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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 에디터 Feb 26. 2020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계약써요

6번째 이사를 준비하는 마음가짐에 대해


명실공히 대한민국 최고 퇴사 플랫폼 '브런치'이기에 꽤 길게 쉰 동안 트렌드에 맞게 한 달 살기 콘텐츠 혹은 못다 한 여행기라도 써서 올리고 싶었으나 어디선가 "교양 없는 여행이란 빈곤한 환각에 불과하다"는 글을 본 뒤 짜게 식어버린 마음 가눌 길 없고, 어느덧 별 볼 일 없는 생활인으로 돌아와 이사를 갈 시기를 맞게 됐다.


<모던 패밀리> 필 던피네 집 구경 가봄.


확언하건대 서울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나의 삶은 더 나은 주거 공간을 위한 투쟁의 역사였다. 세종대로변 월 52만 원짜리 고시텔(당시 인턴 생활로 받은 월급이 80만 원이었다)을 거쳐 경상도 출신이라는 것 이외 별다른 공통점이 없었던 타인과의 하우스셰어 고단함의 서막. 월세 75만 원짜리 투룸 빌라를 방 하나씩 나눠 쓰는 식이었는데, 보증금을 낸 쪽이 내가 아니었기에 똑같은 세입자임에도 어쩐지 집주인과 함께인 듯한 기묘한 나날이었다. 서로 너무 배려하려다 보니 주말에도 각자의 방에서 조용히 시간을 보내야만 했었다.


퇴근 후 온전히 나만을 위한 공간이 필요했고, 당시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반지하뿐이었다. 똑같은 월세(40만 원)에 보증금 500만 원을 보태 녹번역 인근 다세대주택 지층으로 이사했다. 혼자 살기에 너무 넓은 집이었고, 사람이 오가지 않는 위치여서 영화 <기생충> 기택이네처럼 누군가의 노상방뇨를 걱정하지 않아도 됐다. 여가를 즐기기 위해 데스크톱과 이케아 소파도 놓았다.


두유 노 banjiha?

1년 정도 지내면서 두 가지를 명징하게 깨달았다. 반지하는 사람이 살만한 곳이 못 된다는 것과 '1층 같은 지층'은 애초에 성립될 수 없는 말이라는 것. 볕이 들어오지 않는 실내에 있다 보니 우중충한 기운이 생활 전반에 깔려 짓누르기 시작했고, 이케아 소파에 파묻혀 지나간 드라마를 다시 보는 일 이상의 생산적인 활동을 생각할 수 없었다. 장마철이면 집안에 비라도 내리는 듯이 온갖 물건들이 습기로 우글우글했고, 개어놓은 옷과 걸어놓은 옷을 가리지 않고 꿉꿉한 냄새와 함께 금세 곰팡이가 피었다.


생애주기마저 단축시킬 시커먼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으로 다가온 것이 2015년 출시된 버팀목 전세자금대출이다. 당시 정부에서 전셋값의 70%, 1금융권에서는 80%까지 2~3%대 금리로 대출을 해주기 시작했는데, 중개수수료마저 아까웠던 나는 하루 종일 피터팬 방구하기 카페를 드나든 끝에 전세 5000만 원짜리 다가구주택 지상층 투룸을 구할 수 있었다. 당시 힙스터들 사이 알음알음 뜨기 시작한 우사단길에 있었는데, 4가구 중 나를 제외한 3가구가 외국인 세입자였다.


우사단로 절대 존엄한 OTTO 김밥(사진=NY times)


서울의 한복판임에도 가격이 저렴했던 이유는 이태원 유흥가에다 재개발로 묶인 곳이기 때문이었는데, 의외로 크게 불편하지는 않았다. 서울 재개발지구의 경우 대부분 교통이 편리한 곳에 있고, 집주인이 대부분 투자용으로 구입해 놓고 자신들은 다른 곳에 살고 있어 집 상태나 세입자에 관해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그들의 신경은 오직 박.원.순.의.서.울.시.가 언제 재개발 사업시행인가를 내주는가에 쏠려 있을 뿐이다. 재개발만 되면 10억이 우스운 대단지 아파트가 될 터이니, 곧 허물어질 집의 세입자가 벽에 페인트를 바르거나 말거나 개와 고양이를 같이 키우거나 말거나 내 알 바 아닌 것이다.


나 역시도 전세계약 이후 2년 동안 집주인과 연락한 것은 보일러 온수관이 터져 가스비 80만 원이 나왔을 때뿐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전세기간 연장 대신 이사를 결심했고, 다섯 번째 집은 가까스로 서울의 끝자락에 걸려있던 구산역 인근 빌라였다. 전세 2000만 원에 월세 30만 원인 이른바 반전세였는데,  나에게는 세상의 끝처럼 느껴졌던 곳이지만 지인들의 말을 빌리자면 처음으로 집 같은 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1층에서 3층으로 올라와 한층 쾌적해졌고 이태원 유흥가를 벗어나 주택가로 들어오니 한결 고요해졌다. 냉장고도 519리터까지 커졌다.


피터팬 방구하기 카페에서 봤던 최고의 매물. 연희동의 한 빌라였다.


이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직장을 옮기는 바람에, 하필 그 직장을 가려면 지하철 9호선을 타야 했기에, 출퇴근 시간 9호선 급행을 탄다는 것은 존재론적 회의감에 빠질만한 일이었기에 또다시 이사를 감행할 수밖에 없었다. 가수 아이유의 출생지라는 사실이 알려지기 전까지 어느 누구도 그 존재를 몰랐던 성동구 송정동의 1억짜리 투룸 전세였는데, 고정 주차 자리가 있는 상가주택의 꼭대기층이다. 급하게 옮겼지만 결과적으로 가장 오래 지내면서 희로애락과 애오를 모두 느낀 집이 되었다. 3인용 소파와 55인치 TV, 샤오미 공기청정기와 온쿄 반자동 턴테이블도 생겼다.


문제는 3년이 지난 지금 같은 금액으로 비슷한 컨디션의 전셋집 구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는 것이다. 비슷한 컨디션의 집들이 거진 1억 7000만~2억 원은 오른 상태다. 서울 집값이 크게 상승한 탓도 있지만 전세자금대출 제도 자체 탓도 있다. 대출 문턱이 낮아지고 중소기업을 다니면 자기자본없이 100% 대출도 가능해지니 집주인들도 이를 알고 사정없이 전셋값을 올려 버렸기 때문이다. 신혼부부의 경우도 2억까지는 부담 없이 대출이 가능해지니 너 나할 것 없이 가격을 올려 좀 살만한 빌라도 3~4억 원이 우스워진 듯하다.


그럼에도 월세보다 훨씬 저렴한 이자의 전세자금대출 유혹을 놓을 수는 없다. 겨울이 지나 봄 이사철이 다가오니 하나 둘 괜찮은 매물들도 속속 올라오는 중이다. 이에 발맞춰 피터팬 방구하기 카페에 '투룸 전세' 키워드 알림 설정은 기본 중의 기본, 여기에 '신혼부부' 혹은 '급하게 이사'같은 키워드를 곁들이는 것도 나만의 노하우다. 결혼 이유로 "이사할 때가 되었는데 마침 남친이 있어서"라던 지인의 말은 채근담과 탈무드에서는 구할 수 없어 더욱 값진 이 시대의 명언이었다.


고시텔→ 하우스셰어 → 반지하 → 재개발지구 1층 → 반전세 3층 → 주차 가능한 상가주택 4층. 거쳐온 집들을 되돌아보니 느리지만 꾸준하게 진보하는 역사의 한 페이지쯤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 역사의 다음 페이지가 어제오늘 유심히 살펴본 올수리 된 주공아파트라면 내 인생이 그리 나쁘지 만은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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