설에는 이런 명대사도 있잖아요. “아버님, 빌라는 사주셔도 짐입니다.”

저에게도 패기 넘치던 신축 시절이 있었습니다. 요즘 호가가 절정에 오른 2기 신도시 아파트와 최근 발표한 3기 신도시 등 까마득한 후배들의 청춘과 저돌성이 가끔 부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2기 후배들은 서울 접근성이 저보다 못하고 3기는 아직 세상에 첫발을 떼지도 못하였죠. 먼저 세상에 나와 켜켜이 쌓아온 저만의 콘텐츠를 쉽게 쫓을 수는 없습니다.

저는 1988년 노태우 대통령이 발표한 주택 200만호 건설 프로젝트부터 작금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주거변천사의 산증인입니다. 따라서 동네 공인중개소 사무실 외벽에 패잔병처럼 걸려있기는 싫습니다. 듣기로는 요즘 플랫폼을 모르면 간첩 취급을 당한다는데, 저의 진가를 알아줄 플랫폼을 찾기 위해서라면 빅데이터에 의한 타게팅이 좀 필요하겠습니다. 먼저 이 지긋지긋한 체리색 몰딩부터 제거한 뒤에 말이죠.

요즘 직방, 다방에는 경쟁자가 많고, 네이버 롤링보드와 GDN은 허수가 많습니다. 신문 광고를 좀 내볼까 했더니, 조선·중앙·동아 부동산 특집 섹션은 온통 수익형 부동산 차지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해 9.13 부동산대책으로 돈줄이 막힌 투자자들은 모두 오피스텔 같은 수익형 부동산으로 눈을 돌려 버렸습니다. 그나저나 요즘 버스 광고 입찰은 아이돌 팬덤과 경쟁해야 한다니,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대세 동영상 플랫폼인 유튜브에 광고를 태우는 것도 그리 탐탁지 않습니다. 5초면 건너 뛰어질 운명이니, 저만의 크리에이티브를 보여주기엔 턱없이도 짧달까요. 더 길게 소비자의 눈길을 사로 잡으려면 아무래도 킬러 콘텐츠 앞뒤를 이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요즘 화제의 드라마 ‘SKY캐슬’ 동영상 클립 앞에 저의 스토리가 나온다면 금상첨화겠네요. 예컨데 이런 대사와 함께요.


“면접관님, 저를 회사로 들이십시오.”


-

솔찍히 내 자소서가 제일 재밌음

작가의 이전글 연남동 사루카메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