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의 과학
정치인도 예능에 나와 개그를 뽐내는 시대다. 가수든, 배우든 ‘예능감’이 있으면 인기는 배로 올라간다. 우리는 일상에서 늘 웃긴 상대에게 큰 호감을 느낀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이상하다. 생존에 딱히 도움도 안 되는 ‘웃음’이란 행위에 우리가 이렇게 탐닉하게 된 이유는 뭘까? 웃음을 전혀 웃기지 않게, 진지하게 연구한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예능, 짤방, 아재 개그 등, 우리는 미디어를 통해 웃음을 탐닉한다. 그런데 정작 우리가 왜 웃는지 생각해 본 적 있을까? 인류에게 웃는 행동이 왜 나타난 건지, 또 우리가 언제부터 웃기 시작했는지 말이 다. 언뜻 막막해 보이는 웃음의 기원에 대해 과학자들은 여러 가설을 내어놓았다. 지금부터 주목할 건 웃음이 ‘인류의 생존에 도움’이 됐기에 진화한 행동이라는 사실이다. 도구 사용 혹은 이족 보행처럼 인간이 가진 특징들이 인류 생존에 유리했듯, 웃음 역시 우리의 생존에 도움이 된 행동 중 하나라는 것이다.
웃음의 기원에 대한 가설 중 하나는 UC샌디에이고에서 뇌 과학을 연구하는 라마찬드란 박사의 ‘거짓 경보 이론’이다. 수백만 년 전, 인류의 조상이 살던 때를 잠시 상상해보자. 무리 지어 먹잇감을 찾아 돌아다니던 조상님들, 그런데 어디선가 수상한 소리가 들린다. 맹수 소리일까? 바싹~ 긴장한다. 그런데 그들 앞에 나타난 건 옆 동네 사는 철수! 이빨을 드러내며 경계 태세를 갖추고 있던 그들은 비로소 안도의 숨을 뱉고서는 “하하하” 크게 웃는다. 조금 전 심상 치 않은 소리는 위협 요소가 아니라 사소한 것이고 따라서 걱정할 필요가 없음을 웃음으로 주위 동료들에게 알리는 것이다.
이렇듯 웃음은 ‘위협적인 줄 알았던 대상이 알고 보니 별거 아니었다’라는 사실을 알리는 신호로써 탄생했다는 게 ‘거짓 경보 이론’이다. 즉, 웃음은 초기 인류 집단의 육체적, 정신적 낭비를 줄여 주는 필수적인 ‘생존 매개체’였던 셈이다.
또 다른 웃음의 기원은 2005년, 뉴욕주립대의 데이비드 윌슨 교수의 논문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웃음이 200~400만 년 전에 탄생했다고 주장했는데, 늘 굶주리며 쭈구리(?)처럼 살았던 초기 인류가 어쩌다가 안전하고 배부른 상황을 맞이했을 때, 심신을 달래고 집단 구성원들에게 유쾌함을 주는 신호로 웃음이 발생했고, 이런 상황에서 사냥 기술 전수 같은 유익한 활동이 일어났다고 한다. 가끔 빵빵 터지며 유쾌함이 잦았던 집단이 그렇지 않은 집단에 비해 생존에 유리했음은 불 보듯 뻔한 일. 어쩌면 우리가 술자리에서 개그감 충만한 사람을 찾는 건 이런 데서 자연스레 유래된 진화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소개팅을 앞둔 남자에겐 꼭 필요한 준비물이 있으니, 바로 유머. 실제로 많은 여성이 유머러스한 남자를 좋아하는데, 2011년 캐나다 웨스턴 대학 연구팀의 실험에 따르면, 남자가 여자보다 유머를 더 많이 시도하고, 여자는 남자의 유머를 평가하려는 경향이 강하다고 한다. 심리학자인 골드스타인 역시 6살이 된 아이들도 남자아이들이 여자아이들보다 유머를 더 자주 구사한다며, 웃음에 있어 성(性) 차이가 있다고 주장했다.
왜 유머는 남성의 매력 지표가 되는 걸까? 유머의 성(性) 차이를 ‘유머의 하향성’으로 보는 가설이 이를 설명해 준다. 보통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이 지위가 낮은 사람보다 농담을 더 많이 하는데, 이는 하급자가 유머를 던졌을 때 자칫 집단 분위기가 안 좋아지면 그것이 하급자에겐 부담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직장에서 상급자인 김 부장이 아재 개그를 부담 없이 던지는 것도 유머의 하향성의 일환인 셈이다.
이런 맥락에서 과거 남성의 지위가 여성보다 높았기 때문에 유머를 던지는 쪽의 대부분이 남성이었고, 이런 행동이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는 것. 어쩌면 유머를 던지는 쪽은 남자라는 생각은 전통적 관습에서 비롯된 고정관념이 아닐는지…. 만약,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계속 상승한다면 정반대의 현상이 벌어지지는 않을까?
다른 한편, 남성의 유머는 본능에 새겨진 생물학적 특성이라는 주장도 있다. 진화심리학자인 제프리 밀러 교수는 유머는 창의적이고 복잡한 두뇌 활동에 의해 나오기 때문에 남성들이 여성에게 어필할 수 있는 매력 지표 중 하나라고 주장한다. 마치 수컷 공작이 화려한 꼬리로 암컷에게 자신의 매력을 어필하는 것과 비슷하다.
과학에서는 표정이 감정을 유도하는 ‘안면 피드백 가설’이 있는데, 행복 관련 책에 줄기차게 나오는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하다’란 말도 여기에서 비롯됐다. 표정이 감정을 유도한다는 연구는 1988년 독일의 심리학자인 프리츠 슈트라크의 실험에서 처음 소개됐고, 이후 비슷한 연구들이 쏟아졌다. 심지어 2009년에는 보톡스를 맞은 여성들이 맞지 않은 여성에 비해 더 행복하다는 연구도 있었는데, 이 실험을 진행한 영국 카디프 대학 연구진에 따르면 보톡스를 맞은 여성들은 슬픈 일이 있어도 얼굴을 찌푸릴 수가 없어 우울함을 덜 느낀다는 것이다. 이만하면 슬플 때 눈물 대신 ‘썩소’라도 지어야 한단 말인가?
다행히도(?) 최근 ‘안면 피드백 가설’에 의문을 제기하는 연구들이 등장하고 있다. 2016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대학의 심리학자인 에릭-얀바겐메이커 교수는 1988년 슈트라크 박사가 진행한 실험을 그대로 재현했다. 1894명이 참여한 이 실험에선 놀랍게도 반대 결과가 나왔다. 웃는 표정을 짓는다고 해서 더 행복한 감정을 느끼는 게 아니었다. 게다가 지난 2014년 미시간 주립대학 브렌트 스캇 교수팀이 버스 회사의 운전기사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는 억지웃음을 지으며 손님을 맞이하는 기사들이 우울감이 더 심했고, 퇴사율도 높았으며 또한 업무 능률도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감정노동자들에게 억지웃음과 상냥함을 강요하여 생겨나는 사회 문제도 이번 연구와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특히 많은 전문가가 억지웃음보다는 화를 내야 할 상황에서는 화를 내는 것이 좋다고 입을 모은다. 어쩌면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건 억지웃음보다는 적재적소에 날리는 시원한 ‘사이다 일침’ 일지도 모른다. 이처럼 웃음은 인류 진화의 역사, 그리고 생물학적, 사회문화적 맥락과 함께하고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몸소 실천해볼 차례. 거울을 보고 활짝 웃자. 거울에 비친 웃음에서 무엇이 보이는가?
위 글은 제가 <대학내일>에 쓴 '문돌이를 위한 과학' 칼럼 중 하나입니다. 대학내일 808호를 보시면 재미있는 일러스트와 함께 읽어 보실 수 있습니다.
대학내일 링크: https://univ20.com/630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