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척, 중광정, 낙산, 강현면 이야기
속초에서 삼척은 예상보다 훨씬 더 먼 곳이었다. 특히 해가 진 이후의 야간운전이고, 서울-속초간의 장거리 운전을 한 후라 피로가 더해진 탓도 있을 것이다. 예산과 관련한 복잡한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적당한 저녁과 함께 일찌감치 잠에 들었다.
이튿날 삼척부동산 방문 계획은 취소했다. 다음날 눈을 뜨자마자 생각이 바뀌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서울-삼척간은 물리적 거리 자체가 멀기에 현실적으로 터전을 마련하기에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평생을 나고 자란 서울이기에, 나에게는 삼척지역은 거리뿐만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너무 먼 거리었다.
숙소였던 삼척 솔비치의 정원과 해변은 역시 좋았다. 미세먼지에서 해방되어서인지 중간중간 큰 호흡으로 상쾌한 공기를 마셨고, 시원한 바람과 청명한 바다색과 파도소리가 눈과 귀를 휘감았다.
해변을 거닐며 예산을 다시 정리해봤다. 계산은 간단했다.
"적절한 오션뷰에 도시 근접의 한적한 동네의 마당이 딸린 주택" 이 내가 원하는 곳이었지. 대지는 그래도 60평에서 150평 정도는 돼야 되고, 이런 조건의 대지가 보통 제곱미터당 70만원.. 평당 200만원 정도니까 취득세까지 더한 대지가격이 1억 5천에서 5억 정도, 건축비는 30평 기준으로 인테리어까지 기본 2억 5천 정도. 아!!! 농막이 아닌 이상 4억이 최소 예산이겠구나..
흠, 4억이 최소 예산이라...몇달 전 방문했던 오포의 작은 마당이 딸린 2층 집이 떠올랐다. 거기 4억 5천이었는데...강남까지 40분이면 가고.. 3면이 바다인 나라에 살면서도 오션뷰는 누구에게나 허락된 것은 아니었다.
솔직히 김이 좀 샜지만, "모자른 예산은 주식으로 좀 불리지 뭐ㅋ"라며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애초에 예산이란건 항상 부족하기 마련이다. 이번만 해도 예산이 6천만원에서 최소 4억으로 오르지 않았나. 뭐 평생 숙원사업인데 예산으로 좌절하기에는 아직 한참 이른 시점이다.
삼척 부동산 일정을 뺀 이상 여유롭게 강릉 테라로사에 들려 오전의 커피를 즐긴 후, 양양의 중광정 지구로 향했다. 중광정 지구는 하조대 해변에서 불과 1~2km 정도 떨어진 곳이다. 특징으로는 양양군에서 직접 대지를 조성해 분양하기에 가격적으로 다른 택지에 비해 저렴하며, 정돈된 측량과 상하수도가 모두 완비되었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한여름 서피비치와 코로나 선셋비치를 매일 갈 수 있을 거란 사실에 기대감이 컸던 곳이기도 하다
반듯하게 정비된 중광정 택지는 나쁘지 않았다. 산을 깎아서인지 약간 고지대였기에 전망은 탁 트여 있었고, 주변 소음도 적절했다. 도심과는 좀 떨어져 있어서 택배 등이 올 수 있을까 생각도 잠시 들었지만, 양양군에서 조성한 택지였기에 크게 신경안써도 될 문제였다.
아쉬운 점은 역시나 주택단지로 개발된 곳이기에 편의시설들이 단지 안에 입주하기 어렵다는 점이 될 것이다. 전날 물치항의 택지는 물치항이 가까워 마트나 편의점, 농협 등이 항구를 중심으로 포진해 있는 반면, 이곳은 그런 것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해변까지는 직선거리로 1km 정도지만, 실제 도로를 고려해볼 때 도보거리라고는 볼 수 없었다. 그래도 평당 100만원이 안되는 가격과 해변과 가깝다는 점은 매력이라고 볼 수 있었다.
점심을 먹으로 올라오는 길에 개발이 한창인 낙산해변에 들렸다. 이곳은 개발제한구역으로 풀린 후 널찍한 낙산해변을 중심으로 대형 개발사업들이 몇몇 진행되는 것으로 보였다. 수년전 한여름밤의 힙합페스티벌을 즐기러 왔을 때만 해도 시골 느낌이 물씬 들던 낙산해변은 상업적인 색채가 강한 휴양지로 발전하고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해변 근처에 주택이 들어설 만한 택지 역시 보이지 않았다. 양양군이 계속 발전한다면 낙산해변이 그 중심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속초에 근접한 강현면의 부동산에 들리기 전 점심은 정주영 회장님도 들리셨다는 실로암 메밀국숫집에서 해결했다. 수육을 즐기셨다는 정회장님의 기운을 받기 위해 같은 메뉴를 시키려 했지만, 수육 원산지가 수입산임을 보고 생각을 바꿨다. 막국수야 그냥 평범한 막국수였고, 강원도 해안지역의 비싼 물가만 체험한 씁쓸한 식사였다.
마지막으로 들린 곳은 실로암 막국수집에서 가까운 전원주택이었다. 밭을 용도 변경해 지은 주택으로, 120평 정도 대지에 들어선 2층 목조주택이다. 대지와 집을 포함해 2억이 조금 넘는 정도의 집이었는데, 전날 들렸던 강선리 택지의 모델하우스처럼 평범한 자재를 사용한 것으로 보였다. 강아지가 워낙 크게 짖는 것도 시끄럽고, 딱히 집을 둘러볼 만큼 매력적인 외관이 아니었기에 이대로 차를 돌렸다.
부린이 입장에서는 답사를 갈 때마다 하나씩 얻어오는게 있기 마련이다. 이번의 경우에는 또다시 예산을 현실에 맞게 조절할 수 있었고, 내가 원하는 택지가 양양에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결국엔 돈을 좀 더 발라야 해결되는 거겠지. 진짜 집 지을 돈을 주식에 태워야 되나..
무엇보다도 겨울철의 양양은, 뜨거운 한여름밤의 해변과는 분명히 다른 곳이었다. 말로 표현하기 어렵지만, 예산을 수정해야 하는 문제보다도 연고가 없고 인적이 드문 바닷가에서 살려는 내 마음가짐 역시 조절이 필요해 보였다. 복잡했지만, 속초에 들려 한산 '속초 청초수물회'에서 여유롭게 섭국을 먹고, 물회를 포장하며 마음을 달랬다.
양양은 캘리포니아 해변이 아니었어. 겨울엔 춥고 사람도 적어 외롭지.
겨울 답사 에필로그 :
이후 첫눈이 내리기 이전까지 두 차례 정도 강원도를 더 찾았다. 마음을 살짝 틀어 양양 수산항 근처에 근린빌딩 건설이 가능한 계획관리지역 대지도 둘러보았고, 좀 더 쓰러저가는 구옥을 매입해 리모델링하는 방안도 강구해 보았다. 아무래도 동해안 근접한 전망 좋은 택지가격이 어지간한 파주, 고양시 이상이었기에 부담이 됐던 것인데, 오히려 택지들을 살펴볼수록 좋은 땅은 제값을 주어야 한다는 사실만 확실해졌다.
한편으론 시간을 좀 벌었다는 생각도 드는데, 이는 대출을 조이는 정부 정책과 수도권 부동산 상승으로 별장 수요 증가 현상이 잠시 잦아들었다는 점 때문이다. 당분간은 틈틈이 향동과 창릉지구 등 신도시 인근의 단독주택 매물과 부암동/평창동 지역의 주택/빌라 등을 살펴보며 기회비용에 대해 고민할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그리고 날이 더워지는 초여름쯤이 되면, 눈여겨봤던 강원도의 택지들을 다시 한번 살펴보며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볼 계획이다. 쓸쓸했던 겨울과는 달리 활력 있는 강원도의 풍경이 날 맞이해주기를 기대한다.